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없는 학교의 유쾌발랄한 점심시간

[도쿄 옥탑방 일기 17화] 자유학원 탐방기

등록 2019.03.14 08:14수정 2019.03.1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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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원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적어낸 단어를 소개하고 있다. ⓒ 김경년

  
점심시간에 웃통 벗어던진 학생

넓은 식당에서 떠들썩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학생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단상 앞쪽에 칠판을 든 학생 한 명이 나와 있었다.

학생은 칠판에 쓰인 것들을 지휘봉으로 가리키면서 식사 준비에 든 비용과 영양가, 재료생산지 등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일일 급식봉사를 맡았던 학부모 한 명도 올라와 조리 과정을 설명하고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한 학생은 "우리 아빠 최고야"라고 소리쳐 폭소를 자아냈다.

끝났나 했더니, 다른 학생 너덧 명이 이어서 단상에 올라왔다. "내일 저녁 마라톤대회에 많이 참석해주세요. 아니면 많이 와서 구경이라도 해주세요." 매년 이 학교에서 전통적으로 열리는 마라톤대회의 운영위원을 맡은 학생들이 대회를 홍보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높여 설명해도 반응이 시원치 않자 한 학생은 급기야 웃통까지 벗어던지고 사자후를 토한다. 비로소 휘파람과 박수가 터져나온다.

다음에는 학생들의 생각을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지난 일주일간 생각해온 단어를 종이에 써내면 선생님이 평가해서 좋은 것들을 게시판에 붙이고 소개하는 것이다. '여명', '우정', '죄악', '생' 같은 철학적인 단어가 많았지만, '평창올림픽으로부터 1년'이란 단어가 나와 기자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모두 끝나니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일어나 식기를 치우고 행주질을 한다. 지금까지 본 가장 시끌벅적하고 생기발랄한 학교 점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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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원 학생들이 점심식사후 자신들의 식기를 설거지하고 있다. ⓒ 김경년

  
식사준비·설거지 모두 스스로... 밭 일구고 돼지도 쳐요

주입식 입시교육에 찌든 한국에 비해 학생 스스로의 생활 능력을 키워주는 특별한 학교가 일본에 있다고 해서 지난달 말 찾아가 봤다.

도쿄 도심 이케부쿠로역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15분 거리 한적한 전원도시인 히가시쿠루메시에 위치한 '자유학원(지유카쿠엔.自由学園)'.

3만 평에 이르는 너른 부지 위에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이 학교가 강조하는 것은 '자치'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앞서의 자유분방한 점심시간이 끝나면 학생들은 식사 준비도 스스로 했듯이 자신들이 먹은 식반과 식기도 스스로 설거지 한다.

식사부터 청소까지 모든 일을 학생 스스로 한다. 이 학교 남자부(중·고) 학생의 경우 중학교 1년간은 의무적으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기숙사에서도 직원 없이 모든 것을 학생들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한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머리에 단정한 스카프를 두른 여학생들이 직접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교내 곳곳을 청소하는 모습이 보였다.

'스스로 만드는 학교'가 장래에 '스스로 만드는 사회'로 이어진다는 신념으로 가득찬 이 학교 학생들은 그래서 교내에서 밭도 스스로 일구고, 직접 닭이나 돼지를 치기도 한다. 이곳에서 수확한 곡물이나 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다.

이 학교 남자부 사라시나 고이치 교장은 "우리 학교는 청소나 식사를 도와주는 교직원이 없다"며 "만약 생활을 도와주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그때부터 자기가 만드는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고, 나아가 청소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간 서열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학생 스스로 책임지는 생활을 중시하는 이 학교의 풍토는 등산, 체조 등 단체활동에서도 드러난다. 이 학교는 매년 2박3일간 중학교, 고등학교 남학생 전원이 2000m이상 높이의 산을 오르는 등산대회가 열리는데, 교사 등 어른이 아닌 학생들이 리더, 부리더, 반장 등을 맡아 자신의 그룹을 이끌어 간다. 모두 책임감을 갖고 주의하기 때문에 어른이 리더를 할 때보다도 오히려 사고가 적게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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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원 남자부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사앞 잔디밭에서 놀고 있다. ⓒ 유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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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3만평 부지위에 마련된 자유학원 캠퍼스. ⓒ 김경년

 
한국의 사학처럼 학생에게 종교 강제하지 않아

이같이 학생들의 자치를 중요시하는 자유학원은 지난 1921년 일본 일간신문 최초의 여기자였던 하니 모토코씨 부부가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여성잡지에서 펴낸 가계부가 많이 팔려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부는 당시 일본의 전체주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생각하게 하지 않고 단지 지식을 주입하는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스스로 돈을 내 자신들의 학교를 설립하기로 마음 먹었다.

모토코씨가 학교를 만들게 된 취지를 편지에 적어 자신의 독자들에게 보냈더니 규슈에서까지 이틀동안 기차를 태워 아이를 보내는 등 큰 호응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2차대전 중에는 '자유'라는 말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정부가 개명을 종용했지만 끝까지 저항해 지켜내기도 했다.

자유학원 캠퍼스에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교, 최고학부(대학) 등이 모두 모여 있는데, 이 학교의 교육방향에 찬성하는 학부모들이 많아 유치원에 입학해 대학까지 수료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기독교 정신을 기초로 한 명실상부한 기독교 학교지만 우리나라 사학처럼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제하지 않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학교일과에서 종교와 관련된 활동은 아침 예배시간뿐 그 외 종교 관련 활동은 없다.

선발과정에서도 신앙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덕분인지 기독교를 믿는 학생은 전체에서 10% 정도이며, 교사들도 기독교인은 30%에 그친다. 심지어 아버지가 스님인 학생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사라시나 교장은 "내 신앙만 최고라는 생각은 오만이 되기 쉽고, 어느 종교나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똑같다"며 "우리 학교는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건 학생 스스로, 교원들은 서포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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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때부터 스스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라시나 고이치 교장. ⓒ 김경년


체육관에서 농구 연습 하고 있는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뒤에서 한 여학생이 반갑게 인사했다. "혹시 한국분들이세요?"

누구냐고 물어보니 이 학교 고등학교 2학년을 다니고 있는 서아무개양이었다. 서양은 본인이 다니던 교회에서 자유학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며 부모님과 상의해 초등학교를 마친 뒤 중학교부터 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밥 하고 청소하고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고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해 좀 어려웠지만 곧 적응했다며 활짝 웃는다.

남자부에는 남자 198명, 여자 25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는 자유학원 중·고등학교에는 남자부에만 7명의 외국인이 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귀띔.

스스로 유치원부터 최고학부까지 자유학원 출신이라는 사라시나 교장은 "자유학원은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교원들은 서포트 역할만 하려고 한다"며 "학생들이 졸업하고서도 동료들과 협동해나가면서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배워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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