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성정치인이 살아남는 법

[서평]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등록 2019.03.21 13:37수정 2019.03.21 13:37
0
원고료로 응원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아테네는 고대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모델이고, 아고라(광장)는 모두에게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오래된 역사를 가짐에도 절반 이상의 시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 노예, 노동자 등에게는 정치적 참여가 배제되고 정치적 결정마저도 특권층 귀족 남성에게 몰려있는 까닭이었다. 
 

드루드 달레룹 지음. 이영아 옮김. 현암사 ⓒ 현암사

 


책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의 저자 드루드 달레룹은 과거 민주주의에서 배제된 이들이 누군지 밝히며, 그의 관심사 중 하나인 여성할당제가 모든 민주주의적 선택의 과정을 평등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제되어 버린 여성의 정치, 참정권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야기 한다. 특히, 범국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여성할당제가 어떠한 결과를 이뤄내고 있는지 그리고, 정치권 내에서 거대소수(여성의원 비율이 25~40%)로 자리 잡은 여성들에게 성평등의 진전을 위한 전략을 소개한다.

*여성할당제란 : 여성이 의원후보 또는 의원으로 선출되는 일정 비율을 정하여 여성이 정계에 보다 더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

여성정치의 시작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19세기만 해도 공적 영역(주로 정치)은 남성들이, 사적 영역(주로 가정)은 여성들이 지켜야 한다는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풍조 아래, 여성의 사회 진출은 특이하고 언짢은 일로 여겨졌다. 심지어는 여성의 투표권조차 없었다.

그래서, 이때 당시 페미니스트들은 국가가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고 경제적 부를 재분배 하고 가정폭력 및 학대로부터 여성을 보호해 주기를 촉구했다. 고정된 성역할도 차츰 붕괴되기 시작했다. 

남성 지식인들도,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당위성의 논의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바로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다. 그는 1866년 영국 의회에 여성 참정권을 제안하면서, 민주주의가 '결과의 평등'에서 '기회의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정치체계가 부적합한 남성들을 걸러낼 수 있다면, 부적합한 여성들도 똑같이 걸러낼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그 정치체제가 받아들이는 부적합한 사람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더 나빠질 것은 없다."
 

수많은 여성단체들의 저항과 깨어있는 시민들의 호응 속에, 남성 참정권만 있어도 민주주의라고 했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여성 할당제' 논의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투표권이 여성에게도 100% 쥐어 졌는데. 갑자기 여성할당제가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할당제가 필요한 이유

1. 고착화된 정치문화
 
"당신이 하원에 들어왔을 때 마치 내 욕실에 여자가 하나 들어왔는데, 목욕 스펀지 말고는 나 자신을 가릴게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었다."
- 윈스턴 처칠이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에게

 

정치문화가 남성 중심적으로 고착화 되면서 그 위대한 윈스턴 처칠 경 마저도 안타까운 실언을 범하고 만다. 현재는 어떨까? 문희상 의원은 여성의 날 축사에서 "오십 넘은 남자에게 마누라가 필요하다", "서러운건 남자"라는 이야기를 하며 유머러스한 남성,정치인으로 포장되었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는 워크숍에서 "집 나간 조강지처를 당에 다시 들여야 한다"라고 하며 포용력 있는 정치인으로 포장되었다.

2. 실력 없는 여성 프레임
 
"정책 토론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성차별적 발언 등)를 들어야 하는가 하면, 비공식 모임에 끼지도 못하고, 회의가 밤늦게 까지 이어지면 가정을 걱정해야 한다."
 

정치판의 침략자로 낙인찍힌 여성들은, 수적으로도 열세하지만, 정치권 등에서 존재하는 비공식적 규범들과 관례들에 쉽게 부딪힌다. 그리고, 여성 정치인이 자칫 실수 하면 듣게 되는 '실력부족', '얼굴마담'이라는 말들을 듣게 된다. 이러한 반응의 기저에는, 여성 할당제는 결국 대표성만 가지게 되는 '토큰여성'을 양산한다는 생각, 실력 우선주의와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여성 스스로가 침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3.선택의 자유

저자는 여성 할당제의 정당성을 묻거든 근본적인 선택의 자유에 해당하는 정당 내 후보자 경쟁 과정과 후보자 지명 과정을 드러낼 것을 촉구한다. 그는, 코트디부아르의 페디카 사라 사코가 당 후보가 되기까지 수년에 걸쳐 남성 지도자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접촉해야 했다는 사례를 들며, 남성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진입장벽을 보여준다.
 
"성별 할당제가 여성들의 부족한 선거자금이나 선거운동 중 당하는 위협까지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렇지만, 적절하게 설계된 성별 할당제는, '인맥'정치를 방지하는 효과적인 평등 대책이다."

"여성 후보에 대한 문화적 편견을 깨고 인맥을 통한 전통적인 후보 선정 방식에 내재되어 있는 장벽을 허무는데 도움이 된다."

 "누가 정치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가라는 면에서 민주화에 기여한다."

여성할당제는 이렇게 성별마다 다른 진입장벽을 빠르게 무너뜨림으로써, 민주주의의 실행 과정을 보완하고, 기존의 정치판에 고착되어 있는 문화나 관행들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들은 정계진출을 통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려고 할까. 

여성 할당제가 가져오는 변화

1. 공공정책의 젠더화
 
"국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원래 반어적으로 사용되었다. 국가는 원래 가부장적인 존재이다. 그런 국가가 어떻게 페미니즘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말은 최근에 들어서는 대개 성평등 정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여성할당제는 공공정책이 성평등 정책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교육정책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국민들의 차별적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다. 그리고, 반차별법의 제정은 사회적 약자의 배제를 막을 수 있다. 동일 임금 규정과 육아휴직이나 탁아 시설 같은 정책은 장기적으로 성평등 사회를 확산시킬 수 있다. 즉,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국가는 가부장적이지만 여성할당제가 잘 정착된다면, 성평등 사회를 효과적으로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2. 세계정치와 여성
 
"국가적이든 국제적이든 여성운동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규범과 관행을 동원하여 사회 담론을 변화시키고 거대한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그 담론을 전파함으로써 정치적 결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힘이다."
   
저자의 꿈처럼, 모두에게 차별 없는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은 정말로 많다. 그가 말미에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듯, 한계를 인정하되 더 이상 후퇴하지 않는 안전망을 켜켜이 쌓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책을 읽다보면, 여성할당제도 그러한 안전망 중 하나로 보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드루드 달레룹 지음, 이영아 옮김,
현암사, 2018


#여성할당제 #정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