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작업복을 입고, 가끔 양복을 입는 아빠

[나를 붙잡은 말들] 이제라도 바라본다, 반짝이는 아빠의 하루를

등록 2019.03.14 18:18수정 2019.04.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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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붙잡은 말들'은 프리랜스 아나운서 임희정씨가 쓰는 '노동으로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아빠가 '양복'을 입는 날

아빠가 '양복'을 입는 날은 누군가의 결혼식 혹은 누군가의 장례식 때였다. 아빠는 경조사 때만 멀끔한 옷을 입었다. 아빠는 매일 작업복을 입어야 했기에 새하얀 와이셔츠도 사선 무늬의 넥타이도 도통 걸칠 일이 없었다.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메고 아침에 출근하는 아버지가 아닌, 작업복을 입고 연장 가방을 둘러메고 새벽에 나가는 나의 아버지. 아빠의 옷은 색깔이 없고, 사이즈가 없고, 힘이 없었다. 금세 시멘트와 먼지로 뒤덮일 옷은 까만색과 회색이어야 했고, 하루 종일 땀에 젖어 등에 붙어버릴 옷은 그저 크기만 하면 됐다.

멀끔 보다 후줄근이라 표현해야 했던 아빠의 옷은 '작업복'이었다. 빨기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옷. 엄마가 섬유 유연제를 아무리 넣어도, 표백제를 아무리 넣어도, 향기도 나지 않고 하얘지지도 않았던 옷.

아빠는 자주 그 작업복을 사러 다녔다. 시장 안쪽 구석 헌 옷 가게에 들어가 할머니의 몸뻬 바지 같은 펑퍼짐한 바지, 까맣고 체크무늬가 있던 남방셔츠를 여러 벌 사 왔다. 그 옷의 가격은 하나에 만 원이 넘어가는 것이 없었고, 모두 사천 원 아니면 오천 원이었다. 바지 셋 셔츠 셋, 총 여섯 벌을 사도 삼만 원이 넘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작업복을 사러 간다며 삼만 원의 용돈을 받아 들고 청량리에 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작업복을 사고 아빠 손에 남았을 삼천 원 남짓. 그 삼천 원으로 여름엔 하드를, 겨울엔 붕어빵을 사 왔다. 아빠는 나에게 줄 하드와 붕어빵을 사기 위해 여섯 벌 까지만 옷을 사야 했을까? 엄마가 몇만 원 더 챙겨 주었다면 아빠는 술도 한잔 드시고 오셨을까?

아빠가 '구두'를 신는 날
 

아빠는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외출할 때면 신발을 끌지 않았다. ⓒ 최은경


아빠가 '구두'를 신는 날은 누군가의 결혼식 혹은 누군가의 장례식 때였다. 경조사 때만 광나는 까만 구두를 신었다. 아빠는 매일 주택, 빌라, 아파트, 건물을 오르내려야 했기에 각 잡혀 있고 굽이 있는 구두를 신을 일은 도무지 없었다.


까만 새벽 집을 나설 때, 또각또각 소리 대신 직직 운동화 끄는 소리가 났다. 복도가 긴 우리 집 아파트. 새벽에 잠을 뒤척이다 '직직' 소리가 내 방 창문을 넘어 복도에서 울려 퍼지다 멀어지면, 속으로 '아빠가 일 나가시는구나' 생각했다.

아빠의 신발은 뒷바닥이 항상 한쪽으로 심하게 닳아 있었다. 항상 구부정하게 발을 끌며 걸었다. 가끔 아빠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어깨는 굽어 있고, 몸은 앞으로 쏠려 있고, 발은 땅에 쓸려 위태했다. 땅 위에 곧게 버티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 어깨 펴야지!' 가끔 굽어 있는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 드렸지만 이내 다시 구부러졌다.

아빠는 하루가 버거워 몸조차 바로 세우지 못한다. 신발이 끌린다는 것은 몸이 지쳤다는 것. 발조차 들어 올릴 힘이 없다는 것이다. 아빠는 매일 걸어서가 아닌, 두 발을 겨우 '끌며' 퇴근했다. 고된 하루치의 노동 후 아빠의 신발은 매일 조금씩 닳았다. 

