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접하고, '사내 성추행'을 고발하기까지

[포스트 빨간약, 우린 어디에 8] 2차가해 겪었지만... 그래도 지금에서야 숨이 쉬어진다

등록 2019.03.27 17:50수정 2019.03.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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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빨간약, 우린 어디에] 에세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그룹 <페미워커클럽>은 페미니즘과 노동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의 소모임 입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노동을' 혹은 '노동의 관점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세미나를 진행했고, 각자의 삶과 노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빨간약은 그간 억눌려 자책하던 우리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지만, 사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 한 후에도 갈등은 계속됩니다. 현실과 이상, 상황과 존재의 위치 속에 발생하는 수많은 고민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이 나누어온 이야기를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에세이로 적어 연재합니다.


학생 때의 나는 페미니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물론 대학에 들어가서도 여학생 휴게실을 가끔 이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별다른 고민도 생각도 하지 못 하였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남동생과의 차별대우를 이유로 지난하게 싸웠던 일이라던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모든 재산을 외삼촌들에게만 주려고 하신(실제로도 거의 성공한) 외할머니의 일 같은 건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저 나 살기, 내 인생만 생각했다. 취업 이후에도 돈 벌기, 살아남기에 급급했고, 쭈욱 그럴 뻔 했다. 그 놈의 성추행만 아니었으면.

회식자리에서 횡행하는 성희롱, 얘기해 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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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 PIXABAY

 
준비하던 시험에서 떨어진 이후라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했고 워낙 일생동안 시키는 일은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기에 회사에서 잘 하고 싶었다. 아니, 잘 못할까봐 불안했다. 그렇게 상사 눈치를 보며 거의 모든 말에 "네, 네, 네-" 대답을 하며 지내면서도 끝끝내 불편한 지점이 바로 성추행이었다.

신입사원으로 발령 받아 들어간 부서는 여자직원이 나 하나 밖에 없었다. 가장 나이 차가 적은 직원이 5살 위의 남자직원이었고, 부장은 기러기아빠였다. 매주 3-5번의 술자리가 이어졌고 그 때마다 줄줄이 딸려가는 선배들 눈치를 보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술자리에서의 스킨십과 술자리 다음날 "게슴츠레 뜬 눈이 섹시하다"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1박2일 워크숍에서 "너 하나 여잔데, 방을 따로 잡으면 돈이 많이 드니 혼숙을 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가장 믿고 따르던 부서선배에게 고충을 토로하였다. 이게 말이 되냐고, 난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회사 내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난, 그러면서도 나를 가장 잘 챙겨주고 가르쳐주던 그 선배는 "그런 일에 예민하게 굴면 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여자 동기들에게도 말해보았지만 "자신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고 안타깝다." 정도의 대답을 들었다. 같이 공감해주고 틀린 것을 틀렸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이후로 난 회사에서 입을 닫았다. 시간이 흐르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다른 많은 성희롱, 성추행을 겪었고 내 안의 화는 점점 커져 나를 잡아먹었다. 진통제를 아무리 먹어도 며칠째 두통이 없어지지 않아서 울면서 찾아간 병원에서는 정신과 방문을 추천했다. 정신과 상담을 시작하면서 처음 몇달 동안은 계속 화를 쏟아냈던거 같다. 아니, 그게 화가 난 상태라는 것도 몰랐다. 의사선생님의 "지금 화가 많이 나신 거군요"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페미니즘, 분노의 방향을 찾아주다

스스로의 분노를 인식하고 내 분노가 내 잘못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가까스로 인정할 즈음 페미니즘을 접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해였다. 인터넷에서 페미니즘,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접하면서 나처럼 화가 난 사람들을 또 있구나, 난 혼자가 아니구나란 생각이 처음 들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고, 그때 처음 여성인권단체를 찾아갔다. 그 전까지는 혼자만 끙끙 앓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공감하니, 그 곳에서는 숨이 쉬어졌다.

