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전두환, 민주주의에 당해 보지도 않고

[取중眞담] 2019년 3월 11일 광주, 1931년생 그에겐 어떤 날이었을까

등록 2019.03.12 18:59수정 2019.03.1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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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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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항의 받으며 광주법원 떠나는 전두환 전두환씨가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참석한 뒤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며 법원을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11일 낮 12시 30분,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한 전두환씨는 그저 당당했다. 취재진은 그에게 "(사자명예훼손) 혐의 인정하나", "(5.18 당시) 발포명령 부인하나", "광주시민에게 사과할 생각 없나" 이렇게 세 가지를 물었다.

전씨는 당황한 듯했다. 취재진의 팔을 뿌리치며 "이거 왜 이래"라고 외쳤다. 미간을 잔뜩 지뿌린, 짜증스러운 얼굴이었다. 표정은 달랐지만 과거 슬며시 웃으며 내뱉었던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란 말이 떠올랐다. 끝까지 따라붙은 기자들을 전씨의 경호원들은 가볍게 밀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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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 부인하냐" 질문에 짜증해는 전두환 "왜 이래" 전두환씨가 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며 '(5.18당시) 발포명령 부인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왜 이래?"라고 말하며 짜증을 내고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 공동취재사진

   
재판은 오후 2시 30분 시작됐고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됐다. 한동안 법원에서 나오지 않던 전씨는 오후 4시 30분이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몸으로 막아 선 경찰들 너머에서 수많은 시민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전씨는 쉽사리 차에 오르지 못했다. 더 늘어난 취재진은 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수많은 카메라가 그를 조준했고, 급기야 기자 한 명은 차문 앞에 서서 전씨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경호원들도 더 이상 취재진을 가볍게 밀쳐낼 수 없었다.

오도 가도 못한 전씨가 의지할 곳은 꼭 붙든 아내 이순자씨의 손뿐이었다. 20초 가까이 차에 오르지 못하며 그저 앞뒤를 번갈아 돌아보던 그는 경호원들 손에 밀리다시피 차에 올랐다. 아니, 태워졌다. 그때만큼은 그의 얼굴에서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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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차량 에워싼 광주시민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뒤 청사를 떠나자, 시민들이 차량을 에워싸며 전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돌이켜보면 전씨 평생 이런 적이 있었을까.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사조직 '하나회'의 수장을 맡았고, 그 힘으로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했다.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땡전뉴스'에선 광주를 폭도로 칭했다.

독재로 얼룩진 대통령 재임 시절, 6월항쟁으로 전씨는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친구(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편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12.12군사반란 및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전씨는 결국 구속됐지만, 그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구속 전 '골목성명'의 현장에는 두 발 딛고 당당히 서서 "정치 보복"을 내뱉는 전씨의 모습만 있었다. 과거 신군부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그를 지원했다. 전씨에게 내려진 무기징역형은 2년 만에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1997년 감옥에서 나온 그는 20년 넘는 시간 동안 반민주주의 세력에 의해 떠받들어졌다. 몇 차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공식 석상에서, 전씨는 환대와 덕담에 휩싸여 웃고 있었다. 일부 유력 정치인들은 그에게 '문안을 드리는 것'을 상징적 의미로 활용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이따금 자신의 연희동 집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거나, 언론을 통해 자신을 규탄하는 국민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민주주의'와 '시민'을 마주하지 못했다.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란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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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가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등 사죄의 뜻을 보이지 않은 채 재판이 끝나자, 유가족과 5.18단체 회원들이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전씨에게 11일 하루는 어떤 날이었을까. 광주시민들이 법정에서 "학살자"를 외치고, 자신의 차를 가로막아 20분 넘게 50m도 이동하지 못했을 때, 독재자였던 그는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까. 기자들이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채 5.18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땡전뉴스를 언론으로 알고 살던 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한 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않았고, 한 번도 시민을 만나보지 못했던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서울로 올라갔을까.

'2019년 3월 11일 광주'는 '1931년 1월 18일생 전두환'에게 생애 첫 민주주의와 시민의 개념을 안겨줬다. 전씨에게 반성을 바라는 건 사치겠지만, 권력자였던 그의 가슴에 이 말 한 마디만 꽂혔으면 한다.

민주주의에 당해보지도 않고.
 

"학살자 전두환! 광주서 무릎 꿇어라!" 20여분 간 전두환 붙든 광주시민들 11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전두환씨가 차량을 이용해 법원을 빠져나가려 하자, 광주 시민들이 전씨가 탄 차량을 막아 거세게 항의했다. ⓒ 소중한

#전두환 #5.18 #광주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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