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최경환과 악수한 박원순, 제2의 오세훈 꿈꾸나

[주장] 한강 밑그림 바꾼다더니 신곡수중보 문제, 8년째 지지부진... '도로 한강르네상스' 우려돼

등록 2019.03.08 08:06수정 2019.03.0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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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수중보 가동보 신곡수중보 가동보 수문 바로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물 흐름이 막혀 녹조가 발생했다. ⓒ 김동언


2월 22일 문재인 정부는 4대강 보 중 금강·영산강 5개 보에 대한 처리방안을 발표했다. 같은 날 서울시 신곡수중보 정책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결정한 보 개방 실험을 중단하기로 했다. 박원순 시장이 2011년 첫 임기를 시작하며 신곡수중보 철거 검토를 지시했음에도 8년째 아무런 결정을 못하는 상황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2011년 9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한강 암사동 생태 습지를 방문해 "보는 한강을 일종의 호수로 만드는 것"이라며 "없애는 게 자연적인 강 흐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고, 신곡수중보는 여름철 한강에 녹조가 대량으로 발생할 때마다 강물 흐름을 막아 녹조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런데 서울시는 2019년에서야 한강사업본부가 관리하는 수상시설물 58개소 중 절반 이상이 시설물 하부가 한강 바닥과 1m 이하로 닿을 지경이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만약 예정대로 신곡수중보 수문을 열었다면 한강 수위가 평소 관리 수위(2.4m 수준)보다 1.4m 더 낮아져 수상시설물 대부분이 전도되거나 전복될 뻔했다. 

정부가 '금강 보 철거' 발표한 날, 서울시는...
 

신곡수중보 고정보 신곡수중보 고정보의 길이는 887미터다. 고양시 쪽으로 치우쳐 있다. ⓒ 김동언

 
서울시는 신곡수중보 개방 실험 결정 이후 연구용역을 진행해 ▲ 보의 수문 5개를 모두 열면 한강 수위가 1.4m 더 내려가는데 수면 위에 떠 있는 수상시설물이 강 바닥에 쌓인 퇴적물과 닿을 수 있어 위험하고 ▲ 수문 개방 실험을 위해 수상시설물 위치를 임시로 조정하려면 3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든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러나 익명의 수상시설물 사업자는 "한강 수상시설물 하부에 퇴적물이 위험수위까지 쌓여 있다는 것을 한강사업본부가 이미 알고 있었다"고 제보했다. 또 수상시설물의 특성상 수문 개방 실험을 위해 그 위치를 '임시로' 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신곡수중보 정책위원회를 진정성 있게 운영했더라면 지난 10월 12일 정책위원회의 권고안과 서울시의 결정 내용이 최소한 이렇게 달랐어야 한다.

"신곡수중보 철거 혹은 개방을 위해 ①한강 수상시설물의 위치를 조정하기 위한 별도의 예산을 편성하고, 민간 시설물 일부는 보상을 통해 수용한다. ②가동보 개방 실험을 통해 지하수위 변동 영향과 수질·생태계 영향 등을 검토한다. ③신곡수중보의 철거 혹은 개방을 최종 결정한다."


한강사업본부가 지난 6월 이후 4개월 동안 정책위원회에 수상시설물 하부 퇴적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탓에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위원회가 ①단계를 생략해 '하마터면 위험할 뻔한 권고'를 했고, 서울시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한강사업본부도 몰랐다며 발뺌하지만, 사실은 수상시설물 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몇 해 전부터 한강사업본부에 토로해 왔다는 말이 더 믿음직하다.

8년째 '검토 중'... 서울시를 의심한다

이제 서울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정책위원회는 남은 기간 동안 신곡수중보를 실제로 개방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추가 연구를 진행하라고 권고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올 3월까지 신곡수중보 가동보 수문을 개방해서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들을 관찰하고, 최종보고서를 11월말에 내놓는 것이지만, 결국 다시 시뮬레이션 자료를 내놓느라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게 또 귀한 시간을 보이는 것으로 서울시가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두 가지다. 4대강 보 처리방안을 신속하게 내놓은 문재인 정부에 비해, 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신곡수중보 철거 문제에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한강 복원을 촉구하는 환경단체들을 다독이며 새로운 한강 개발 청사진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 정도다. 
 

