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원내대표의 부유세 언급이 반가운 이유

[取중眞담] 민낯 드러난 감세라는 '신화', 정치의 힘이 필요할 때

등록 2019.03.13 18:07수정 2019.03.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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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옥스팜은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연차총회를 앞두고 보고서를 하나 발표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공익이냐 개인의 부냐>. 옥스팜이 지난 2013년부터 매년 다보스포럼을 앞두고 발표해 온 '부의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월 이후 1년간 전 세계 억만장자의 재산은 9000억달러(약 1010조9000억원) 늘어났다. 하루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씩 늘어난 셈이다. 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하위 50% 계층(38억명)의 재산은 1조5410억달러에서 1조3700억달러로 11.1% 감소했다.

지난해 억만장자의 숫자도 165명이나 늘어났다. 이틀에 한 명 꼴이다. 이런 증가세가 지난 10여 년간 누적되면서, 금융위기가 덮친 2008년 1125명이었던 전 세계 억만장자 숫자는 2018년 2208명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사실 옥스팜의 보고서 내용은 숫자만 바뀌었을 뿐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끊임없이 커지고 있는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크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수많은 경고와 우려에도 사정이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치가 빈부격차 확대를 막는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기는커녕 더 심각하게 만드는 정책이 나라별로 강화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대규모 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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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법안 통과 연설을 중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그 중 대표적인 하나가 대대적인 감세 정책이다. 선진국 정부들은 개인 최고 소득세율과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율을 수십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인하해 왔다.

옥스팜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들의 개인소득세 평균 최고세율은 1970년 62%에서 2013년에는 38%로 떨어졌다. 미국만 해도 1980년 70%였던 최고 소득세율은 현재 37%로 낮아졌다. 90개 대형 다국적기업의 법인세율은 2000년 34%에서 2016년 기준 24%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이나 부동산 등 재산에 부과되는 세금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삭감되어 왔다.

일부 국가에서는 세금이 소득이 아니라 주로 소비에 부과되면서 상위 10% 부유층이 하위 10%의 빈곤층보다 세금을 덜 내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영국만 해도 2018년 기준 하위 10%의 소득대비 세율이 49%로 상위 10%의 소득대비 세율 34%보다 높았다. 미국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이 과거 "나는 내 비서나 청소부 보다 낮은 소득세율을 적용 받고 있다"며 부자 증세를 주장한 배경이다.

결과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확대였다. 부자 감세가 계속되는 동안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미래 세대인 청년들과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만성적인 재정 부족으로 미래를 위한 교육과 투자가 줄었고 일자리는 감소했다. 또 사회적 약자들은 공공 서비스 축소로 고통을 받았다. 경제는 만성적인 소비 부족으로 무너지면서 침체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에 대한 증세의 필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각 국의 정부가 방향을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증세가 경제를 망칠 것이라는 보수주의의 겁박, 다시 말해 부자들이 더 부유해져야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낙수효과(Trikle down effect)라는 '신화'가 여전히 굳건하기 때문이다. 또 부의 집중과 그에 따른 계층간 정치적 힘의 차이도 분명하다.

IMF에서도 부정한 감세의 효과

하지만 낙수효과를 부정하는 연구결과는 보수주의 진영에서 먼저 나왔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이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을 뒤집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게 벌써 4년 전인 2015년이다.

IMF가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전 세계 159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경제성장률은 0.08% 줄어들고, 소득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5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0.38%나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IMF는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상위 1%의 소득 증가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크게 증가했다며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고 최고 세율을 인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런 식의 재분배를 통해 얻는 이득이 경제의 효율성 저하라는 비용을 능가하기 때문에 고소득층에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IMF까지 나서 이런 권고를 한 것은 극심한 부의 불평등이 실제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도 감세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신화'를 반박한다. 미국에서 소득 최고세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인데 당시 미국은 최고 91%의 연방소득세율을 적용했다. 낙수효과가 작용했다면 미국 경제는 극심한 침체에 빠져야 하지만 반대였다. 당시 미국에서 부자들은 세금이 많다고 해서 투자나 노동공급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중산층 소비가 살아나면서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났고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빈부 격차가 크게 줄어들고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은 이 시기를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대압착시대'(Great compression)라고 부른다.

감세에 관한 역사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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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이날 '노란조끼' 시위대는 파리, 마르세유 등 프랑스 곳곳에서 12만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네 번째 대규모 집회를 열고 부유세 부활과 서민복지 추가대책 등을 요구했다. ⓒ 연합뉴스/AP

 
반면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대규모 감세가 시작된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는 살아나기는커녕 심각한 세수 부족과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렸고 급기야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 시기 중 미국 경제가 잠깐 호전된 것은 IT 붐을 탄 클린턴 행정부 시절이다. 당시 공화당 정부의 감세 기조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부자 증세를 단행했던 때였다.

이처럼 낙수(Trikle down)효과가 더 이상은 작용하지 않으며 부의 집중은 불평등을 확대하고 결국에는 경제 성장에 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차고 넘친다.

이제 관건은 정치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옥스팜의 보고서도 각국 정부가 개인 소득세·법인세 감세를 중단하고 기업과 부유층에 공정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가벼운 세금고지서'에 익숙해진 이들이 쉽게 변화를 허용할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의 힘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장자인 폴 크루먼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의 완화는 경제가 성숙해진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정치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도 최고세율 인상 등 부유세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부자 증세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보정당과 함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불평등과 양극화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라며 부유세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 12일 실시한 <오마이뉴스>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3명 중 2명은 초고소득자에 대한 부유세 도입에 찬성했다. [관련기사 : 60대·TK도 부유세 찬성 높다... 국민 3명 중 2명 초고소득자 부유세 도입 찬성  ]

세계적 흐름을 볼 때 향후 몇 년이 왜곡된 조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라는 점에서 여당 원내대표의 부유세 언급이 반갑다. 기업과 보수 정치권, 관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만 홍 원내대표의 말대로 우리만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극심한 불평등은 불가피한 게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미국 컬럼비아대 셰리 버먼 교수의 책 제목처럼 '정치가 우선한다'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권력을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치가 주권자의 명령대로 왜곡된 조세체계에 메스를 들이댈 때가 왔다.

 

ⓒ 리얼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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