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마른 줄 알았는데... 얘들아 이제 떠나자"

[현장] 세월호 희생자 영정, 서울시 지하서고에 임시보관

등록 2019.03.17 15:53수정 2019.03.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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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이운식' 전,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 내에 존치된 희생자 영정 사진을 유가족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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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이 진행됐다. 유족들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영정사진을 모두 옮긴 뒤 천막 모습. ⓒ 김종훈

 
"세월호 희생자들을 모욕했던 세력들을 잊지 않겠다. 조선일보는 있지도 않은 불법을 이야기하며 세월호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베'는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폭식투쟁을 했다. 막말을 일삼은 엄마부대도 있다. 태극기부대는 매주 주말 이곳을 행진하며 저주를 퍼붓고 폭력을 행사했다. 우리는 모두 기억할 것이다."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가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 내에 존치된 희생자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 중 밝힌 말이다.  2014년 7월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이래로 그만큼 이곳에서 버틴 4년 8개월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박 공동대표는 "그러나 노란리본 공작소와 진실마중대 서명지기, 상주가 되기 위해 모인 전국민주동문들, 이름모를 전국의 자원봉사가들이 이곳을 지켰다"라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없었으면 이 자리를 지켜내기 어려웠다. 박 시장과 공무원들께도 고맙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이어 "가족들과 함께 이곳 광화문 광장을 만들어 왔고 시민들과 함께 고인들을 기억하고자 노력했다"라면서 "이 곳에서 흘린 눈물, 그리고 분노와 다짐을 담아 다시 이곳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이운식은 세월호 천막 철거를 하루 앞두고 희생자 가족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원래라면 영정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의식을 '이안식'으로 불러야 한다. 그러나 희생자 유족측은 '영정의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영정을 옮긴다'는 뜻의 '이운식'으로 이름 붙였다.

실제로 광화문 세월호 천막 안에 있던 희생자 영정은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서고에 임시로 보관될 예정이다. 


"눈물은 다 말랐을 거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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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이 진행됐다. 유족들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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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이 진행됐다. 불교계를 대표해 명진스님이 종교의식을 진행했다. ⓒ 김종훈

 
오전 9시 이운식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외투를 입고 분향소를 찾아 304명의 영정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전 10시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과 불교, 기독교, 천주교를 대표하는 종교인들이 광장에 자리하자 희생자들의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이 시작됐다.

이날 이운식에서 처음 종교의식을 맡은 명진 스님은 "그해 4월 우리는 차가운 바다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었다"라면서 "아이들을 잃고 이웃을 잃었다. 가까웠던 친구를 잃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모든 것을 잃었다"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명진 스님의 입에서 '반야심경'이 울려 퍼지자 세월호 참사 5년을 바라보건만 광장에 모인 유족과 시민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기독교를 대표해 나온 홍요한 목사도 "우리가 가슴에 새긴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서 "불의한 세상에 맞서는 일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목사는 이어 "이 일이 하늘에서 별이 되고 꽃이 된 아이들과 고통을 받는 가족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이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 남은 우리의 몫이고 손잡아 준 국민들과 함께 해나갈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들 딸들아, 이제 인사하고 떠나자"

각 종교 대표자들의 종교의식에 이어 장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나와 추모낭독을 했다.  

단원고 2학년 8반 고 장준형군의 아버지 장훈 위원장은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못 했는데 광화문 분향소를 정리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힘든 일"이라면서 "하지만 이전에도 이후에도 광화문 촛불광장은 시민 모두의 공간임을 알기에 이운식을 받아들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비록 우리 아이들은 잠시 이곳을 떠나지만, 곧 다시 돌아올 것"이라면서 "우리 아이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다시 돌아올 때 오늘처럼 따뜻하게 맞이해 달라"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장 위원장은 "아들아 딸아 이제 가자. 엄마 아빠 가슴에 안겨 이제 잠시만 집으로 가자. 이곳에서 밥을 굶고 머리 자르고 눈물과 절규로 하루하루 보낸 엄마 아빠들 지켜보느라 고생 많았다. 집에 가서 예쁘게 단장하고 다시 오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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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이 진행됐다. 유족들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박래군 공동대표가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옮기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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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서울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이 진행됐다. 유족들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박래군 공동대표가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옮기고 있다. ⓒ 김종훈

 
장 위원장의 진혼식에 이어 영정을 옮기는 '이운식'이 진행됐다. 사회자가 고인을 호명하면 희생자 가족이 나와 영정을 받았다. 끝까지 눈물을 참았던 일부 가족들도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함께한 시민들도 눈물을 흘리며 식을 지켜봤다.

304명의 희생자 영정은 세월호 천막 앞에서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겼다. 박래군 대표가 이를 모아 운구 차량에 옮겼다. 이운식 종료 후 유족들과 참석자들은 노제 형식으로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돈 뒤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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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후 새롭게 조성되는 세월호 추모 공간인 '기억·안전 전시공간'은 현 분향소 위치에 목조형태의 면적 79.98㎡ 규모로 조성된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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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후 새롭게 조성되는 세월호 추모 공간인 '기억·안전 전시공간'은 현 분향소 위치에 목조형태의 면적 79.98㎡ 규모로 조성된다. ⓒ 서울시제공

 
유족들은 18일 세월호 천막 자진철거에 들어간다. 철거 후 합동분향소 자리에는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마련되며 다음달 12일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세월호 천막 철거 후 광화문 광장에 새롭게 조성되는 '기억·안전 전시공간'은 현 분향소 위치에서 교보문고 방면으로 79.98㎡(24평) 규모의 목조형태로 조성된다. 서울시는 지난 14일 보도자료를 내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고, 동시에 시민의 안전의식을 함양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추모 공간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은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2014년 7월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이후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4년 8개월 동안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해 왔다.
#세월호 #박원순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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