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쉬어 가도 좋은 삶' 개척자가 되는구나"

제4기 꿈틀리 인생학교 입학식을 통해 바라본 부모 마음

등록 2019.03.11 10:59수정 2019.03.18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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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덴마크 견학기행 <꿈틀리 비행기 12호> 단체사진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바토브의 그룬투비 동상 앞에서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오연호 대표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2019 덴마크 견학기행<꿈틀리 비행기 12호>참가자들 ⓒ 김선희

 
큰아이 돌 즈음에 이사가서 둘째 아이 돌까지 3, 4년간 살았던 성남의 한 아파트는 남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곳이었다. 복도식 아파트의 가장 끝 호수다 보니 복도에 종종 새들이 날아들어 쉬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둘기 한 쌍이 아예 둥지를 틀어 알을 낳고 길렀다. 호기심이 가득한 우리 가족에게 가까이서 비둘기 가족의 삶을 엿보는 흥미진진한 탐구생활이 시작되었다.

가족들 저마다 출퇴근, 등하원 길에 비둘기 가족의 일과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자주 이야기꽃을 피웠다. 작은 아이의 수유를 위해 점심시간에 집에 올 적마다 가누기 힘든 고개를 뻗쳐 들고 애타게 젖을 기다리는 둘째 아이의 힘찬 몸짓이 먹이를 기다리며 입을 쩍 벌리고 아우성치는 아기 비둘기의 모습과 겹쳐서 묘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간 부부 비둘기의 정성으로 잘 자란 아이 비둘기가 작지만 튼튼한 몸을 이루고 나자 비행 연습이 이루어졌다. 부모 비둘기는 난간에 선 아이 비둘기의 좌우로 1미터쯤 떨어진 곳에 각각 자리 잡아 어설픈 아이 비둘기의 날갯짓을 침착하게 바라봐 주었다. 언제든 균형을 잃으면 재빨리 다가가 붙잡아 줄 요량으로 보였다.

며칠 지난 뒤 보니 부부 비둘기와 아이 비둘기의 거리는 5미터 남짓으로 벌어졌다. 망설이듯 난간 아래를 바라보다가 힘차게 박차고 날아오르는 아이 비둘기의 첫 비행을 지켜보던 그들의 안도 어린 시선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차츰차츰 거리를 두더니 얼마 후 비둘기 부부는 아이 비둘기가 혹시 균형을 잃고 실수하더라고 날아가 도와줄 수 없는 꽤 먼 거리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아이 비둘기를 다시 본 기억이 없다. 가끔 들르는 비둘기 중 하나가 부모거나 아이일 거라고 짐작만 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순간에 우리 집에 찾아와준 비둘기 가족은 부모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스승이 되었다. 특히, 부모 노릇이 처음인 첫째 아이와의 거리 조정에 불안을 느낄 때마다 비둘기 가족이 보여준 모습이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며 마음을 다독이고 안심시켜준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체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느껴오던 아이라 종종 대안교육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스스로 일반학교에 다니고 싶어 해서 보기만 던져줄 뿐 강력하게 권유하거나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좌충우돌 적응해나가는 아이를 보며 아이의 뜻을 믿고 기다린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일반학교에 다녀준 덕에 공교육에 대한 부모와 교사의 마음을 동시에 민감하게 느끼고 알아챌 수 있었다. 지도해준 여러 분의 교사들에게도 나에게도 온통 특별함으로 점철된 아이라서 고감도 부모이고 교사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나의 일반고 전입과 동시에 일반고에 입학한 지난 한 해는 제자들과 더불어 가장 큰 동지였고 스승이었다. 1년 동안 아이는 자신의 특별함을 조금씩 지워 나가며 일반적인 고등학생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간 무심했던 공부도 꽤 열심히 했고, 두루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도 했다. 그런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던 이 아이만의 개성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 흔한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성적 강박과 강도 높은 정서적 피로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방법을 일일이 지도하지 않던 비둘기 부부의 시선을 떠올리며 아이 스스로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다만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고 갈 수 있는 길도 많다는 것은 알려주고는 싶었다. 그래서 책과 여행을 통해 좀 더 많은 보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 사회가 똘똘 뭉친 강박과 조금은 다른 삶을
 

울러럽 체육 에프터스콜레 학생들과 함께한 꿈틀리 비행팀 아이들 2019 덴마크 견학기행 중 찾은 울러럽 체육 에프터스콜레 학생들과 함께 축구를 즐기고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셀카를 찍고 있는 아이들 ⓒ 김선희

 
지난해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 참여를 계기로 만나 뵙게 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님을 통해 책에서 접한 꿈틀리 인생학교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 받게 되었다. 수년 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처음 읽었을 때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온 그 사회가 현실 세상 속에 덴마크라는 한 사회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심장이 쿵쿵 뛰고 살맛이 났었다.