김포대교 아래 신곡보 위험 표지판 김포대교는 신곡수중보와 너무 가까와 위험표지판이 붙어있다. ⓒ 김동언


문제는 그렇게 보낸 시간이 벌써 8년째라는 것이다. 지난 대부분의 시간은 박근혜 정부의 국토부가 신곡수중보 철거를 반대한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물관리일원화 이후, 국토부조차도 서울시가 적극 나서면 협조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는데, 이번엔 서울시가 오히려 미온적이다. 예산 등 결정에 따르는 부담을 오롯이 서울시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원순 시장은 한강을 어떻게 하려고 했던 것일까?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르네상스를 비판하면서 2011년 당선한 박원순 시장은 2014년에 '2030 한강 자연성회복 기본계획'을 내놓았지만, 콘크리트 호안을 자연형 호안으로 바꾸는 자연성 회복 사업은 한강르네상스 안에 이미 포함된 계획이었다.

한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가려면 신곡수중보를 철거해 물길을 복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1000t급 이상 유람선이 오가는 주운 수로로서의 역할은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다.

박원순-최경환의 악수 그 후
 

한강협력계획 여의도 권역 조감도 박근혜 정부와 타협으로 발표한 한강협력계획에는 통합선착장 조성 계획이 담겨있다. 한때 경인운하와 연결 가능성 여부로 논란이 됐다. ⓒ 서울시


하지만 박 시장은 2015년 8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여의도통합선착장 등을 개발해 한강과 경인운하를 연결하는 '한강 자연성 회복 및 관광자원화 계획(아래 한강협력계획)'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그의 한강 정책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같은 기간, 신곡수중보의 문제는 점점 드러났다. 2015년 2월 <신곡수중보 영향검토> 연구보고서가 완성됐고, 그해 여름 최악의 녹조사태가 발생했다. 후보 시절 신곡수중보 철거 여부를 검토하겠다던 박 시장의 발언은 다소 막연했다. 하지만 연구보고서가 나와 보 철거의 타당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고, 조류경보와 조류주의보를 100일 가까이 발령하는 사태까지 겹치자 시민들도 신곡수중보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박원순 시장이 최경환 부총리와 악수했던 손은 머쓱해졌다. 또 지난해 국토부 관행혁신위원회는 '경인운하 정책 결정 및 추진과정의 문제점,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경인운하 사업은 실패했다고 정부가 공식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2017년말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어 신곡수중보 문제를 '찬반이 분분'한 사안으로 정리했다. 지난해 초에는 '한강 물환경 회복 전략계획 수립용역'이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하려다 2015년 보고서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자 연기했다. 
 

신곡수중보 시민모니터링단 발족 기자회견 2018년 11월 신곡수중보 개방 실험에 맞추어 시민모니터링단이 출범했으나, 결국 서울시는 수문을 열지 않았다. ⓒ 김동언


이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한강 관련 정책이 주목받자 박원순 시장은 선거 다음날인 6월 13일, 14명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신곡수중보 정책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4개월 논의 끝에 나온 '신곡수중보 개방실험' 결정은 결과적으로 시민들을 기만했다. 애초부터 열 수 없는 것을 열어보겠다고 공언한 셈이었다.

그 사이 한강협력계획은 이미 확보한 국비예산 200억 원을 반납하며 표류했다. 2018년 9월 서울시의회가 60억 원의 매칭 지방비를 삭감하는 등 반대에 부딪히는 바람에 신곡수중보 철거 여부를 먼저 결정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동시에 서울시는 '한강 중심의 신도시 재생 전략계획'이란 이름의 연구용역을 2019년 예산안에 포함했다. 한쪽에선 신곡수중보 철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정책위원회를 가동하면서 또 다른 한쪽에선 지지부진한 한강협력계획의 대안으로 또 다른 개발의 밑그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박원순 시장은 지난 8년 동안 한 손으론 한강의 자연성 회복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신곡수중보 철거 카드를 매만지면서, 또 다른 손으론 이와 정반대로 한강의 주운 기능을 확대하는 개발 사업 구상을 끊임없이 시도하거나 준비해온 것이다.

일관성 사라진 한강 정책... 결국 오세훈 따라가나
 

한강 중심의 신도시재생 전략계획 수립 2019년 서울시 예산 사업별 설명서 중 한강 중심의 신도시재생 전략계획 수립 연구에 따르면, 2020년 3월에 또 다른 한강종합개발 계획이 발표된다. ⓒ 서울시


서울시는 적어도 한강 정책에 관해서만큼은 일관성을 잃어버렸다. 한강사업본부가 정확한 보고를 하지 않은 탓이든, 신곡수중보를 개방하거나 철거할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던 탓이든, 신곡수중보 개방 실험을 결정하고 또 번복하면서 불신만 쌓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곡수중보 정책위원회가 어떤 묘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박원순 시장 재임 10년 안에 신곡수중보 철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게다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서울시가 발표할 '한강 중심의 신도시재생 전략계획'이 결국 '도로 한강르네상스'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신곡수중보 #4대강 보 #박원순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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