'직직' 복도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우리 집 현관문이 열렸다. 아빠의 퇴근 소리. 엄마는 직직 소리가 들려오면 "아빠 왔다!" 나에게 말했다. 집에 들어온 아빠가 묵직한 연장 가방을 바닥에 툭 내려놓고, 냄새 나고 먼지 나는 작업복을 벗으면 엄마는 뜨거운 물을 받아놓은 빨간 고무대야에 담가 놓았다.

섬유 유연제를 넣고 표백제를 풀고 밤새도록 담가놓았다. 까만 물속에 섬유 유연제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아빠의 작업복이 놓여 있던 화장실. 나는 그 대야를 옆에 두고 양치도 하고 샤워도 했다. 씻는 동안 이상하게도 그 옷을 자꾸만 멍하니 바라보게 됐다. 물에 젖어 대야 속에서 까만 물을 빼고 있는 아빠의 작업복. 며칠 후 다시 아빠의 살갗에 붙어 땀에 젖어버릴 옷. 아빠의 옷. 아빠의 옷을 응시했다.

가끔 지인의 결혼식에 갈 때 아빠는 장롱 깊숙이 넣어둔 양복을 꺼내 하나하나 입어보고 몇 개 없는 넥타이도 셔츠에 대보며 신나 했다. 오랜만에 입는 멀끔한 옷이 좋은 듯, 굳이 나를 불러 어떤 색의 넥타이가 어울리냐 물었다. 멀끔한 아빠의 옷. 일 년에 몇 번 볼 수 없는 양복을 입은 아빠의 모습이 나도 좋았다.

새하얀 셔츠에 파란 사선무늬 넥타이를 매고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를 신은 아빠. 희한하게도 아빠는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외출할 때면 신발을 끌지 않았다. 어깨에 힘도 주고 걸었고,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도 잘 들렸다. 내 방 창문 넘어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 '아빠가 좋은 데 가시는 구나' 생각했다.

나는 경조사가 좋다
 

구두수선집 앞에 놓인 신발들. 어디에도 아빠 운동화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 최은경


나는 아빠의 경조사가 좋다. 누군가의 결혼식도 심지어 누군가의 장례식도 아빠가 멀끔한 옷을 입어 좋다. 말쑥한 차림새로 외출을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하루는 아빠가 노동자 같지 않아서 좋다. 그 옷은 외출하고 돌아와도 엄마가 대야에 담가놓지 않아도 돼서 좋다. 그날은 내가 화장실에서 응시하는 일이 없어서 좋다.

양복처럼 멀끔한 아빠의 삶. 와이셔츠처럼 새하얗고, 구두처럼 반짝반짝 광나는 아빠의 하루. 번듯한 나날들. 이제라도 바라본다. 아빠는 매일 작업복을 입고 가끔 양복을 입는 사람.

나는 이제 아빠가 매일 양복을 입고 가끔 작업복을 입길 바라지 않는다. 대신 매일 편한 옷을 입고 가끔 작업복을 입길 바란다. 그러다 누군가의 좋은 일 혹은 누군가의 슬픈 일이 있을 때 여전히 기분 좋게 양복을 꺼내 입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월급을 타면 아빠의 손을 잡고 시장이 아닌 백화점에 간다. 그곳에서 후줄근한 작업복이 아닌 알록달록 새 옷을, 최소한 한 벌에 삼 만원 이상 하는 멀끔한 옷을 골라 아빠에게 입혀 드린다. 돌아오는 길에는 고깃집에 들러 아빠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양껏 드시게 하고 술도 한 잔 사드린다.

집에 돌아와 아빠의 옷에서 고기 냄새와 소주 냄새가 풀풀 나면, 엄마는 항상 그랬듯 그 옷을 또 고무대야에 넣고 조물조물 담가 놓으려 한다. 그러면 나는 엄마에게 이 옷은 작업복이 아니라 새 옷이니까 담가놓지 않아도 된다고, 세탁기에 넣거나 세탁소에 맡기라고 말한다. 사 준 사람도, 입은 사람도, 빨아야 할 사람도, 그 누구도 슬프지 않은 아빠의 옷.

아빠는 여전히 매일 작업복을 입겠지만 가끔 딸이 사준 옷을 입고 기분 좋게 취해 발을 끌며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직직 운동화 끄는 소리가 저 멀리 복도에서 들려와도 '아빠가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들어오시는구나!' 나는 생각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https://brunch.co.kr/@hjl0520/27)에도 실립니다.
#아버지 #작업복 #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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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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