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한인 기업 야반도주, 현지 한인들 반응은?

등록 2019.03.17 20:51수정 2019.03.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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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민정 부대변인이 7일 오후 춘추관에서 최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임금체불과 관련한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당국에 수사 및 형사사법 공조, 범죄인 인도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조국 민정수석에게 지시했다. 2019.3.7 ⓒ 연합뉴스

 
지난 3월 7일 국내 한 매체를 통해 인도네시아 한인 기업의 야반도주 사건이 국내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자카르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20여㎞ 떨어진 브카시(Bekasi) 소재 봉제업체 SKB(Serika Pekerja Nasional)의 대표 김아무개(69세 추정)씨가 지난해 10월 5일 직원 3,000여명에게 월급을 주지 않고 잠적한 사건이다.

이후 '오래 전부터 계획된 사건이었다', '900억 루피아(한화 약 70억 원)를 들고 달아났다'등의 소문이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퍼지며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소식에 해외 한인 기업의 부도덕한 행동에 공분하며 SKB 대표에게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국내외에서 높아졌다.

이 사건은 무하마드 하니프 다키리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2019 코리안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서 '한두 명이 물을 흐려서 ㈜SKB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발언하며 한국 정부의 사태 해결을 요구했고, 우리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 '인도네시아 당국과 적극 공조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흔히 예상하듯 SKB 대표의 부도덕한 경영행태에 분노하거나 현지 사회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최대 온라인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업체 대표를 비난하며 엄벌해야 한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또한 같은 한인으로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 당국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너무 늦었다', '보나마나 보여주기식 대응일 것이다' 등의 의견이었다.

이런 반응들만 보자면 이번 사건에 대한 한인들의 반응은 '분노와 부끄러움'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구성 중 노동집약 산업(봉제, 신발 등) 경영자들이 많다. 따라서 봉제업체였던 SKB 사건은 한인 사회에서 큰 화두다. 한인 사회의 반응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기 위해 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한인 두 명과 인터뷰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한인 업체의 세무, 관리부문 컨설팅을 하는 김ㅇㅇ(50)씨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사건이며 이번 사건처럼 이슈화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한국 대사관은 이와 같은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인력이 있었는데도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나"라고 지적했다.

관련 업계 한인 경영자들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김ㅇㅇ씨는 "정부와 대사관이 나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대사관과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알려지고 나서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비난을 어떻게 감수할지 그는 우려했다.

왜 이번 사건이 이전 사건과 다르게 문제가 됐는지에 대해 그는 "이전보다 도덕적 경영에 대해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이런 것이 '국격'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관련 업계 한인 경영자들의 반응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자카르에서 남쪽으로 약 100km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봉제 공장을 운영하는 A씨(55)와 인터뷰했다.

먼저 그는 "SKB는 관련 업계 종사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회사였다, 이렇게밖에 처리하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봉제 업계가 어려운 것은 맞지만, 튼실하게 잘 버티는 회사들도 있다"며 경영자에게 책임이 있는데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현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나아가 그는 이른바 '천민 자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한인 기업들의 경영 행태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했다. 덧붙여, '경영난이 생기면 야반도주 할 수도 있다'는 선택지를 두고 경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우리 회사도 어려울 때 인도네시아 현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분담해줄 것을 요청해 함께 문제를 풀었다"라며 SKB 대표는 왜 이런 방식의 해법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현재 정부, 대사관 주도의 대응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대통령이 엄정 대처하라고 한 지시를 한 만큼 앞으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노동집약적 산업에 진출한 한인 기업들이 윤리적 경영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중인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의 김창범 대사와 김영미 노무관을 인터뷰 했다. 먼저 김창범 대사는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SKB는 코참(KOCHAM, 상공회의소)이나 코가(KOGA, 한국봉제협의회) 회원사도 아니고 접촉도 없어서 우리 한인 단체들이 사전에 도움을 주거나 대사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사관이 대응을 하는 데 애로가 있었다. 사태가 발생해도 다들 쉬쉬하고 안 알리고 인니 노동부도 사태가 터져도 저희에게 구체 요청하지 않았다.

한인기업들이 공정하고 배려하는 기업 문화를 갖고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업체 특히 '악덕'에 준하는 고용주들의 사례를 갖고 모든 영세 한인업체를 마치 범죄집단처럼 매도하는 분위기가 확산될까 걱정이다. 환부는 도려내되 지나치게 사태를 확대해 마치 인도네시아 내 봉제업체들이 다들 범법자인 것처럼 취급하는 건 기업과 근로자, 양국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

재외 국민 보호차원에서도 아무리 범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영사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대사관으로선 인도네시아 노동부나 경찰이 안 나서는 데 우리가 나서서 수사를 요청하는 건 적절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재외 국민 보호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SKB 노조는 그간 대사관에 몇 번이나 면담을 요청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는 직접 면담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 지난 금요일(15일) 시위 차 대사관에 와서 서한 전달할 때 노무관이 대표 2명을 면담해 우리 입장을 설명했다. 그 때도 대사관측에 다른 요청이나 구체적인 이야기는 노조 측에서 전혀 안 했다. 그러면서 대사관이 근로자 안 만나준다고 하는 데 답답하다."

대사관에서 이번 사건을 맡은 김영미 노무관은 현재 대사관이 앞장 설 처지가 아니라며 "코참과 코가와 함께 휴일도 없이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든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진인사대천명'을 되새기며 최선의 노력을 하는 중이니 대사관을 믿어주길 바란다"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SKB 대표와 연락이 닿아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은 누구보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지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 한인 기업의 윤리적 경영, 나아가 '천민 자본주의'에서 비롯한 우리 사회의 비도덕적 경영이 고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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