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재워줄래?" 스물넷 내게, 유부남 바이어가 물었다

성차별은 '그 나물에 그 밥'... 한국과 일본에서 <82년생 김지영>이 대박 친 이유

등록 2019.03.15 09:22수정 2019.03.1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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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도 소위 '대박'을 쳤다. 이 책을 출간한 치쿠마쇼보 출판사의 <82년생 김지영> 특별 페이지. ⓒ 사이트 갈무리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도 소위 '대박'을 쳤다. 이 책을 출간한 치쿠마쇼보 출판사에서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100인의 목소리(100人の声)라는 타이틀로 100건의 독자 후기를 공개했다(링크).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는 감상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몇 가지 인상 깊었던 후기를 꼽아보았다.

54년생 Kyoko Iwai
"그야말로 일본에서도 의대 입시 비리를 포함해 성차별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커다란 반동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중, 장년층으로서는 부끄럽기가 그지없습니다. 다수의 일본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영 세대인 3명의 딸에게도 추천할 생각입니다."

70년생 sky
"마지막 장면에서 정신과 의사의 한 마디는 마치 호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끔찍하고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시면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생겨서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것이 제게는 기쁨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약간의 불만은 있었지만,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습니다. 다만, 제 딸이 이 책에 쓰인 것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 쓰인 내용에 대해 공감했고 분노도 느꼈습니다."

81년생 아히루
"여성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여성이지만 이 책을 남성이 읽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를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자들이여 각성하라!'라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에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82년생 미유키
"지금껏 나 혼자만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 책이었습니다. 여성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일들이 과민반응', '피해 망상'이라는 식으로 억눌려 스스로도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건가?'하고 스스로의 감각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나 자신이 몸으로 '이렇게 느낀다', '이런 피해를 입었다'라고 직감해도 된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일본 여성들이 남긴 후기를 읽다 보면 일본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다. 아니, 어쩌면 '혼네'(本音, 본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믿는 그들의 기질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우리보다 더 삭이고 삭인 감정의 응어리가 가슴 속 깊숙이 뿌리박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1989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명으로 처음 출간된 이래 청춘들의 필독서라 불리며 출판 사상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여대생 미도리(고바야시)는 자신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직설적으로 표출한다.


"그때 생각했어. 이 자식들 모두 엉터리라고. 적당히 그럴듯한 말이나 늘어놓고 의기양양해하면서 신입생 여자애 눈길을 끌어서는 스커트 안에 손이나 집어넣을 생각밖에 안 해, 그 사람들. 그러다 4학년이 되면 머리를 짧게 깎고 미쓰비시 상사니 TBS니 IBM이니 후지 은행이니 하는 좋은 기업에 들어가서는 마르크스 같은 거 읽어 보지도 않은 귀여운 마누라를 얻어서 아이한테 폼 나는 이름을 지어 주는 거야. … 다른 신입생들은 또 어떻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다 안다는 표정으로 실실 웃어. 그리고 나중에 내게 이렇게 말하지. 너 바보냐, 모르더라도 그냥 알았다고 예예, 하면 그만이라고."

"어느 날 야간 정치 집회에 참가하기로 했는데, 여자애들에게 각자 야식용 주먹밥을 스무 개씩 만들어 오라는 거야. 정말 웃기고 있어, 완전히 성차별이잖아. 그렇지만 늘 문제만 일으키기도 뭐하고 해서 나도 아무 말 않고 주먹밥 스무 개 만들어 갔어. 절인 매실을 넣고 김으로 말아서. 나중에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고바야시의 주먹밥에는 매실 절임밖에 안 들었고, 반찬도 안 가지고 왔다고. 다른 여자애들 주먹밥에는 연어니 명란 같은 게 들었고, 계란말이를 곁들이기도 했다는 거야.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어. 혁명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인간들이 그깟 야식 주먹밥 같은 데 왜 신경을 써. 김으로 말고 안에 매실 절임을 넣었으면 일등급이잖아. 인도의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란 말이야."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 말 고도성장기의 일본, 도쿄. 그 시절 일본의 지식인들이 느꼈던 사회의 모순이 미도리의 대사 속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젊은 날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살았던 상실의 시대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무언가 달라졌을까.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2000년대라고 해서 크게 나아진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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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을' 중의 '을', 영업팀 여성 직원이었다 ⓒ usplash


