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까지 버렸는데... 만만치 않은 한옥 '마당 라이프'

[작은 한옥 수선기 26] 마침내 오고야 만 한옥의 봄

등록 2019.03.26 09:21수정 2019.03.2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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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 기자말

봄이다. 미세먼지가 괴롭긴 하지만.

한옥에 사는 모습을 그릴 때마다 머리에 떠올린 건 '마당 라이프'였다. 9월에 이사를 하긴 했지만, 집이 다 지어지지 않은 상태라 지난 가을에는 마당을 제대로 만끽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곧 겨울이 닥쳤다. 겨울은 추웠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계절도 추운 때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지어진 지 25년쯤 되어가던 곳이라 단열과 난방이 신통치 않았다. 그렇지만 아파트는 아파트였다. 그곳에서 오래 살다가 단독주택, 게다가 한옥으로 이사를 오니 생각보다 더 추웠다. 현관문만 들어서면 만사 오케이였던 아파트와는 생활의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우선 안채에서 별채로 가는 건 곧 북풍한설을 뚫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걸 뜻했다. 한밤중에 별채에 뭐라도 가지러 갈 일이 있으면 두꺼운 외투에 솜바지를 껴입고 대청 유리문을 열고 나가야 했다. 택배를 받으러 나갈 때도 다르지 않다.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날이면 도리없이 마당에서 쓰레기 정리를 해야 했다. 처음 몇 번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까래를 보고 싶어서 천장을 막지 않고 다 열어둔 덕분에 우리집은 어딜 가나 천장이 높다. 보일러를 어지간히 돌리지 않는 한 공기는 여간해서 따뜻해지지 않았다. 방바닥은 절절 끓어 뜨끈뜨끈하지만, 코끝은 시렸던 어린 날의 기억이 저절로 떠올랐다.

단독주택의 가스비라는 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감이 안 잡혀서 무작정 보일러 온도를 높일 수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향한 창을 열어 하늘을 보겠다는 건 야무진 꿈이었다. 방풍 비닐로 창문을 꽁꽁 막아뒀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첫눈 내린 날. 한옥에서 만난 첫눈이자 첫겨울의 시작. ⓒ 황우섭

 
계절만 추운 건 아니었다. 공사는 겨울 초입이 되어도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겨우겨우 비닐 장막을 걷어내고, 창호가 완성되고, 도배가 끝나고, 유리가 붙고, 쪽마루가 붙긴 했다. 9월에 이사를 했는데 11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집 다운 집이 된 셈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하루이틀, 완성의 날이 언제일지 기다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살면서 뜻대로 안 되는 날이 없지 않았다. 아니, 많았다. 그런 일을 한 번씩 겪을 때마다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미리미리 준비를 하며 살았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미리 예상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거나 허둥대지 않도록.

하지만 공사의 마무리 단계에서 내가 겪어야 했던 여러 일들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런 일들을 마음으로 이겨내느라 이 집에서 보내는 첫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웠다.

하지만 겨우내 춥기만 한 건 아니다. 이른 아침, 대청문을 열고 나가 마당에 서서 기지개를 켜면 어두컴컴한 하늘 저 끝부터 밝은 기운이 다가왔다. 슬리퍼를 끌고 나가 마당에 심어놓은 나무들의 안녕을 빌 때면 나무들도 마치 나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 같았다.

이 집에 또다른 존재가 나와 함께 이 추운 겨울을 버티고 있구나, 생각하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마당을 바라보며 대청 마루에 앉아 뜨거운 차 한 잔 마시고 있노라면 이게 바로 이 집에 사는 맛이라며 흡족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마당 라이프는 아니었지만, 겨울을 관통하는 내내 이 집에서 마당의 존재감은 다른 무엇보다 압도적이었다. 마당은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동고동락의 공간이었고, 집과 마당은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한덩어리였다.

'이 집을 사랑하는 자, 마당을 사랑할지어다. 한겨울의 추위까지도!'

매번 이렇게 다짐하는 동안 얼마나, 얼마나 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동설한의 추위에 봄을 기다리는 시가 그렇게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고, 그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나 역시 봄이 이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거짓말처럼 봄이 왔다. 긴 겨울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수한 변화의 씨앗을 품는 계절이다. 행여나 추위에 얼어죽을까봐 덮어주고, 묶어줬던 나무들의 방풍비닐을 걷어냈다. 키 낮은 꽃나무가 꼬물꼬물 새순을 틔우고 있었다.

그 여린 생명의 기운을 만나는 순간,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단지 추위를 견디고 새로운 생명을 밀어올린 나무를 향한 경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새순이 내 맘 같고, 내 맘이 그 새순 같았다.
 

