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와 병자호란'의 치욕으로 보는 2019 한반도 정세

1636년의 조선과 2019년의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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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haemil808)등록 2019.03.14 17:28
지금부터 대략 400년 전 이 땅 한반도에서 전란이 무섭게 소용돌이쳤다. 남북·북미관계의 결정적 전환기인 현재처럼 당시도 동북아시아의 기존질서가 와르르 무너지는 세계사적 분기점이었다. 다만 현재가 남북관계 전진과 북미대결 종식 및 평화번영통일이 가까워진 것과 달리, 중원의 패자가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된 옛 시절 조선은 전란을 겪었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 땅의 주인'임을 저버리고 바뀌어가는 질서를 무시한 권력층의 요지부동이 조선을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갔다.
 
17세기 동북아 질서의 변화 : 명나라의 몰락과 청나라의 대두
 
1368년부터 중국대륙을 장악한 명나라는 내외 혼란이 크게 불거진 16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급속히 몰락한다. 반면 조선 북부의 '오랑캐' 여진족은 각 부족을 통합해 스스로를 만주족으로 개칭, 살던 땅의 이름도 여진에서 만주로 바꿨다. 이윽고 만주족은 후금을 건국해(1616) 다시 대청(大淸·1636)으로 국호를 교체했다. 중국대륙을 장악한 패자가 국호를 한 글자 한자로 짓던 오랜 질서를 따른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변방의 오랑캐로 취급받던 여진(만주)족이 중원의 한족을 대신하여 천하(중국대륙)를 호령하겠다는 선언 그 자체였다.
 
결국 청나라의 대두 속에서 조선 왕조는 자주와 평화를 수호하지 못했다. 나라와 근간인 '백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전략은 부재했다. 아니, 명나라를 조선보다 앞세운 상황에서 자주를 위한 전략 수립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 때부터 숭상해온 명나라를 끝까지 따라야한다는 사고방식이 양반네들과 권력가들 사이에서 꼼짝 않고 버티고 서 있던 탓이다. 임진왜란(1592~1598)과 정묘호란(1627)이라는 두 전란을 연이어 겪으면서 온 사회가 심각하게 피폐했지만, 정묘호란 뒤에도 만주족을 무작정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권력층의 사고방식은 그대로였다.
 
맹목적으로 명나라를 붙들고 변화한 정세를 업신여긴 결과는 혹독한 전쟁, 병자호란(1636년)이었다. 청 태조 홍타이지와 휘하의 병력이 국경지대인 의주를 통과해 조선 땅으로 순식간에 밀려들어왔다. 조선 왕실과 권력층은 광주 남한산성에 들어가 방어에 나섰다. 성 바깥에서 영혼과 물자를 강탈당하는 조선 사람들의 비명이 메아리쳤지만 왕실과 권력층은 뾰족한 해법을 내지 못했고 주화파와 척화파로 나뉘어 진흙탕싸움을 이어갔다. 마침내 한양에 이어 고려-조선시대의 방어거점인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조선의 16대 임금은 청나라에 항복했다.
 
임금은, 엄혹한 한파 속에서 곤룡포가 아닌 평복을 입고 청 태조 홍타이지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타이지는 조선을 멸망시키는 대신 청나라의 신하국으로 편입시켰다.
 
"지난날의 일을 말하려 하면 길다. 이제 용단을 내려 왔으니 매우 다행스럽고 기쁘다."
-청 태조 홍타이지가 휘하장수 용골대를 통해 조선의 16대 임금에게 전한 말,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1637년) 1월 30일 2번째 기사
 
이후 수십만이 넘는 우리 조상들이 만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다. 훗날 양반층 일부에서는 조선인 노비를 거느린 청나라 상인에 막대한 물자를 지급해 가족을 데려오는(사실상 사람을 돈으로 주고받는 인신매매) 경우도 있었다. 돌아온 여성들은 '절개'를 잃었다는 이유로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인조와 신하들의 반성은 없었다. 오히려 신하들은 16대 조선 임금이 죽자 인조(仁祖) '어질게 난세를 평정한 임금' 라는 묘호를 하사해 그 실책을 무마하려 들었으니 말이다. 유학(성리학)에서 어짊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으니 인조는 최상의 묘호였다. 이는 명나라로부터 배운 유학의 사고방식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전쟁 패배로 민초들의 고귀한 목숨이 짓밟히고 나라가 멸망 직전에 빠졌다는 반성일랑 아예 없었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식만 가득했던 것이다.
 
'권력자의 무능'에도 외세 침탈 막아낸 민초들
 
병자호란의 과정과 결과를 곱씹어보며 남과 북이 분단에도 '고려(KOREA)'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올곧게 계승한 오늘을 상기하며, 다시 2019년 이 땅의 분단을 떠올려본다.

