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질식할 때까지"... 조선일보의 위험한 선동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한국 보수, 흑백 논리로 재집권 노린다

등록 2019.03.20 16:52수정 2019.03.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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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보수는 왼쪽과 오른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있다. 좌우 이념 대립을 도발하고자 혈안이 돼 있는 모양새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자유한국당도 그렇고, 지만원씨 같은 극우보수의 진영도 그렇다.

세상에는 전(前)도 있고 후(後)도 있건만, 이들은 오로지 좌(左)와 우(右)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해석하고 있다. <조선일보> 주필과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을 지낸 언론인 류근일씨가 지난 19일치 <조선일보>에 기고한 '이제는 끝장을 내자'는 칼럼도 온통 흑백 논리로 세상을 양분하고 있다.

자유인 대 좌파파시즘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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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조선일보'에 실린 류근일씨의 칼럼 '이제는 끝장을 내자'. ⓒ 조선일보PDF

  
그는 '자유인들'이 남북 두 정권에 맞서 대립하는 구도로 지금의 한반도 정세를 분석했다. 악(惡)을 대표하는 남한의 '좌파 파시즘 정권' 및 북한의 '여성 성노예 포주 정권'에 맞서 선(善)을 대표하는 자유인들이 투쟁하는 구도로 설정해놨다.

칼럼에서 그는 나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를 소환했다. 괴벨스가 말한 '큰 거짓말'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괴벨스는 '인민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잘 속는다'고 말했다. 큰 거짓말을 해야 대중을 속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류근일씨는 그런 큰 거짓말이 지금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 위키백과

   
류근일씨가 말한 '큰 거짓말'은 우리 한국인 대부분의 역사관을 지칭한다. 그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자칭 민족적이라는 역사관에 포획 당해 있다"라고 말한 직후, 괴벨스의 큰 거짓말이 한국에서 진실을 덮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역사를 성찰하고 과거사의 잘못을 반성하는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에게는 '큰 거짓말이 지배하는 사회'로 비쳤던 모양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 반민족의 역사를 성토하는 최근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하다. 이 같은 우리 한국의 모습을 그는 좌파 파시즘으로 규정했다.

한국이 이런 나라가 된 이유로 류근일씨가 제시한 게 있다. 뜻밖에도 그것은 한국 사회의 연줄 문화다. 연줄 문화가 좌파 파시즘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좌파 파시즘은 한국적 풍토에 썩 잘 먹히는 것 같다. 한국적 풍토란 깨어 있는 개인의 층이 얇은 사회다. 마을·문중·연고가 개인의 설 땅을 허용하지 않았다. 현대에 들어서도 한국인들은 개인·자유·법칙보다 종족·지역·집단 정서법에 더 매였다. 근대 산업사회보다 그 어떤 자족적 공동체가 더 가치 있는 것인양 그려졌다. 한반도 좌익은 이 모든 옛것에 집착해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진보라 자처한다."
 
류근일씨가 뭔가 거꾸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연줄 문화가 진보보다는 보수 진영과 더 가깝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한 채 엉뚱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 진보 진영이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낡은 연고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난생 처음 들어본 이야기가 그의 칼럼에서 나왔다. 

류근일씨 같은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엉뚱한 지식을 갖고 있을 리는 없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논리로 글을 쓴 것은, 진보진영을 전체주의 파시즘 세력으로 매도하는 데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진보진영을 전체주의 세력으로 설정해야 하니, 전체주의와 얼핏 연결되는 집단 연고주의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또 진보가 풍기는 새로움의 이미지를 희석시킬 의도로도 진보와 연줄 문화를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런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은 위 인용문 끝부분의 "한반도 좌익은 이 모든 옛것에 집착해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진보라 자처한다"라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진보세력이 진짜 진보가 아니라 낡은 세력이란 말을 하고자, 진보진영과 연고주의를 연결한 것이다.