3월의 햇빛이 따뜻할수록 초록의 기운은 점점 더 왕성하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이 새순의 힘이 한옥에서의 첫봄을 더욱 각별하게 해준다. ⓒ 이현화

 
집을 둘러싼 여러 상황으로 인해 우울하기까지 했던 마음은 이제 달관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바닥을 친 듯한 마음은 봄과 함께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었고, 할 수 있는 한 수습의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심하게 했다.

그렇게 텅 빈 것 같았던 마음 한켠에 조금씩 새살이 돋는 느낌으로 봄날을 시작하고 있는 이때, 꼼짝도 하지 않고 한겨울 추위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던 마당의 키 낮은 꽃나무가 온힘을 다해 밀어올린 그 새순의 여린 낯을 만난 것이다. 아직은 추위가 남아 있는 이른 아침, 그 새순을 보니 기운이 났다.

"그래, 우리 한 번 잘해 보자!"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군데군데 이가 빠지듯 미진한 부분을 차근차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집은 한결 집다워졌다. 한동안 진도를 못 나가고 내 손에서 멈춰 있던 일도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다. 

지난해 3월 27일, <오마이뉴스>에 '작은 한옥 수선기'의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어떤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집을 짓는 일은 언젠가부터 내 맘에 품어온 오래된 꿈이었다. 한옥을 바라는 마음은 컸으나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그 순간에, 나처럼 집을 짓고 싶은 분들과 앞으로 내가 겪을 일들을 공유해 보고 싶었다.

여기에 더해 가능하다면 집이 완성될 무렵 가족들과 집 짓느라 애쓴 분들 몇몇 분들께 그동안 애써주신 것을 감사하는 의미로 비매품 몇 십 부를 만들어 나눠가질 요량을 했다. 이를 위해 사진과 글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이 연재의 동기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연재를 보는 분들의 관심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 알려지지 않은 블로그에 찾아와 따뜻하게 성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이 집을 짓는 이야기를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자 이미 연재글로 공개되어 있는 글을 그대로 책에 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거의 다시 손을 보기로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겨우내 진도는 매우 더뎠다.
  

마지막 교정지의 모습. 집 한 채도, 책 한 권도 여기까지 오는 길이 참 멀었다. ⓒ 이현화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쌓이는 건 시간만이 아니다. ⓒ 이현화

 
3월이 다가오니 한낮의 빛이 제법 따뜻해졌다. 미세먼지가 괴롭기는 했지만 그나마 공기의 질이 좋은 날이면 쪽마루에 걸터앉아 차도 마시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무를 살피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한참 동안 하늘을 마냥 바라보곤 했다. 마당 라이프에 꽃을 빼놓을 수 없었다. 식물을 키우는 재주는 없으면서 늘 식물과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키워보겠다고 마음 먹었던 수많은 식물들이 내 손에 들어와 숱하게 죽어나갔다. 
 

이 집에 봄날의 시작을 알린 수선화와 패랭이는 몹시 열일중이다. ⓒ 이현화

 
나는 이제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었으니 이제야 비로소 식물과 더불어 살 수 있게 되었노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네 꽃집에서 작은 수선화 화분 하나를 들여왔다.

여기에 패랭이 꽃씨 봉투를 같이 사들고 왔다. 꽃씨를 펼쳐 물에 적신 휴지 위에 올려놓고 나니 한켠으로 미뤄뒀던 원고가 눈에 밟혔다. 더 미뤄둬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추스렸다. 다시 시작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시 교정지를 펼쳤다.

그리고 3월이 되었다. 한켠에서는 집이 마무리되어가고, 또 한켠에서는 수선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한쪽에서는 패랭이 꽃씨가 어느덧 새싹이 되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물에 젖은 휴지를 떠나 흙속으로 한 번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내 책상 위에서는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인쇄소에서 이제 막 인쇄를 마치고 나온 책 표지. ⓒ 황우섭

 
수선화는 꽃을 더 피운 뒤 마당의 나무 밑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패랭이는 순을 더 틔워 새싹이 더 자라면 역시 마당 나무 곁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는 대로 수선화도 패랭이도 무성한 잎을 틔울 것이다. 그런데, 조만간 내 책상 위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한 권의 책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2017년 여름에 만난 집 한 채가 지금 이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 봄날의 끝, 수선화와 패랭이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책표지에 내 이름이 실린 한 권의 책은 어디에서 어떤 이의 손끝에 가 닿아 있을까. 봄날의 초입에 서서, 바라던 마당 라이프의 어느 한낮에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됐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hyehwa11-17)에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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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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