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죽음도 피어나는 잔인한 계절... 봄에는 생명을 살립시다

[주장] 지난 30년간 통계 보면 3월부터 자살 급증... 봄맞이 행사 중 가장 중요한 건 이웃 돌봄

등록 2019.03.14 15:13수정 2019.03.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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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엘리엇이 유명한 자신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할 달'이라고 말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울한 엘리엇에게 4월의 봄은 '추억과 욕정이 뒤섞인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계절이었다. 그는 봄보다 '겨울이 더 따뜻한 계절'이라고 했고 봄의 '깨움'에 더 진저리를 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봄은 역설의 계절이다. 꽃이 피지만 죽음도 피어나는 시기라서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렇다.

계절과 자살, 우리나라에서는 뚜렷한 연관이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서의 자살은 3월부터 급증하여 5월, 6월에 이르는 시기 동안 최고조를 이루고, 10월 이후부터 감소하여 12월, 1월에 최저가되는 계절성 패턴을 보여왔다.

2014년 서울여대 경제학과 노용환 교수의 논문 <자살의 계절성과 경기반응>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2년까지의 자살 추세를 분석한 결과 "봄 최고조 (Spring Peak), 겨울 최저화(Winter Through)" 라는 현상이 지속되어 왔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김호 교수의 <동아시아의 자살과 기온>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보고되었다.

그리고 최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2013년에서 2017년까지의 통계청 자료, 2018년의 경찰청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에서도 3월에 급증하여, 5월에 최고조를 이루는 양상을 보였다. 남자가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연령대는 모든 연령대에서 늘었으며, 배우자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의 자살이 더 높았다. 남자, 외로움, 무직, 그리고 봄은 깊은 연관이 있는 자살의 요인이었다.
 

서울시민에게 제안하는 4명에게 전화 걸어 1000명 살리는 천사운동 봄이 오면 꽃도 피지만 자살도 늘어납니다. 힘들거나 외롭거나 보고픈 연락하지 않았던 분들에게 연락하자는 운동 관심과 돌봄의 운동을 하자는 제안 스마트폰 피켓입니다 ⓒ 김현수

 
그간 봄 자살은 많은 이유는 다음의 이유로 설명돼 왔다. 첫 번째, 우울증의 속성상 자살은 우울의 고조기보다 우울의 회복기에 많기 때문이다. 일조량부터 시작해서 운동량, 대인간 접촉량이 가장 적은 겨울에 우울의 최고조를 경험했고 회복기에 들어서는 시기인 봄에 자살이 많아진다.

두 번째, 일교차를 비롯한 겨울에서 봄으로의 환절기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친다. 이 기간에는 감기 환자 수가 줄지도 않고, 알레르기 환자는 늘어나며, 체내 혈압변동이 커져서 신체 질환의 위험성도 증가한다. 몸의 면역성과 항상성 유지에 어려움이 생겨난다. 심박수 증가를 유도하는 여러 신체적 불안정이 자살경향을 높인다는 보고도 있다.

세 번째, 심리적인 박탈감이 가장 큰 계절이어서 그렇다. 만발하는 꽃처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수많은 이야기, 보도, 방송을 들으며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비관적 인식에 빠지기 쉽다. 개학, 취업, 시작 등의 봄맞이는 상황이 부정적이고 미래가 비관적인 사람들에게 높은 스트레스를 안긴다. 다시 시작하기의 어려움, 또 다른 실패에 대한 예측, 그리고 한 해를 새롭게 살아나가는 것에 대한 엄두가 나지 않음 이런 심리적 박탈감과 피로감을 가장 농후하게 겪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에 더 큰 부담을 느끼는 남성들이 이런 심리적 스트레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 현재의 처지가 암울할 때 봄은 자살을 유혹하는 큰 환경적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연구자를 비롯한 많은 예방활동가들은 '봄 자살'의 중요성을 국민과 공감하고 '봄 자살' 예방활동을 더 강조하고 대규모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 자살 예방의 날로 인해 현재 9월에 개최되는 자살예방의 날은 그 시기를 재고할 여지가 있다.


그 시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캠페인이나 활동보다는 봄에 최고조를 이루는 우리의 실정에 맞추어 변경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정부와 관련부처에 하는 바이다. 온갖 봄맞이 페스티벌 행사만큼이나 '봄 자살'을 막기 위한 전국적인 예방, 점검 활동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봄은 꽃만 피어나는 계절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그 옆자리에 죽음도 피어나는 자살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꽃도 보지만, 옆 사람, 한참을 못 본 힘든 사람도 챙겨보자, 그가 꽃 같은 인생을 되찾도록 돕기 위하여.
덧붙이는 글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살예방 #생명사랑 #캠페인 #돌봄 #서울자살에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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