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주연 캐스팅, 국회는 이 기회를 놓칠 건가

[주장] 선거법 패스트트랙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본질은 따로 있다

등록 2019.03.20 15:05수정 2019.03.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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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하는 국회 정개특위 심상정 위원장과 간사들 바른미래당 김성식(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민주평화당 천정배 간사가 17일 오후 여야 4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를 하기 위해 회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법상 신속처리안건(아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기세다. 선거법 개혁은 정치개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기성정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개헌보다 어렵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오래된 정론(?)이었다. 그런 와중에 자유한국당은 빠졌지만, 여야 4당이 지난 17일 1차적인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여의도 전문가들은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 바쁘다. '암초' '불발' '난관' '삐걱' 등의 단어가 언론보도에서 춤을 춘다. 물론 여전히 변수는 많이 남아 있다. 우선 현재까지 도출된 합의안을 4당이 의총을 통해 추인을 이뤄야 한다. 선거법과 함께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추진하기로 한 공수처설치법안 및 검경수사권조정안에 관한 조율도 남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각 당에서 다소간의 반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패스트트랙으로 상정되는 단계까지는 이를 것으로 보인다. 수없이 많은 걸림돌이 있음에도, 여기서 멈춘다면 4당 모두 퇴로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지금의 합의 결과를 마치 '소득 없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평화당이 지난 19일 의총을 통해 추인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론 패스트트랙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올라간다고 해서 선거법 개정이 확실해지는 건 아니다. 패스트트랙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 사안은 아무리 빨라야 연말에 법안 처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고 표결이 이뤄지는 시점까지 또 어떠한 정치적 변동이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전에 비하면 대단히 놀라운 진전임은 분명하다. 당위적으로는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고 봤던 수많은 여의도 정치전문가들의 예측은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보기 좋게 틀린 셈이다.

진전이 가속화될수록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정당과 일부 정치인들의 반발은  폭발할 것이다. 자신의 이해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쟁점을 비틀고, 사실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흔한 말로 '가짜뉴스'는 계속 판칠 것이고, 진실을 호도하는 정치적 프레임이 난무한 혼탁한 판이 벌어질 것이다.

한편에서의 냉소와 다른 한편에서의 반대를 사이에 두고 현 국면에 대한 유권자 중심의 분석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여야4당이 합의한 선거제도 개혁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해석이 각 정당의 이해타산으로 축소돼선 안 된다는 의미다.


참 멀다, 유권자 표심과 국회의원 배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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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기다리는 배지 2016년 4월 11일에 공개된 20대 국회의원 지급 배지. ⓒ 공동취재사진


서론이 길었다. 여야4당 합의안의 본질에 조금 더 서늘하게 다가서 보자는 것이다. 이번 합의안은 여야4당의 당리당략이 조우한 타협안이다. 그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각 당은 필연적으로 자당의 이해관계에 근거한 정치를 할 숙명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핵심은 그렇게 나온 그 타협안이 우리 유권자에게 좋은 안이냐, 아니냐의 문제다.

현재 4당 합의안은 구체적으로는 복잡하지만, 본질은 명료하다. 현재 선거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정당지지율-정당 의석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할 때 정당지지율을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반영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최소한 정당지지율의 절반에 해당하는 의석수는 보장하자는 취지다. 예를 들어 20% 지지율을 얻은 정당이 있다면, 국회의원 300석의 10%인에 해당하는 30석 이상은 차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개혁을 바라는 시민사회와 학계의 다수 입장은 '독일식 제도를 주요한 모델로 삼자'는 것이었다. 북유럽 국가들과 같이 지역선거구의 의미가 거의 없는 전면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기는 어려우니,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혼합하고, 전체 정당 의석수는 정당지지율과 일치시키는 독일식 제도가 현실적(?) 대안으로 검토된 것이다. 뉴질랜드의 선거제도는 독일제도를 수용한 것이니 마찬가지 모범답안이었다.

그러나 당리당략의 타협을 거쳐 나온 합의안은 독일식 모델을 일부만 수용한 한국형 제도로 거듭났다. 그래서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니라는 의미에서 '준연동형'제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가 난데없이 출연한 것도 아니다. 정치개혁이 좌절됐던 2015년에도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자 당시 국회 정개특위위원장이었던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이 제안한 '이병석 중재안'은 디테일은 조금 다르지만 이번 준연동형제의 기본 구상과 궤를 같이 했다.

그렇다면 합의안은 야합으로 역사에 평가돼야 할 것인가? 물론 원칙적인 입장에 서서 보자면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다. 그 사실은 국회가 제일 잘 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이미 총 6개의 연동형 비례대표 법안이 발의돼 있다. 그 가운데 4개는 민주당, 1개는 민주평화당, 1개는 정의당에서 발의한 법안이다.

그런데 이번 합의안은 이 6개 법안에 비해서도 개혁성이 떨어진다. 특히 민주당은 야당일 때는 4개나 되는 법안을 내놓고도, 이제 와서 훨씬 후퇴된 안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점도 분명히 짚어져야 한다.

그러나 4당 합의안에 낙제점을 줄 수도 없다. 정치학계는 유권자의 의사와 정당 의석 배분간 불일치를 수치화하는 노력을 해왔다. 이를 '불비례성 지수'라고 한다. 불비례성 지수가 작을수록, 유권자 의사와 정당 의석배분간의 불일치가 적다는 의미이고, 사표(死票)가 적게 발생한다는 뜻이다. 

