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 정부가 대책 세우라고?

[주장] 부동산 투자 실패를 보상하는 정부는 정상이 아니다

등록 2019.03.09 13:36수정 2019.03.1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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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집값 상승은 많은 국민의 관심 주제였다. 부동산 문제는 어떤 정부든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뜨거운 이슈라 현 정부도 총공세를 퍼부어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규제로 방어막을 구축했다. 이는 현 정부와 맥이 닿아있는 노무현 정부 시절 뼈아픈 부동산 정책에 대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신호는 언제든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고, 이는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교훈의 반영이다.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상반기, 강남의 주택 가격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이런 현상이 주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언론에서는 집값 상승을 막을 수 있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을 주문하는 기사와 사설이 도배됐다. 다양한 관점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제어할만한 정책수단들도 쏟아졌다. 이런 언론과 함께 실제로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실수요자들의 여론을 반영하여 정부도 단계적으로 금융과 세금 등의 수단을 가동하여 집값 잡기에 몰입했다.

2018년 하반기, 천정부지로 치솟던 강남 집값의 상승률이 둔화하고, 지난 연말과 올 초, 서울 곳곳에 집값이 하락하는 아파트 단지도 나왔다. 대세 상승이 꺾였다고 보고, 이제는 당분간 적어도 서울 지역의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투기지역 등의 대출 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주택 공시가격 현실화, 부동산 세무조사 강화 등 시장을 옥죄는 초강력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너무 달라진 보수·경제지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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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는 늘고, 매매거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총 1만9천633건으로 지난 1월(1만7천795건)에 비해 10.3%가량 증가했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업소. 2019.3.3 ⓒ 연합뉴스

 부동산 광풍에서 이제 벗어난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낄 때쯤 일부 언론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정부를 향해 집값 잡으라고 연일 공격하던 언론사들이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발생할 경제 문제를 걱정하고, '역전세난', '깡통전세' 같은 표현을 쓰면서 현 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새로운 정부 정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강남발 전세하락 12주 연속 떨어졌다", "역전세난 우려가 가장 큰 곳은 강동구다", "전셋값 내리막…커지는 '깡통 전세' 공포", "광역 17개 시도 중 11곳 '역전세 위험지대'"와 같은 문구를 내보내면서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정책에 대한 반응도 양면이 있고, 때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수만은 세포와 기관으로 구성된 거대한 유기체로서 국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와 정부 대응, 시장의 분위기를 전하는 언론의 일관성 없는 보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역전세난(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 깡통전세(매매가격이 전세가격보다 더 떨어져서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내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정부 대책을 주문하는 경우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집을 전세로 돌리는 사람은 다른 주거 공간을 소유하고 있거나 월세, 전세 등으로 대체 주거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일부 언론에서 역전세난, 깡통전세로 힘들다고 상정한 대부분의 주택 소유자들은 투자 또는 투기 목적을 가진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정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집값과 전세금의 차액 정도의 자본으로 집을 구입한 '갭투자자'들이다.

정부와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이 낳은 결과

이런 집단을 위한 정부 정책을 주문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삶의 필수 재화인 주거 공간을 투자의 수단으로 삼고, 정책 목적과 반하는 행동으로 금전적 손실을 본 사람에게 정부는 보상해선 안 된다. 만약 주식 투자로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정부가 금전적 지원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상식적인 정부의 역할이라고 볼 수 없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피해는 사회화하려는 요구는 인정되기 어렵다. 집주인의 문제로 전세금을 받기 어렵게 된 세입자를 위한 전세보증금보험제도는 이미 정착돼있다.

그리고 정책의 속성상 한번 시행된 정책은 '선례'가 되어 다른 유사 정책을 낳는다. 부동산 투자에 실패한 사람을 구제하는 정책은 계속해서 부동산 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다른 시장경제의 투자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는 꼴이다. '미친 집값'이라고 불렀던 부동산 광풍을 재현하게 되고, 손해 보는 투자자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잘못된 정책이 가진 위험성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이 아닌 '정치'로 정책현상을 접근하는 시도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치밀하게 정책적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정치적 지형에 갇혀 불필요한 정부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보기 불편하다. 보수·경제지의 부동산 시장 접근은 여론을 호도하고, 정부 정책결정자에게 잘못된 신호로 전달되어 정책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지금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부동산 시장 이후 주택 실소유자에게 적절한 공급이 이뤄질 수 있는 정책수단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일부 언론의 현재와 같은 태도는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동산 #역전세난 #정부의 역할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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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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