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이 있는데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니

[끝나지 않은 '김용균 법', 하위법령 개정 주목하자 ③] 원청 책임 강화

등록 2019.03.14 07:57수정 2019.03.1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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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말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가까스로 통과됐다. 이에 따른 하위법령 개정안이 곧 행정부로부터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법이 실제로 노동자 안전과 건강을 제대로 지키게 하기 위해, 하위 법령 개정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법의 보호 대상 확대와 원청 책임 강화라는 법의 개정 취지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발목 잡히지 않도록 하고, 지난 수년간 행정규칙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던 사안을 추가로 개정시켜야 한다. 방대한 법 내용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에 대해 다섯번에 걸쳐 기획 기사를 싣는다. [기자말]


2012년의 일이다. 아버지께서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사건이 복잡하다며 방문 상담을 요청하였다. 사망한 X는 A공단과 도급 계약을 맺은 B용역업체 소속으로 A공단 내 ㉮사업장에서 시설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였다. 평상시 손재주가 좋았던 X는 기계․기구 수리 및 가구 제작 등 시설유지보수 업무 외 ㉮사업장의 관리자가 요청하는 모든 업무를 하였다.

재해 당일 A공단 내 다른 사업장인 ㉯에서 나무 자르기 작업 중 기계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사업장 관리자가 ㉮사업장 관리자에게 요청하여 X를 ㉯사업장으로 불렀다. X는 B용역업체의 ㉮사업장 현장책임자에게 보고하고 ㉯사업장으로 이동하였다. X가 기계톱을 수리하였지만, ㉯사업장의 노동자(Y)가 나무를 자르려고 하면 기계톱이 멈추는 일이 반복되었다.

X는 Y의 요청으로 나무 자르는 현장에서 직접 기계톱을 수리하여 Y에게 바로 넘겨주었고, Y는 나무 자르는 작업을 재개하였다. 20분가량 지나 다시 기계톱이 작동되지 않아 Y가 X를 찾았는데,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X는 쓰러지는 나무를 피하려다 추락하여, 외상에 따른 과다 출혈 상태로 뒤늦게 발견되었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하였으나 결국 사망하였다.

사건이 복잡한 듯 하지만 X의 사망은 당연히 산재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원청(A공단)과 하청(B용역업체)의 도급계약에 따라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원청 사업장 관리자의 지시 및 하청 현장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유족은 현장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데 분노하여, 유족보상 외 A공단과 B용역업체의 대표, 그리고 A공단 ㉯사업장의 관리자, A공단 ㉯사업장의 나무 자르기 작업 책임자에 대하여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위반에 대한 고소 및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나 황당한 결과를 접하게 되었다. 산안법 위반의 책임을 물었던 관계자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형사 사건의 결과가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쳐 패소하였다는 것이다. 원청과 하청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일하던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였으나 법률적으로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일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노동자는 존재하는데,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결과였다. 원청과 하청의 안전․보건 의무 및 책임을 다투는 사건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그러나 산안법상 원청의 책임을 물었던 경우는 대형 중대재해 등 지극히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 국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 확대되었다.   
 

2019년 2월 9일 열린 고 김용균 노동자의 노제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8년 연말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을 기점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확산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산안법이 개정되었다.

원청의 책임과 관련된 이번 개정법의 주요 내용은 △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및 도급에 따른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에서 원청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로 확대 △유해․위험한 작업의 도급금지(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일시․간헐적으로 작업을 하는 등의 경우에만 도급 가능, 노동부 승인),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의 공표(원청의 사업장-원청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경우로서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 포함) 등 원청의 책임 범위가 다소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행 산안법은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 중에서도 특별히 위험한 22개 산업재해 발생 위험 장소에 대해서만 원청에게 직접적인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를 지운다. 그러나 '컨베이어벨트 작업'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운전원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사고의 경우 사망 당시 산안법상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때문에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으로 전면 개정까지 이루어진 개정 산안법의 경우에,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가 현행 22개 위험 장소보다 훨씬 폭넓게 새로 규정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산안법 개정을 통해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였다는 것은 그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도급인의 사업장, 원청의 사업장이란 무엇인가

따라서 산안법 개정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 노동현장에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하위 법령 개정 시 다음 사항이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첫째, 정부의 추진 방안과 같이 '원청(도급인)의 사업장'에 대해 22개 위험 장소를 준용하는 방식 외에 △동력 기계․기구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장소, △고객으로 인해 건강장해 발생 위험 장소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위험이 있는 하청 현장에 대한 원청의 책임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재 산업재해발생 건수 공표의 대상은 도급인이 사용하는 상시 노동자 수가 500인 이상인 제조업, 철도운송업, 도시철도운송업으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이미 위험의 외주화는 전 사회로 확대돼 있다. 따라서 원청 노동자 보다 하청 노동자의 사망만인율이 높은 사업장 어디나 산재 발생 건수를 원하청 합쳐 공표하게 하고, 최소한 △발전업(D. 전기, 가스, 증기 및 공기조절 공급업 내 세분류), △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및 원료재생업(E. 수도, 하수 및 폐기물처리, 원료재생업 내 중분류) 등 재해율이 높은 사업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셋째, 개정법은 "안전 및 보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의 취급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작업을 도급하려는 경우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의 취급 등' 예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작업의 내용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과정에서 대상 작업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야 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작업의 범위가 축소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기존의 산안법이라도 각각의 사안에 대하여 법률의 입법 취지에 맞게 제대로 적용을 했다면 잇따른 하청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막는데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개정법이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을 설정하여 개정하였다면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규정) 등 하위법령 개정 시 법 개정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는 보다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유상철님은 노무법인 필 소속 공인노무사입니다.
#김용균법 #원청책임 #산안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안법_하위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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