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눈싸움에서 시작된 학폭위, 그 허무한 결말

[나는 왜 '나쁜 놈'을 변호했나 8] 가해자도, 피해자도, 교사도... 누구도 웃지 못한 이유

등록 2019.03.09 20:09수정 2019.03.1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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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친구들이 던져주는 눈덩이가 반가웠다. 하지만 눈싸움은 수현이 생각했던 것처럼 즐겁지 않았다. ⓒ unsplash


[기사 수정 : 10일 오전 11시 20분] 

함박눈이 내렸다. 온 하늘을 하얗게 수놓은 눈송이는 이내 땅을 새하얗게 뒤덮었다. 하교 길에 몇몇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눈싸움을 했다. 아무리 입시에 치여 사는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그 정도 여유를 가질 권리는 있었다. 서로에게 눈을 던지며 왁자지껄 웃어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눈싸움 무리 곁을 지나던 수현에게 눈덩이가 날아왔다. 던진 쪽을 쳐다봤다. 같은 반 친구들이 뒤엉켜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수현을 보며 웃었다. 같이 눈싸움을 하자는 것 같았다.

사실 수현은 친구가 없었다. 왕따는 아니었지만, 평소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어려워했기에 그들이 던져주는 눈덩이가 반가웠다. 하지만 눈싸움은 수현이 생각했던 것처럼 즐겁지 않았다.

반가운 눈덩인 줄 알았는데...

수현도 같이 눈을 던지며 무리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수현에게 눈덩이가 날아든 것은 우연이었다. 눈싸움 무리에겐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수현이 덤벼든 모습이었다.

수현은 그들과 친하지도 않았다. 눈싸움 무리는 일제히 수현에게 눈을 던졌다. 수현은 여섯 명이 자신에게만 눈을 던지자 들고 있던 우산을 펼쳐 날아오는 눈덩이를 막았다. 그럼에도 눈싸움 공격은 계속됐다.


수현은 화가 치밀었다. 평소 자신과 놀아주지도 않았던, 아니 자신을 왕따시켰던 녀석들이 먼저 장난을 걸어왔다. 그래서 같이 놀려고 하자 오히려 자신을 괴롭힌 것이다. 수현은 고개를 숙인 채 교복 위에 입고 있던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묵묵히 서 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에도 다른 무리는 수현에게 눈덩이 던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수현은 학교 대신 병원을 향했다. 안과였다. 의사는 안구 내 모세혈관에 출혈이 있다고 했다. 안압이 상승할 우려가 있어 8주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8주 진단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현의 부모님은 곧장 학교로 달려갔다. 수현이 심각한 학교폭력에 당했다고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한 명을 집단으로 구타해서 이 지경을 만들어요!"
"어머님, 아버님. 수현이가 그렇게 많이 다쳤나요?"
"8주가 나왔어요. 8주요! 애를 반병신으로 만들었어요. 이젠 곧 고3인데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면 어떻게 해요!"


담임교사는 몹시 당황했다. 이미 학교전담 경찰에게서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되었다며 연락을 받았고 수현은 말도 없이 결석했다. 수현의 부모님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왔다. 수현의 상태를 보지도 못한 담임교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무려 8주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등교한 수현에게서 8주 진단의 중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수현에게 부상이 어느 정도인지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자칫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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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담임교사의 역할은 극도로 한정된다. 즉시 당사자들은 분리되고 이후 절차는 학교폭력전담교사가 담당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과 수현 모두 한 교실의 학생이었다. 그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연히 담임교사였다. 하지만 학폭위 절차에서 담임교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 unsplash

 
곧바로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소집됐다. 교사에게는 학교폭력을 인지했을 경우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수현이 사건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수현의 부모님은 눈싸움 다음 날 바로 학폭위 소집을 요구했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담임교사의 역할은 극도로 한정된다. 즉시 당사자들은 분리되고 이후 절차는 학교폭력전담교사가 담당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과 수현 모두 한 교실의 학생이었다. 하지만 학폭위 절차에서 담임교사는 철저히 배제됐다.

전담교사는 학교폭력 사안으로 처리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수현은 단호했다.

"눈에 흙을 섞어 던졌어요. 명우는 눈에 돌까지 넣어서 던졌어요."

수현은 여섯 명이 눈에 흙을 섞어, 심지어 돌까지 넣어 자신에게만 던졌는데 어떻게 폭력이 아니냐며 흥분했다. 하지만 상대 학생들의 주장은 달랐다. 폭행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는데 수현이 먼저 눈을 던지며 다가오기에 자기들도 수현에게 눈을 던졌을 뿐이라고 했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었다.

쑥대밭이 된 교실, 무기력한 담임

자신의 교실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담임교사는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까지 느껴졌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30명 남짓 교실이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을 불러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화해를 시킬 수도 없었다. 학폭위에 따른 가·피해 학생들은 즉시 접근금지가 되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어떻게 해서든 학생들을 화해시키고 싶었다. 학폭위가 화해를 이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정은 시작부터 어려움에 부딪혔다. 수현의 아버지는 3학년 진학 시 눈싸움에 연루된 학생 전원을 수현과 다른 반으로 배치하라는 주장을 했다. 수현은 문과였고 문과 반은 3개밖에 없었다.