최근 합의가 무산된 2차 북미정상회담 뒤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역사적 합의를 깬 장본인인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북한을 자극하며 다시 북미대결의 시대로 시계를 돌리는 모습이다. '대북제재 강화'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추가 정상회담 없다' 같은 무시무시한 표현들에 전쟁위기가 펼쳐지던 지난날이 또다시 떠오르는 오늘이다. 평화번영통일이 머지않다 여기던 한반도의 갠 날씨에 다시금 불안한 먹구름이 드리운 듯하다.

영역 바깥 강대국의 횡포에 여지없이 휩쓸리는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처지를 맞닥뜨리면서 어쩌면 당연한 듯 생각했던 "자주" "독립" "해방"이란 말을 몇 번이고 곱씹게 된다. 그리 멀지 않다 여기던 우리 민족의 평화번영통일이 다시금 몇 발짝 뒤로 멀어진 듯 아찔한 감각. 동시에 이런 중차대한 때야말로 옛날 이 땅에서 펼쳐진 역사적 교훈을 되살려 반드시 우리민족 주도의 미래로 전진하고 말리라는 전망-희망도 엿보게 된다.

외세는 언제나 이 땅과 민초들을 수없이 유린해 왔지만 우리는 끝없이 살아남았다. 해법은 언제나 같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일치단결하여 맞서 싸우기. 임진왜란 당시를 돌이켜보면 선조와 신하들은 나라와 백성을 저버리고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들어가려 시도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탈을 막아낸 당사자는 각지에서 들불처럼 의병으로 떨쳐 일어선 민초들이었다. 조선을 구해낸 결정적 주역은 조선 왕실이 그토록 떠받들던 명나라 파병원군이 아니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존재를 오늘까지 가능케 한 '단 하나의 길'은 오직 단결과 투쟁뿐이었다. 한줌의 권력을 움켜쥔 권력자들은 항복했을지라도 민초들의 싸움은 끝없이 이어졌다. 당연히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21세기 동북아 질서의 변화 : 미국의 몰락과 한반도의 대두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입장을 살펴 북미 간 '중재자'니 '균형자'를 앞세우는 현재는 또 어떤가.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준비를 위한 제재면제 조치에 나서겠다"고 한다. 미국을 민족의 생존보다 앞서 생각한다는 점에서 명나라 숭상-사대 의식이 만연했던 지난날과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판'을 깨고 한반도의 평화번영통일을 막아서고 나선 현실은 분명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말 하나하나를 어기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며, 북미관계에 남북관계를 종속시키는 정부의 사고방식으로는 한반도에 잔존하고 있는 전쟁의 질서를, 확고부동한 새 시대 평화의 질서로 돌려세울 수 없다.
 
21세기, 전문가들은 하나로 입을 모아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가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얄궂게도 미국의 유력 초국적 금융기업인 골드만삭스와, 거물 투자가 짐 로저스가 세계가 통일한반도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눈부신 번영을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서다. 만에 하나라도 확고한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앞서 언급한 장밋빛 청사진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사실상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신세'인 한국. 미국은 그동안 자신이 쥐락펴락하던 동북아 질서의 변화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위기와 불안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미국의 네오콘과 군산복합체에 쥐어준 이득도 막대하다보니 변화를 지연시키려는 것이다. 미국의 개입으로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륙으로 민족의 혈맥(철도)이 뻗어나가는 꿈도 '말짱 도루묵'에 불과하다. 더구나 병자호란 때처럼 그로 인한 엄청난 피해는 권력층이 아닌 한반도 전역의 민중이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절박하게 가슴에 새겨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패권 몰락이 가팔라지고 있는 이런 때, 언제까지 미국의 사고방식을 앞세우는 길을 걸을 것인가. 이래서야 6.15공동선언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고려연방연합' 통일방안도 진전될 길이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답방도 기약 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의 말처럼 "한반도의 주인", 남북관계의 당사자를 증명하려면 김정은 위원장과 남북의 하나 됨을 행동으로 세계에 보여야 한다. 아울러 "김정은 (위원장) 수석대변인" 운운하는 대내외 방해세력의 수법을 단호히 차단해야 한다.
 
우리는 결단코 두 번 다시, 먼 옛날 끔찍하기 그지없던 '인조의 길'을 택해서는 안 된다. 미국만 좇다 남북관계가 파탄나기에 앞서, 한미동맹을 깨고서라도 남북이 하나로 뭉칠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단 하나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남북)가 함께 쟁취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숭명-사대의식이 가득했던 옛 조선왕실 같은 숭미-사대의식을 줄곧 유지한다면 평화번영통일은 다다를 수 없는 앞날임을 하루 빨리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인조로 대표되는 무지몽매한 권력층이 야기한 병자호란의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외세에 의한 '제2의 병자호란'을 절대로 다시는 겪을 수 없다. 촛불항쟁의 주인공인 민초들과 8천만 우리 겨레의 힘을 믿고 굳세게, 한반도의 자주통일을 우리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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