4당 합의안에 따른 선거제도는 현재 제도보다 불비례성 지수를 감소시킬 게 분명하다. 비례대표 의석수가 증가했고, 정당지지율에 기초한 의석배분 비율도 분명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불비례성 지수가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질문이 등장할 수 있다. 여기서는 조금 더 지루한 논증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시대 민주주의는 선거제도와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한다. 그런데 이 선거제도와 정당이 그냥 존재한다고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충족되진 않는다. 우리 사회는 쿠데타에 기반한 집권여당과 관제야당 그리고 체육관 투표로 이뤄지는 선거제도를 가진 적도 있다. 관건은 선거와 정당이 얼마나 민주적으로 운영되는가에 달려 있다.

여야4당 합의안의 본질

그러면 민주적인 선거란 어떤 선거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 헌법은 보통·평등·직접·비밀 투표의 보장을 기본적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평등선거의 원칙이다. 평등선거원칙은 1인에게 1표를 주는 것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1표의 가치가 서로 동등할 수 있게 제도를 설계해야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우리 선거제도는 아직까지 1인 1표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1인 1표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선진 민주국가들에 비해 지역선거구간 인구편차(국회의원 선거는 2대 1, 지방의회 선거는 2022년부터 3대 1이다)를 넓게 허용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바로 유권자의 투표와 정당의 의석 배분이 불일치를 나타나는 '불비례성 지수'의 문제다.

'불비례성 지수'가 감소하는 선거제도라면 헌법에서 요구하는 평등선거원칙에 한 걸음 더 나아간, 더 민주적인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4당 합의안은 분명 우리 선거제도 불비례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4당 합의안은 비롯 당리당략의 타협책이며, 정치개혁을 외쳐온 이들의 요구를 일부만 수용했지만 낙제점을 쉽게 줄 수도 없다.

물론 이번 합의안은 조금 어렵다. 그러나 '수학의 정석'을 풀어야 만큼, 어려운 수학이 필요한 건 아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 유권자에게 사실 아주 어려울 것은 없다. 우리가 모든 과학기술을 이해해서 삐삐를 사용하다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적은 돈을 주고, 더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사용한다. 아무리 복잡한 선거제도라고 하더라도, 유권자 입장에서 '인풋'은 동일하다. 총선에서 1표는 지역구 후보자에게, 1표는 정당에게 기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조건은 바뀐다. 총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것까지만 동일하다. 지역구 의원은 253명에서 225명으로 조금 줄었다. 그리고 비례대표 의원은 47명에서 75명으로 늘어났다. 비례대표 의원이 엄청 늘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상 최초로 최대 인원을 뽑는 건 아니다. 

민주화 직후인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우리는 지역구 224명과 비례대표 75명을 뽑았기 때문이다. 바뀐 것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계산식이다. 결과적으로 인풋 대비 아웃풋이 좋아진 셈이다. 그 아웃풋이 우리 표의 가치를 조금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선거제도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당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가 돼서는 안 된다. 오직 유권자가 주권자로서 대우 받을 수 있는 제도인지 아닌지가 핵심이 돼야 한다. 그 때문에 한국당의 '좌파독재연합' '정의당 좋을 일' 등등의 비난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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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좌파독재법 날치기하는 문재인 정권 각성하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과 당협위원장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비상연석회의에 참석해 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은 좌파 독재 장기집권플랜이다며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지독하게도 무능했던 국회, 난생처음 주역이 되다

한편, 이번 여야4당이 합의에 이르고 패스트트랙을 통해서 선거제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는 건 국회가 처음으로 정치개혁에 주역이 된다는 의미도 있다.

사실 지금까지 정치개혁의 주역은 국회가 아니었다. 1990년대까지 지역구 득표에 근거해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던 제도를 1인 2표 제도로 바꾼 것도, 지역선거구간 인구편차가 최대 4배 이상 차이 날 정도로 엉망이었던 선거구획정을 오랜 기간 세 번의 결정을 통해 2대 1 범위까지 줄여준 것도 헌법재판소였다.

올해 헌법재판소는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앞으로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3대 1 이내로 해야 한다고 결정 내렸다. 정치개혁 의제에 관해 역사적 주연은 언제나 헌법재판소였던 셈이다.

이처럼 국회는 오랫동안 지독히도 무능했다. 물론 의도된 무능이었다. 기존 정당들과 현역 국회의원들의 이해만을 반영하다도 보니 생긴 문제다. 그런데 여야 4당이 우여곡절 끝에라도 합의안을 만든 것은 국회가 처음으로 스스로 선거제도를 조금이나마 더 민주적으로 구성하는 데 큰 이정표를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결론은 아직 미궁 속에 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합의안이 그대로 개정안이 될지도 미지수다. 한국당도 결국은 협상테이블에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사회운동은 합의안보다 더 개혁적인 선거법이 될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그러나 4당 합의를 통해서 선거제도 개혁 국면은 더 이상 비관적 전망으로 일관할 성격을 넘어서게 됐다.

이 시점에서 그 도구가 패스트트랙이 된 것은 결코 부수적인 사안일 뿐, 사안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권자들의 참여와 행동, 감시가 더욱 필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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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전경. ⓒ 김지현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준우씨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입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제도개혁 #패스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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