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몰카' 범죄, 남자들이 보인 반응이 무섭다

[주장] '카톡 검열' 뒤에 숨은 '억울함'에 대하여

등록 2019.03.24 14:59수정 2019.03.2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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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경찰 출석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와 관련 가수 정준영이 14일 오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가수 정준영의 불법촬영 및 촬영물 유포 사건에서 여자들과 일부 남자들은 각기 다른 '두려움'을 겪고 있다.

여자들은 나도 언제든지 불법 촬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가 찍힌 영상을 다수의 모르는 남자들이 돌려볼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할 말을 잃었다. 작년 웹하드 카르텔에서 밝혀졌듯이 나 몰래 찍힌 영상이 돌아다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절망의 연장선이다.

반면 일부 남자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두려움에 맞닥뜨렸다. 그것은 조심하지 않으면 내 카톡방이 유출되거나 폭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정준영을 비롯해 해당 카톡방에 있던 연예인들의 불법과 비도덕을 넘나드는 발언이 차례로 폭로되면서 '그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이들에게 엄습한 것이다.

'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피해야겠다'

불법영상물을 공유하는 남자들의 이런 두려움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에서는 '여친 인증'이라는 제목을 달고 여자들의 신체나 얼굴을 불법으로 촬영해 공유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올린 게시물을 삭제해 봤자 경찰은 이미 일베의 회원 정보와 접속기록을 확보한 후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이른바 '무혐의 매뉴얼'을 공유하며 법망을 피하려 했다.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카메라 등 이용촬영)이 모든 종류의 사례들을 포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허점을 이용하려 했다.


결국 이들이 경험한 두려움은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각성이 아니라 '피해야겠다'라는 숨기로 끝났다.

정준영의 억울함, 남자들의 억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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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사건이 보도되자 '불법촬영 영상을 어디서 볼 수 있느냐', '공유해달라'는 댓글이 기사마다 넘쳐났다. 또 한동안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는 무려 '정준영 동영상'이라는 단어가 오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정준영 불법촬영물 유포사건이 터진 지금에는 이런 남자들의 대응이 한층 더 노골적이 됐다.

정준영 사건은 카카오톡 대화내용이 유출되면서 시작됐다. 엄밀히 말하면 피의자의 아주 사적인 부분, '사생활'이 침해 당한 셈이다. 정씨의 사생활이 유출되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불법영상물을 공유하는 남자들 사이에선 '억울함'이라는 정서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겉으론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불법영상물은 '성적 취향'이지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2월의 일이었다. 정부가 895곳의 불법 유해 사이트를 차단했다. 이 사이트들에서 불법촬영물이 집중적으로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과 '검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조치였음을 이해한다).

그런데 4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패널들은 이번 조치에 반대한다고 말하다가도 "일본 거는 별로 안 좋아한다" "저는 미국 것이 더 좋다" "성적 취향을 존중해 달라"며 자신들의 '야동 취향'을 말하는 것으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불법촬영물 유포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상황에서, 그것의 유통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포르노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런 논리 뒤에는 '억울함'이 숨어 있다. 법이 자신의 취향과 사생활을 검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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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승리 광역수사대 자진출석 인기그룹 '빅뱅'의 승리(본명 이승현)가 27일 오후 자신이 사내이사였던 강남 클럽 '버닝썬', 마약, 해외 투자자 성접대 등 각종 의혹 관련 수사를 받기 위해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자진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불법촬영물은 취향과 사생활의 영역이 아니다. 일부 남자들의 불법촬영 놀이에 여자들이 희생 당하는 범죄다. 

유명 연예인이었던 정준영은 불법촬영 혐의로 지금 구속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 사건이 남자들에게 남긴 것이 '카톡을 조심하자'뿐이라면, 더군다나 여자들에게는 더한 공포만 남기는 것이라면, 지난 몇 주간의 일은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썩은 문화를 바꾸는 시발점이 되지 못하고 그저 '소란'으로 그칠 것이다.

당신의 카톡은 검열 당할 필요도 삭제될 필요도 없다. 당신의 소중한 사생활이 침해받을 필요도 없다. 오로지 딱 하나, 불법 촬영을 하고 공유하고 보지 않으면 말이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슬픔도, 당신의 그 억울함도 없다.
#불법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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