상대학생들을 모두 두 반에 배치해야 했다. 한두 명이야 어떻게 해본다고 해도 이들 모두를 두 개 반에 배치하려면 전교생의 반 배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현의 아버지는 반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정에 응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상대 학부모들은 조급해졌다. 특히 학폭위 조치사항이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학생부에 기록된 조치사항의 보존기간은 경중에 따라 졸업과 동시 삭제와 졸업 2년 후 삭제로 나뉜다. 하지만 가벼운 처분을 받는다고 해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졸업은 2월이지만 대학입학은 졸업 전에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문제였다. 학폭위 조치사항은 학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입 전형 후 삭제라면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든 졸업 2년 후 삭제되든 대학 입시에서 감점을 받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학종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학폭위 자체를 피해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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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에서 '학폭위'를 검색하면 관련 로펌 광고가 가장 먼저 노출된다. 학폭위가 학교폭력 문제를 종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형사 소송의 중간단계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현장의 모습이다. ⓒ unsplash

그런데 수현의 아버지는 돌연 그토록 완강했던 학급배치 주장을 꺾었다. 이후 수현 아버지는 비용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병원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8주 동안 안압을 확인하기 위해 매주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눈이 아픈 수현이 혼자 병원에 가기 어렵기 때문에 수현이 엄마가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현이 어머니가 하루 일하지 못하면 20만 원이 넘는 손해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의 요구는 끝나지 않았다. 수현의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1년 이상 상담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예상되는 비용만 천만 원이 넘었다. 상대 부모들은 아연실색했다. 결국 화해는 실패하고 말았다.

학폭위 절차는 매우 건조하다. 사안은 교실에서 발생하지만 처리에서 교실은 배제된다. 학교폭력 전담교사는 관련된 학생들을 면담하고 사안보고서를 학폭위에 올린다. 학폭위는 이를 기반으로 당사들과 부모님을 출석시켜 간단한 면담을 진행한다. 그리고는 짧은 회의를 거쳐 1부터 9호까지로 수치화된 조치사항을 결정한다.

학폭위에 출석해 10~20분의 면담을 마친 당사자들은 며칠 후 서면으로 조치사항을 통보받게 된다. 하지만 피해자로 지명된 학생은 조치가 가볍다며, 가해자로 지명된 학생은 과하다며 반발하기 일쑤다. 학폭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납득할 만한 어떠한 소통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재심신청이나 행정소송 등으로 이어진다면 갈등은 당사자들이 졸업한 후에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폭위 재심은 2013년 764건에서 2017년 1868건으로 약 245% 늘었다고 한다. 교육청 행정심판 역시 2013년 247건에서 2017년 643건으로 260% 폭증했다.

재심은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이 지나치게 가볍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이다. 반대로 행정심판은 가해 학생이 자신에 대한 처분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는 학폭위 처분에 대해 가·피해 학생 누구도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시장은 이미 이러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인터넷 포털에서 '학폭위'를 검색하면 관련 로펌 광고가 가장 먼저 노출된다. 연 2천 건이 넘는 재심과 행정심판 그리고 길게는 행정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학폭위 사건은 하나의 법률시장을 형성했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승률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교편만 잡던 선생님이 로펌을 상대로 법률분쟁을 벌여 이기기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돈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면 학폭위 결정을 뒤집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폭위는 행정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학폭위 결과를 근거로 민·형사소송을 이어가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학폭위가 학교폭력 문제를 종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형사소송의 중간단계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현장의 모습이다.

학교 떠난 학교 문제, 해결은 없고 갈등만 남아

다행히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서면사과와 접촉·협박·보복금지, 교내봉사 등 1∼3호 조치는 학생부에 기록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2018년 가해학생에게 내려진 학폭위 처분 가운데 이 세 가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63.4%였다. 수현 사건의 상대학생들 역시 1~3호 처분을 받았다.

교육부는 또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의 관계 회복을 할 수 있는 경우 학폭위에 사건을 넘기지 않고 학교가 해결하는 '학교 자체 해결제'도 도입한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사건을 학폭위에 넘기지 않는 것에 문서로 동의하고 피해 학생의 신체·정신 피해가 전치 2주 미만인지, 지속적인 폭력은 아니었는지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건의 은폐·축소를 막을 안전장치를 두겠다는 것이다.

이미 과거 많은 사례에서 경험했듯 학교폭력 문제는 한 청소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버릴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동시에 분리와 처벌 중심의 대처가 학교폭력에 대한 근본적 대응이 될 수도 없음을 경험했다.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시 학교로 가져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학폭위 중심의 학교폭력 대응 방식은 문제의 당사자인 교실을 배제하고 건조한 절차에만 매달림으로써 학교폭력 문제를 학교 밖으로 확장시켰다. 하지만 해결이 아니라 고소와 고발, 민사소송만 이어졌고, 갈등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수현의 사건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결국 이 일은 학폭위를 넘어 민·형사소송으로 이어졌다. 가정법원 소년재판부는 다시 한 번 중재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수현의 아버지는 1000만 원이 넘는 합의금을 주장했다. 끝내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재판부는 상대 학생들에게 별다른 처분을 하지 않았다. 민사소송 재판부는 수현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수현은 곧 졸업이었다. 2학년 겨울 눈싸움으로 시작한 분쟁은 학폭위, 형사고소, 민사소송을 모두 거쳐 졸업 직전에야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학교가 해결하지 못한 학교 문제, 결국 수현만이 아니라 모두가 피해자로 남았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학폭위 #청소년 #소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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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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