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투약 의혹' 이부진 사장, 해명에도 남는 의문들

[게릴라칼럼] <뉴스타파> 보도에 반박한 호텔신라 측,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길

등록 2019.03.21 20:09수정 2019.03.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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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느낌이 어떤 건지 다시 느낀다. 10년 전 황우석 사건 때 늘 코에 달고 살았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뉴스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속속들이 썩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시민들의 가호가 필요하다."

지난 2016년 7월 당시 <뉴스타파> 최승호 PD(현 MBC 사장)가 자신의 SNS에 올린 호소글이다. 최 PD는 이 글을 <뉴스타파>가 이른바 <삼성 이건희 성매매 의혹... 그룹 차원 개입?>이란 제목의 단독 보도를 하기 직전에 게시했다.

3년여 전만 해도 <뉴스타파>는 네이버 등 포털과 기사 제휴를 맺기 전이었고, 소위 '양진호 사건' 보도로 세간에 이름을 알리기 전이었다. 최 사장의 이 호소는 그만큼 기사 가치의 경중을 떠나 보도 자체가 묻힐 것을 염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삼성가의 이면을 다룬 이 보도는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뉴스타파>가 다시 '삼성가'를 겨냥했다. 이번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다. 20일 오후 <뉴스타파>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프로포폴 상습 투약 의혹... H성형외과 前 직원 폭로>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파장이 적지 않았다. 3년 전 이건희 사장 보도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마침 21일 호텔신라의 주주총회가 열렸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주주총회에 참석한 이 사장은 이번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보건당국과 함께 이 사장이 프로포폴을 투여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H성형외과에 대해 합동 현장조사를 했다.

경찰도 나선 이 사장의 프로포폴 투약 의혹, 신빙성이 있는 걸까.
  
전직 간호조무사 김아무개씨의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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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마약류인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했다는 <뉴스타파>의 보도 화면.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이부진 사장이 성형외과 건물 내 직원 전용 주차장을 사용해 곧바로 건물 3층에 있는 H성형외과 VIP실로 들어갔습니다. 이부진 사장은 오랫동안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이부진 사장이 왜 안 나오냐'고 물었더니, 그 직원은 '지금 프로포폴을 맞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직 H성형외과 간호조무사의 제보 내용이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제보에 나선 이 간호조무사 김씨는 서울 청담동 H성형외과에서 2016년 1월부터 10월까지 근무했고, 직접 이부진 사장을 대면했다고 한다. 원장과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병원에 혼자 남아 이부진 사장의 프로포폴 투약과정을 지켜봤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또 김아무개씨는 이부진 사장이 "프로포폴을 더 주사해 달라"고 요구했고, VIP룸을 정리하면서 프로포폴 앰플 10개씩, 총 200ml 정도가 들어 있던 상자 두 개를 발견해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와 인터뷰한 송홍석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이에 대해 "과도한 양이라고 볼 수 있다"이라며 "(이 정도 양을 쓰면) 호흡이 억제되고 맥박이 느려지거나 저혈압이 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또 김아무개씨는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H성형외과 유아무개 원장과도 직접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자다 깬 이 사장이 김씨에게 자신이 핸드폰을 달라고 요청했고, 유 원장과의 통화에서 이 사장이 더 많은 양의 프로포폴 투약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원장님이 '안 된다고 해라, 원장님이 퇴근하셔서 더 이상 투약은 안 된다고 말씀드려라'고 했습니다. 제가 원장님 말씀을 이부진 사장에게 그대로 전했더니 이부진 사장은 직접 원장님께 전화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머리 빗고 정리하시고 나오셨죠."

잘 알려진 대로, 소위 '우유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난 2011년 마약류로 지정, 2013년 상습 투약한 일부 연예인들이 구속되는 등 사회적으로 문제시된 바 있다. 김아무개씨는 H성형외과가 관리가 소홀했을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대장' 역시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다.

"H성형외과는 환자 차트나 예약 기록 등에 이부진 사장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프로포폴 투여 날짜와 용량 등을 기재하는 '장부'는 다른 환자들에게 투여한 량을 허위 기재하는 방식으로 조작했다."