그리고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통해 그 부러운 사회의 이모저모가 조금씩 우리사회로 이식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꿈틀리 인생학교를 소개해 주었다. 아이는 망설였다.

"내 머릿속에 그려진 학교는 늘 선생님이 앞에서 강의하고 아이들은 그를 바라보며 듣고 적고 외우는 일뿐이야. 그 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또 다른 형태의 학교가 무엇인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지금과는 다른 학교를 경험하고 싶긴 한데,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간다는 게 좀 두려워."

그래서 꿈틀리 인생학교 설명회에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가 주최하는 2019 덴마크 견학기행 '꿈틀 비행기 12호'에 함께 했다. 여행을 통해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귀로 듣고, 자기 가슴으로 느낀 아이는 선뜻 꿈틀리 인생학교를 선택했다. 기회가 된다면 덴마크 인생학교(에프터스콜레)도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적극적인 행보가 선택에 부담으로 작용했을까 봐 겨울방학 동안 여러 차례 대화했다. 대화를 거듭하면서도 문득 두렵곤 했다. '1년간의 인생학교 기간을 마치고 나서 내년에 일반고 2학년에 진학하게 되면 1년 후배들과 함께 다녀야 하는데, 아이가 그때 가서 뒤늦게 후회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재차 물었다.

"아직도 자퇴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 네 선택이 분명한지 다시 한번 알고 싶어. 엄마가 소개한 거 말고 꿈틀리 인생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너만의 이유가 있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그러자 아이는 힘주어 말했다.

"응, 나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싶어. 공부도, 관계도, 그 외 다른 생활 관리도... 그런데 한꺼번에 다 잘하기가 너무 어려웠어. 피가 다 마를 지경이었어. 그래서 1년간의 인생학교를 통해 인간관계와 생활관리 능력을 먼저 기르고 싶어. 나에겐 무엇보다 그게 우선인 것 같아."

그날 이후 '이제 몇 미터쯤 더 떨어져 지켜봐도 좋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입학식 날 아침, 며칠 앞으로 다가올 우리 부부의 생일을 당겨 미역국 상을 차렸다. 아이가 없는 생일 아침 풍경이 아쉬울 것 같아서였다. 그 자리에서 큰아이에게 입학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아들아, 축하한다. 삼십여 명의 친구들과 더불어 쉼 없이 달려가는 대한민국에서 '쉬어 가도 좋은 삶'을 먼저 살아보는 개척자가 되는구나.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먼저 임시 정부를 세워서 우리가 엄연한 독립국가임을 실현해 낸 사람들처럼 너희들은 성공 강박의 이 사회로부터 독립하여 사유하는 삶을 먼저 살아가는 선각자들이 되는 거야."

아이도 나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음은 그렇게 호기로웠으나 막상 출발을 앞두고 한 바탕 호되게 분리의식을 치렀다. 아침밥을 먹고 헤어짐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동동거려지는 나와는 달리 평소처럼 느긋한 아이를 보니, "엄마도 없이 앞으로 어찌 살려고 이렇게 태연스러워?"하는 쓰나미 같은 걱정과 근심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러나 '나는 출발할 준비가 다 됐어'라고 말하며 갑작스런 걱정 벼락을 맞고도 의연한 아이의 표정은 다시 내게 말해주었다. 그 걱정의 실체는 '너도 없이 엄마는 무슨 흥으로 살꼬?'하는 '자기 염려'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내 진정하여 '엄마도 나름의 흥을 지어가며 재밌게 살아갈게'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크게 힘껏 안아주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유난스럽고 다채로운 성장에의 촉진제가 되어준 '첫 번째 부모 되기 스승님'이 나를 이 만큼이나 잘 키워서 날려 보내주는구나! 지나고 보니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저 피와 살을 이뤄갈 수 있도록 먹이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일 말고는 별게 없었지 싶다. 아이 덕에 '내가 살고 싶은 삶'에 과감한 몸짓을 일으키며 조금은 더 닿을 수 있었으니 해준 게 많은 것은 오히려 아이였다.

