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노무현의 사과, 2018 문재인의 약속... 그러나

[4·3 항쟁 71주년과 특별법 ②] 진전이 없다... 배·보상도, 국가트라우마센터도, 모두 제자리

등록 2019.03.25 07:58수정 2019.03.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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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3이 다가옵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4·3 항쟁 70주년 추념식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은 국회 앞에서 멈춰 있습니다. 2017년 국회에 상정된 '4.3 특별법' 전부 개정안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 4·3 항쟁 71주년을 앞두고 특별법의 통과 가능성을 알아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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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4월 3일 제주4.3 제58주기 위령제에 참석,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국가권력의 잘못을 직접 사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 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하며, 이것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했다. 대통령으로서 처음이었다.

그렇게 물꼬가 트인 줄 알았던 제주 4·3 사건 해결은 두 차례 보수정권을 지나며 전면 중단됐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열린 위령제나 국가 추념일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흐드러진 붉은 동백꽃' 앞에 선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끊어진 12년을 이은 건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제주 4·3 사건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 차원의 배상과 보상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 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사과'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문 대통령은 '제주의 봄'을 약속했다.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흘렀다. 그러나 '변화'는 없다. 배·보상도, 국가트라우마센터도 모두 제자리다.

대통령은 '봄'을 약속했지만... 행안부는 "신중한 결정"
 

4·3 트라우마 치유센터는 올해 국비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좌초됐다. 제주 4·3 희생자와 유족에게 배·보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개정안(이하 4·3 사건 특별법)'은 발의된 지 1년이 훌쩍 지났으나 국회 논의에 진전이 없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신중한 결정"을 말하고 있다.

강창일·오영훈·권은희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제주 4·3 사건 특별법 관련 3건의 법안에 대해 지난해 9월 11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딱 한 차례 열렸다.


당시 회의에서 심보균 행정안전부차관은 "(배·보상에) 1만4000여 명이 해당되는데 보상비용 추계가 1조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 당국과 협의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라우마센터 역시 "지역별 설치보다는 국가적으로 통합 트라우마센터 설립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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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 ⓒ 임병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법안 처리 자체에 반대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서 가야 할지, 솔직히 입증할 수 있냐"라며 "수십 년이 지난 상황에서 여러 난항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송 의원은 "4·3 재단 만들어서 다 지원했는데 또 다시 배상, 보상해야 한다는 건 중복 지원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같은 당 유민봉 의원은 "지금까지 보상액 규모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굉장히 크다"라며 "어디까지가 명예회복이고 어디까지 보상이 이뤄져야 할지 하나하나 정리하는 게 참 어려운 부분"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이에 대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입법안을 마련하지 않고 피해 구제에 대한 선제적 조치를 해야 한다, 국가가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간명하다, 이미 때 늦었다"라며 "우리가 시혜적으로 배·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이 법을 통해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응당 책임져야 할 일을 일거에 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공유했으면 한다"라고 일침을 놨다.

법안심사소위원장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행안부의 '의지 부족'을 꼬집었다. 그는 "제가 솔직하게 쓴 소리를 한 번 하면, 그냥 신중 검토가 아니라 쟁점들에 대해 행안부가 입장을 정리해 와야 하는데 그게 안 돼 있는 거 같다"라며 "배·보상도 1조 8000억 원이 한 해에 다 지급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3년 간 분할 지급한다든지 재정 당국하고 협의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나아가 홍 의원은 "1년 전부터 계속 협의했는데 아직까지 결론을 못 내린 부분에 대해 유감스럽다"라며 "정부가 속도감 있게 일을 진행해 주셨으면 한다, 이 법안을 바라보고 있는 유족들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유족회장 "식물국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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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9일,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원과 시민 등 1천여명이 제주 시청 광장에서 4·3 특별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에서 4·3 특별법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유족들은 정부여당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약속을 지키라'는 주문이다.

지난 6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서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4·3해결을 위한 지원을 공약했는데 후속조치가 하나도 이뤄진 게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송승문 4·3유족회장은 "만약 올해도 허송세월로 지내고 의원들이 특별법에 관심이 없어서 우야무야 넘기게 된다면 2020년 72주년 4·3 위령제에 국회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입장을 거부하겠다"라고 못박았다. 이어 송 회장은 "7만여 유족이 한 맺힌 삶을 살고 있는데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식물국회 아니겠냐"라며 "올해 꼭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는 오는 25일부터 4·3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 관련 기사 <제주 '4·3 특별법', 한국당 의원들은 이렇게 답했다>(http://omn.kr/1hym8
#4.3특별법 #제주 #노무현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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