마음을 나누고 책을 읽고 해결방법을 같이 고민해보면서 그동안 생각만 하고 하지 못 했던 일을 했다. 다시금 발생한 성추행(또 새로운 성추행에, 또 새로운 가해자다)에 대해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혼자였다면 결코 그렇게 진행하지는 못 했을 거다. 여성인권단체 활동가와 변호사에게 상담을 하고 회사 앞으로 "성희롱/성추행 발생사실 고지 및 징계 등 관련 후속조치 요구" 문서를 보냈다. 처음 문제제기 이야기를 꺼낸 이후로 난 회사 내에서 너무나 유명해졌고 익명게시판에서 이니셜이 오르내리며 갖은 2차 가해를 겪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한 없이 부족하지만 회사에서는 너무나 큰 징계라고 하는 조치가 취해진 뒤 해당 건은 마무리(?)가 됐다.

지금도 난 성희롱 고지로 인한 여파를 겪고 있으며 아마 퇴사할 때까지 겪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 일을 후회하진 않는다. 비로소 회사에서 숨이 쉬어졌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분노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직장내 성희롱 고지 이후 매일 퇴사하고 싶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여전히 여성차별 및 성추행,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다. 너무도 만연하고 당연하게. 사내에서 어떤 이는 나에게 "너가 아무리 그런 일을 했어도 우리회사는 바뀌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근무한 n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도 그런 일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난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며 기득권인 너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약하게나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회사 대표이사 앞으로 내용증명 문서를 보낸 일이나 성희롱심의위원회의 구성원 중 남녀비율을 동수로 요구한 점, n주간의 유급휴가를 요구한 점 등 회사 창립 이래 최초로 한 일들이 몇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 수위도 회사 창립 이래 가장 강한 수준이었다고 하니까 말이다('사안에 비해서' 가장 강한 징계라고 하나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는다, 이게 강한거면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가 더 투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내가 요구했던 후속조치 내용 중 몇가지(2차 가해 관련 징계 조항 신설, 피해자 유급휴가 부여 근거 조항 신설 등)는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 시기와 맞물려 사내 규정으로 명문화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사실 난 지금도 퇴사하고 싶다. 난 그리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저렇듯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입사 이래 수없이 쌓인 고통의 크기가 날 벼랑 끝으로 밀었기 때문이고, 해당 성희롱/성추행이 그동안의 것들 중 가장 강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해당 가해행위를 끊임없이 반추해야 하고(할 수 밖에 없고) 모든 이의 입에 오르내릴 텐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이 너무 큰 건들은 문제제기를 할 생각조차 못 하였다. 오히려 하루빨리 머리 속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애쎴다.

페미니즘 알게된 후, 세상이 무섭긴 하나 외롭지는 않다

성희롱 고지 이후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상사, 너가 뒤에서 얼마나 많은 욕을 먹고 있는지 아느냐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 말하는 사람들을 겪는게 참 익숙하면서도 힘들다. 하지만 회사에는 본인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나를 위해 사실을 증언 해준 동료가 있고 각종 압력을 이겨내고 내 이야기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애써준 관련 담당자가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전화나 메신져로 안타까워해준 선배, 후배들이 있다. 물론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나와 완전히 같진 않겠지만 인권이라는 것이 여성에게도 있다는 걸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는 거니까 외롭지 않다고 되뇌어 본다.

페미니즘을 조금씩 공부하면서 오랜 역사의 여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한 것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결코 나만의, 내가 다니는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에 퍼져있는 뿌리깊은 혐오의 역사 그 자체라는 것을 배우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무섭지만 외롭지 않았다. 외롭지 않은 것만으로도 오늘을 버틸 힘이 조금은 생기는 것 같았다. 어디든 언제든 여러 곳에서 만나고 나누는 여성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들이 보다 널리 퍼져서 부디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보다 살만 해지기를 바래본다. 희망 가득한 전망은 아니지만 최대한의 간절함을 담아서.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모임 '페미워커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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