난 '을' 중의 '을', 영업팀 여성 직원이었다

나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가정 배경 속에서 스스로를 '바이링걸(이중언어사용자)'이라고 칭할 수 있을 만한 언어 능력을 갖출 수 있었고, 그 덕에 지금껏 밥벌이를 하고 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인생 2막'에 뛰어들었다지만, 지난 십여 년 간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두 나라의 성차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2006년 여름, 어쩌다(?) 섬유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나의 첫 직장은 일본의 한 브랜드에 제품을 제조, 수출하는 중견 기업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을'이었고 그들은 '갑'이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훌륭한 인재로 환영을 받은 나는 단박에 한 팀의 영업 담당자(MD)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언어 능력 덕분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변의 얘기를 듣자 하니 아무나 MD를 시키는 게 아니란다. 그러고 보니 각 팀의 MD는 모두 '여자'였고, 이왕이면 '예쁜 여자'였고, 그도 아니면 일본인 바이어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여자'였다. MD들의 직속상관인 본부장님 역시 우아하고 아름다운 커리어 우먼이었는데, 애석하게도 업무 능력보다는 '얼굴마담'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그때 나는 내가 마치 주상 전하께 승은을 입어 하루아침에 후궁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운 좋은 무수리라도 된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느꼈었다. 회사에서 내게 기대하는 영업 업무라는 것은 한무제 때 화친 정책의 일환으로 오손 군주에게 스물다섯의 강도 공주 유세군을 시집보낸 이른바 '미녀 외교'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모두가 쉬쉬하는 이야기지만, 그 옛날 이 바닥에서는 출장이라는 이름 하에 일본 바이어에게 성 접대를 제공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공공연한 관행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고들 한다. 강산이 변해도 두세 번은 변했을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자의든 타의든 간에 과거의 낡은 방식을 탈피하지 못한 채로 사업을 끌어가던 회사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렇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랬다고 대학까지 보내준 부모에게 언제까지고 빌붙어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시에 그 시절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의식 수준이라는 것이, 나를 둘러싼 현실에 대해 용변을 보고 뒤를 안 닦은 것 마냥 개운치 않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직장 생활이란 으레 이런 것이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보다' 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는 수준에 그쳤던 탓이기도 하다.

"서울에 놀러 가면 너희 집에 좀 재워줄래?"

음흉한 농담을 건네는 일본인 바이어에게 스물넷의 나는 냉소하며 이렇게 대답했었다.

"저희 집은 스위트룸 요금이라 안 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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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이 서른일곱이 되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 unsplash


스물넷이 서른일곱이 돼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이러한 풍토가 어디 내가 몸담고 있던 섬유 업계에만 국한된 일이었겠는가. 나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는 것을 몸소 겪은 산증인인 셈이고, 그런 면에서 오늘날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스물넷의 아야카가 서른일곱이 된 지금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의 몇몇 의대에서는 의료 현장에서 여성 의사를 꺼려 한다는 이유로 여학생을 탈락시키는 입시 부정 사건이 벌어졌고, 정치인들의 성차별적인 망언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온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미투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끊이지 않고,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고은 시인은 1심 패소에도 불구하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우리 집에 재워 달라던 유부남 아저씨에게 "이런 시베리아허스키가 수박 씨 발라 먹는 소리 하고 있네" 하고 도끼눈을 뜨고 쏘아붙이며 정식으로 사과하도록 요구하지 못했던 것을 자책하지는 않는다. 그때 나는 분명히 불쾌감을 느꼈고,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직감했으며, 비록 서툴고 부족했을지언정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나의 분노를 표현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만 사회의 진보는 치열한 자기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기에, 나는 더디게만 느껴지는 변화의 흐름 속에도 서툴렀던 어린 날을 이따금 상기하며 나부터 제대로 분노하고 그 분노를 제대로 표출할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을 갖춘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후배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었을 때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를, 누구나 자연스레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다음 혹은 그 다음 세대에서는 구태여 '세계 여성의 날'을 지정하고 기념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기념일 같은 건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82년생 김지영 #미투 #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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