이부진 사장과 호텔신라 측의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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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 참석하는 이부진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21일 오전 주주총회가 열리는 서울 중구 삼성전자 장충사옥에 도착해 주총장으로 이동하기 취재진 앞에 잠시 서 있다. 이 사장은 별다른 말 없이 주주총회장으로 향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제보에 나섰을까. 이부진 사장과의 대면 후 병원을 그만뒀다는 김씨는 "처음에는 나도 불법 투약에 연루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좀 무서웠다"며 "퇴사하고 생각해 보니까 이걸 계속 내가 숨겨야 될 필요가 있나, 나중에 터져서 나도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또 성형외과에서 계속 불법을 저지르다 만약에라도 이부진 사장이 아닌 다른 분들한테까지 퍼져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알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 인터뷰에 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김아무개씨는 이밖에도 H성형외과가 VIP인 이부진 사장에게 다량의 프로포폴을 제공하기 위해 다른 환자들의 투여량을 뻥튀기 하는 방식으로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대장'을 조작했고, 남은 수량을 끼워 맞추기 위해 장부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아무개씨에 따르면, VIP인 이 사장은 예악 절차와 같이 일반 환자들이 거치는 절차를 건너뛰고 원장과 "직거래"를 통해 H성형외과를 이용했다고 한다. 병원 측이 이를 감추기 위해 수시로 직원들의 입막음에 나섰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뉴스타파>의 보도대로라면, 이 사장은 물론 H성형외과 역시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 프로포폴 상습 투약은 물론 향정신의약품 관리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이부진 사장은 포털 검색어 상위에 오르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21일 신라호텔 주주총회에 참석한 이 사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21일 신라호텔측의 입장은 이랬다.

"(이 사장이) 지난 2016년 왼쪽 다리에 입은 저온 화상 봉합수술 후 생긴 흉터 치료와 눈꺼풀 처짐 수술 소위 안검하수 수술을 위한 치료 목적으로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수차례 정도) 해당 병원을 다닌 적은 있지만 보도에서처럼 불법 투약을 한 사실은 없다."

즉 이 사장이 진료 차 H성형외과에 드나든 것은 '사실'이지만, '불법' 투약은 한 '사실'은 없다는 해명이었다. 21일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서일호 호텔신라 그룹장 역시 엇비슷한 해명을 내놨다.

서 그룹장은 '프로포폴 투약은 시인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예를 들어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가면 마취해야 하는데 그 마취약이 무엇인지 환자가 알 수 있느냐"며 "이부진 사장이 다리 봉합수술과 흉터치료, 눈꺼풀에 지방이 빠지면서 안검하수 수술을 받아 치료 목적으로 병원을 다닌 적은 있지만 프로포폴 투약은 모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프로포폴 투약은 모른다는 뜻"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앞서 <뉴스타파>는 호텔신라 측이 반론 요청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은 거부한 채, 질의서를 보낸 지 3일 만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며 이후 계속된 취재에도 아무란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서 그룹장은 "병원 원장이 퇴근하고 간호조무사가 투약했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신빙성이 없다. 뉴스타파 보도에 사실관계를 밝히는 게 우선이라 법적대응은 추후 검토하겠다"며 "지난주 메일을 통해 강남의 한 병원에서 불법으로 수차례 투약한 의혹이 맞는지 문의하는 내용이 있었고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이후에 병원에 간 사실, 목적 등을 추가로 물어 와서 답변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내사 착수한 경찰


<뉴스타파>가 제보자 한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에 나선 것은 분명 신라호텔 측에 반박의 여지나 보도의 신빙성 측면에서 여지를 줬다고도 볼 수 있다. 신라호텔 측이 법적 대응을 예고한 만큼, 후속보도나 법적 다툼 등 향후 사건을 둘러싼 전개 역시도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라호텔 측은 물론 병원 측의 반응 또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제보자와 함께 근무했던 성형외과 총괄실장 신아무개씨는 "(이 사장이) 프로포폴이 아닌 보톡스 시술 때문"에 병원에 드나들었다면서도 한 차례 만남 이후 모든 취재를 거부했다고 한다. 유아무개 원장 역시 "인터뷰를 거부한다"는 입장만 반복했고, 직원들 역시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내사에 착수한 경찰은 성형외과를 포함한 의료기관의 마약류 사용에 대해 점검 권한을 갖고 있는 관할 보건소와 함께 H성형외과의 프로포폴 사용 및 관리 상태에 대해 행정점검을 먼저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는 물론 해당 병원의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대장' 조사 등 철저한 수사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부진 사장이 왜 구태여 직접 병원에까지 찾아가 프로포폴 주사를 맞았겠느냐며 제보자 김아무개씨의 증언에 신빙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포폴은 항간에 병원 관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큼 오남용이 쉬운 약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잘못 사용해 사망한 이들의 경우도 상당수다.

그 만큼 언론 보도에 즉각 반응한 경찰이 의혹이 생길 여지 없이 수사에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검경 수사기관 공히 권력과의 유착 의혹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작금의 상황이라면 더더욱. 참고로, 프로포폴 불법 사용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21일 오후, '버닝썬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가 이 사건을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한 결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경찰이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이부진 사장 사건 수사를 통해 '버닝썬 사건'을 필두로 각종 유착과 수사 은폐 의혹 등 '권력'에 취약한 수사기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지 지켜보도록 하자. 
#이부진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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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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