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전선 교착, 해법은 대검 반부패부 폐지다

[주장] 근본적 해결책은 부패범죄 수사권의 분리독립

등록 2019.03.21 08:52수정 2019.03.2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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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부패방지법)이 시행된 지 2년하고도 반 년이 찼다. 세상은 분명 나아졌다. 돈봉투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9월 시행 2년 맞이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 공무원 응답자의 75.3%가 '접대 선물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학교 촌지 문화도 사실상 소멸 수순이다. 일선 학교 교감이 청탁방지담당관을 겸직하고 있고, 봉투를 넘어 스승의날 선물까지 지나치리만큼 엄격하게 규제 중이다. 고위공직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무죄가 나오기는 했지만, 부하직원 격려금 지급을 이유로 무려 서울중앙지검장이 옷을 벗었다. 일상 수준의 부패는 분명 크게 개선됐다.

문제는 사회 차원의 대형 비리다. 최악의 상황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부패했을 경우다. 수사기관이 역할을 방기하면 부패의 수준은 김영란법의 눈높이를 떠난다. 밥값이나 금일봉을 아득히 초월하는 대형 비리가 성행하기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철저 수사를 지시한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장자연 배우 성상납 강요/버닝썬 마약‧성범죄 의혹은 모두 권력형 부패사건이다. 수사와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위검사, 언론인, 연예인의 '막장 행실'이 우연한 계기로 드러났다.

사건 발생 직후 정상적 수사와 처벌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무려 12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수면 위로 올라온 일이다. 그마저도 국민적 관심과 대통령‧국무총리의 특별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검찰이다. 총경의 일탈로 볼 수도 있는 경찰과 달리, 검찰은 수뇌부 차원의 유착이기 때문이다. 핵심에 대검찰청 반부패부가 있다. 여기서 설명이 약간 필요하다. 반부패부는 전국의 특수부를 총괄 지휘하는 부서다. 즉, 대형 부패사건 처리를 최종적으로 좌우한다.

원래 검찰에서 대형 특수사건을 다루는 부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였다. 검찰 구조상 수사는 지방검찰청 및 지청에서만 하고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은 공소유지나 기획‧연구만 하는데,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이 지시하는 범죄사건이나 대형 부패사건을 직접 수사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 문제나 '살아 있는 권력'의 부패에는 눈 감고 정치적 표적 수사에 매진한다는 비판이 늘 따라붙었다. 결국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폐지됐다.

빈 자리에 반부패부가 생겼다. 중수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직접 수사기능은 내려놓고 특별수사 지휘권만 남겼다. 그러나 중수부의 악몽은 그대로 되살아났다. 반부패부라는 이름과 정반대로, 부패 무마를 시도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특별수사 지휘권을 활용해 대형 부패사건의 파장을 줄이는 데 힘쓴 것이다.

특히 전현직 고위 검사의 비위 사건에 노력을 기울였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일선 지검에 축소수사를 지휘한 간부는 윤갑근 당시 반부패부장이었다. 지난해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국면에서 검사 출신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수사를 가로막았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 역시 당시 반부패부장이었던 김우현 검사장이다.

애초에 부패 수사를 검찰에 맡긴 것이 잘못이었다. 조직논리를 따질 수밖에 없는 검찰은 권력형 부패를 잡아낼 수 없다. 조직 차원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 특히 검찰이 관련된 사안은 외면하기 일쑤다. 2010년에서 14년까지 5년 동안 검찰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는 2424건이었는데, 기소는 25건으로 기소율은 1.08%였다. 아예 수사 자체를 하지 않고 각하 종결한 경우가 2171건으로 89.6%이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늑장 소환과 압수수색으로 충분한 증거 확보에 실패한 일도 같은 맥락이다. 제2의 김학의 사건이 안 터진다는 제도적 보장이 없는 것이다. 검찰이 부패범죄 관할권을 내려놓고 독립 기구로 이관해야 하는 명징한 이유다.

사실 답은 20년 전부터 나와 있었다. 두 가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또는 국민권익위원회 실질화다. 귀에 익은 공수처에 비해 권익위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지만, 우리 정부 시스템의 반부패 총괄기구는 원래 대검이 아니라 권익위다.

권익위의 전신인 부패방지위원회는 애초에 공수처 설치를 위해 만든 상급기관이었다. 공수처 설치가 20년째 지연되고, 폐지된 중수부가 반부패부로 회생하면서 권익위 위상이 애매해진 것이다. 정리하면 공수처든 권익위든, 부패범죄 수사권의 독립이 개혁 방향의 골자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나 권익위 실질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법률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야 합의가 안 나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 율사 출신 의원 수십 명이 포진한 자유한국당 반대가 완고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을 우회해 패스트트랙 지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길 역시 바른미래당과의 이견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사실상 공전 중이다. 박영선 사개특위 위원장은 위원회 활동 5개월 동안 여야간 말싸움만 지켜보다가 법무행정과 무관한 부처의 장관 입각이 확정됐다. 권익위 수사기관화는 아예 논의 대상에도 못 오른 상태다. 시민사회 주장 선에 머무르고 있다. 요컨대, 부패범죄 수사권 독립은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상태다.

일단 반부패부 폐지부터 해야 한다. 개혁은 원래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나가는 과정 자체다. 법률기관인 공수처나 권익위와 달리, 반부패부는 대통령령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근거하는 일개 행정부서다. 대통령 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없앨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수부 폐지를 '부패검찰 개혁'이라는 여론의 요구를 다소 손쉽게 돌파할 카드로 사용한 측면이 있다. 공수처 설치까지는 어렵지만, 대선 공약은 지켜야 하므로 검찰조직 반발을 감수하고 중수부를 폐지하는 대통령령 개정을 단행한 것이다(채동욱 당시 총장의 적극 협조도 있었다).

일단 첫발은 뗀 상태다. 반부패부 축소 기조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반부패부를 강력부와 통합시켰다. 그래서 지금은 반부패‧강력부다. '미니 중수부'로 불렸던 반부패부 산하의 부패범죄특별수사단도 비슷한 시기에 없앴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반부패‧강력부 통합은 반부패부 약화라기보다 강력부 약화 조치에 가까웠다. 마약‧조직폭력 등 강력범죄 수사를 경찰이 해야 한다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 발표 직후에 이뤄진 개편이기 때문이다.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안 그래도 없애야 하는 기구였다. 위에 살펴본 것처럼, 반부패부 폐지와 병행해야 하는 공수처 설치나 권익위 강화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은 재수사가 명확해 보인다. 공소시효가 확실히 끝난 고 장자연 배우 사건과 달리, 특수강간 등 추가 정황이 발견될 경우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셀프 재수사' 가능성이다.

박상기 법무장관은 19일 "신속히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선 지검이 수사에 들어가면, 수사지휘는 다시 대검 반부패부가 한다. 대검 반부패부가 덮었던 일을 대검 반부패부가 재수사하는 것은 코미디다.

이에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특임검사나 특별검사를 거론하고 있다. 물론 검찰 수사보다는 낫다. 하지만 일시적 땜질이라는 단점이 있다. 검찰의 부패와 무능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 때를 실기해서는 안 된다. 김학의 사건의 재발을 막는 근본적 해결책은 특임검사가 아니라 부패범죄 수사권의 분리독립이다.

어차피 청와대 차원의 궁극적 목표는 공수처 설치고, 그와 함께 반드시 해야할 일이 반부패부 폐지다. 전자가 꽉 막힌 상황이다. 후자를 먼저 치고나가는 배수진을 고민할 때다. 어쩌면 반부패부 전격 폐지가 해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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