'급행'이란 말을 바꿔야 급해지지 않는다

‘빨리빨리’보다 ‘천천히’ 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등록 2019.03.05 18:19수정 2019.03.0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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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오전 지하철 9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지하철 9호선을 타면 "지금 김포공항행 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급행열차"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급행'이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의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정말 바쁘고 정말 급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더욱 급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고속도로(an express highway)'라는 용어 대신 '급행도로'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었다면, 우리는 고속도로에 갈 때마다 '급행도로'가 연상되어 괜히 마음이 바빠졌을 게 분명하다. 또 이러한 심리상태가 반영되어 아마 교통사고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급행열차'라는 용어는 잘못 번역된 용어다. 'express'란 영어 그 본래의 의미대로 '고속열차'라는 명칭이 더 타당하다.

'비상구(非常口)'라는 용어 역시 이와 유사하다. 지금 이 '비상구'는 대부분 전혀 '비상(非常)'하지 않고 보통 출입하는 문일 뿐인데, '비상구'라는 아주 특수한 명칭을 붙여놓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구태여 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출입구'라는 평범하고 평안한 용어로 바뀌어야 한다. '급행'과 '비상구'라는 말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제한어(日制漢語)'이다.

언어는 심리를 지배한다

어느 한 특정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 외로 크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이자 군사적 용어이기도 한 '대통령'과 'president'의 정확한 의미인 '의장'이라는 용어 간에는 실제로 듣는 사람에게 대단히 큰 차이를 발생하게 만든다. 언어는 우리의 심리를 지배하고,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결정한다. 필자가 계속 '정명론(正名論)'을 주창해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침 올해로 3.1운동 100주년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너무도 오랫동안 '빨리빨리주의'와 '적당주의'의 관성에 의해 지배되어왔다. 이제 좀 차분하게 우리들의 사회와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성찰할 때다. '빨리빨리' 뛰기보다 오히려 한 걸음 늦춰 '천천히' 가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먼저 '급행'이나 '비상구'란 말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참이나 늦었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지금부터라도 정확하고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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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푸단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았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대한민국민주주의처방론>,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유신과 전두환정권에 반대해 수배, 구속된 바 있으며,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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