이제 아이 덕에 학교의 품안에서만 자라온 내가 학교 밖 아이들의 삶을 긴밀히 엿볼 수 있게 되었으니 좀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 모두가 똘똘 뭉친 강박의 굴레에서 조금은 다른 삶을 개척해보겠다는 아이들과 학부형들과의 만남을 통해 또 하나의 시선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첫 주 보내고 돌아온 아이의 흥분된 목소리
 

제 4기 꿈틀리 인생학교 입학식 중 정승관 교장선생님의 교직원 소개 장면 지난 3월 3일, 강화도의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열린 제 4기 신입생들의 입학식에서 교직원을 소개하고 있는 정승관 교장선생님 ⓒ 김선희

 
강화도의 한 폐교에 꾸려진 꿈틀리 인생학교의 입학식은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교직원 소개였다. '교장, 교감, 행정실장, 부장교사, 담임교사, 비교과 교사...' 무슨 대단한 철칙이라도 되는 듯 교직원간 위계를 설정하는 일반학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고 신선했다.

정승관 교장 선생님이 가장 먼저 소개하신 분은 아이들의 밥을 지어줄 이른바 '큰 엄마'였다. 큰 엄마는 정성스럽게 적은 축사를 들고 아이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을 표하며 따뜻하게 맞으면서도 밥상머리에서 나눠야 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태도를 강조하셨다. 그 누구의 당부보다도 피부에 와 닿고 강렬한 상생에의 배움이 일어나는 귀한 말씀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한 생명을 길러내는 일에 밥 지어 먹이는 일 말고 무엇이 더 있었을까?' 언젠가는 부모도 자식도 일과 공부로 뿔뿔이 흩어진 쓸쓸한 밥상이 삐뚤어진 선로를 달려온 우리 시대의 종착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되어 주리라 생각해본다.

그간 맹목적인 성취를 위해 내 달리지 않고 매일 저녁 밥상머리에 함께해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울컥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나고 보니 참 보수적인 삶이었다. 그 '마땅히 지켜져야 할 것을 진보의 목소리로 듣고 있는 이 사회, 정말 남아난 것이 하나도 없는 사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입학식 말미의 가족 소개에서 나눈 모든 학생들과 부모들의 소감이 하나하나 밤하늘의 별처럼 가슴 깊이 아로새겨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자유'는 곧 '자기 이유'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로 시작한 한 아버지의 말이었다.

아이 스스로 자기이유를 쫓아 살아갈 수 있도록 바라보며 함께 살아오느라 모험 투성이 삶의 나날들이었다. 대한민국 양육의 표준화 시스템이 전형적으로 잘 돌아가는 분당이라는 지역에서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방치하는 부모'라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충분히 자유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입학식을 마치고 차에서 짐 가방을 내리자마자 어느결에 들고는 훌쩍 날아가듯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 뒷모습은 마치 자기 날개로 날고 싶어 오래도록 기다려온 잘생긴 비둘기 한 마리의 뒤태와 닮아 있었다. 십수 년을 살아온 울타리 안에서도 자기 날개의 존재를 잊지 않고 자기 힘을 키워온 아이의 높은 기상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전화 한 통 안 할게 뻔한 아이를 뒤로하고 우리도 미련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첫 주를 보내고 돌아온 아이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꿈틀리 인생학교는 우리들이 진짜 주인이야. 우리 손으로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실감 나. 청소나 밥 같은 살림살이도 함께 참여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배울지도 스스로 정하고 있어."

아이의 목소리는 태산처럼 단단하고 힘이 넘쳤다.

'그래, 아들아, 이 사회의 주인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야. 너희들이 먼저 그 삶을 제대로 살아봄으로써 그 엄연한 진리가 이 사회에서 잘 유통될 수 있도록 널리 확산시켜 주기를 바란다.'

이제 따로 또 같이 조금 더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의 삶에 영감을 주고받을 새로운 동지를 얻었다. 이에 뜨거운 마음으로 흠뻑 자축한다.
 

짐가방을 들고 기숙사로 향하는 아이의 뒷 모습 제 4기 꿈틀리 인생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날아오르듯 한 달음에 계단에 올라 기숙사를 향해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 모습 ⓒ 김선희

 
덧붙이는 글 본인 페이스북에 친구공개로 포스팅한 글임.
#꿈틀리 인생학교 #꿈틀 비행기 12호 #덴마크 견학기행 #꿈틀리 인생학교 제 4기 입학식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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