"감정적인 느낌으로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던 사람

냉정하게 보면 류근일씨의 말이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런 방법으로 대중을 오도하고자 했다는 사실은 그가 누구의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추론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냉정한 숙고보다는 차라리 감정적인 느낌으로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결정한다"(히틀러의 <나의 투쟁>)라면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대중을 선동하라는 히틀러와 괴벨스의 지침을 류근일씨가 참고했을 수 있다. 진보진영이 괴벨스의 방법으로 세상을 현혹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실은 그 자신이 괴벨스의 방법을 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23년에 제작된 히틀러 초상화.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남한을 좌파 파시즘의 나라로, 북한을 여성 성노예의 포주로 규정한 뒤 류근일씨가 내린 해법이 있다. 이 해법 역시 매우 명료하다. 제목에 쓰인 것처럼 '이제는 끝장을 내자'는 것이다.

칼럼 마지막 문단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이젠 끝장을 봐야 한다"라고 말하고, 김정은 위원장을 "질식할 때까지 그의 돈줄을 한껏 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이게 결승골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는 '선'의 세력인 자유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끝장을 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반도 운명의 향방은 결국 한반도 자유인들의 결의 여하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런 확신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
 
"때마침 미국과 유엔이 대북 최대 압박으로 가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이 탑승한 카퍼레이드 차량 벤츠의 반입 경로를 조사하면서, 김정은과 함께 손을 흔들고 선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의도적으로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에 대한 눈살이었다. 그렇다. 이젠 끝장을 봐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고 있고 유엔이 문 대통령을 안 좋게 보고 있으므로 지금이야말로 끝장을 낼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지금 당장에는 갈등을 빚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류근일씨가 모를 리 없다. 일반 대중을 선동하려면 단순하고 명쾌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썼을 것이다.

최근 이런 흑백논리가 자주 나오는 까닭

저급한 흑백 논리와 더불어 수준 낮은 엉터리 지식이 <조선일보> 정도 되는 신문에 버젓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1920년 창간돼 9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일보> 편집국 내부에 류근일 칼럼의 모순을 걸러낼 만한 기자가 없을 리 없다. 다른 보수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보수 언론들이 이런 류의 글을 내보내는 것은, 한국 보수가 히틀러와 괴벨스식 흑백 선동으로 권력을 되찾으려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의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아진 현실을 도외시하고, 대중의 수준이 낮다는 전제 아래 저급한 선동전으로 권력을 되찾고자 하는 한국 보수의 의도를 보여주는 현상인 것이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20세기 초반의 세계사를 온통 유대인 대 비(非)유대인의 관점에서 매우 단순화해 풀이했다. 일례로,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국가들끼리의 이권 쟁탈전이었는데도 히틀러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이 전쟁을 해석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유럽 경제권을 장악한 유대인들이 세계질서를 재편하고자 제1차 대전 발발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세기가 바뀔 무렵에 유럽에서 유대인의 경제 장악은 거의 완료되었다. (중략) 유럽 여러 민족의 긴장관계 대부분은 영토 부족 때문인데, 유대인은 계획적으로 세계대전을 부추기고 이 긴장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국내에서는 반유대적 국가인 러시아 파멸이고 행정과 군대에서는 아직 유대인에게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독일제국 파멸이다. (중략) 이런 유대의 투쟁 목표는 부분적으로는 남김 없이 달성되었다. 차리즘(러시아 정치체제)과 독일의 황제제도는 타도되었다."
 
히틀러는 러시아와 독일에서 황제 체제가 사라진 것은 유대인의 세계지배전략 때문이라고 엉터리로 해석했다. 이런 엉터리 지식을 히틀러 자신도 믿었을 리 없다. 주변 참모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엉터리 지식을 활자화한 것은, 대중이 이런 거짓말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차라리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싫어하는 대중이 이런 선전을 들으면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환호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히틀러는 나치당의 세력을 확대했다.

지금 한국 보수도 유사한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는 듯하다. 말이 되지 않을지라도 단순한 흑백논리로 진보진영을 비판하다 보면, 진보진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환호하고 결집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들어 한국당과 보수 언론에서 단순·명료한 흑백 논리가 자주 나오는 것은, 한국 보수가 류근일 칼럼의 표현처럼 정말로 '끝장'을 볼 목적으로 대중 선동에 돌입했음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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