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구속, '정준영 구속' 그 이상의 의미

[분석] 불법 촬영·유포, '중대 범죄' 인식 변화 기회... "수사·사법기관, 심각성에 발 맞춰야"

등록 2019.03.22 19:50수정 2019.03.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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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촬영-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씨가 21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영창실질심사를 마치고 포승줄에 묶여 유치장으로 향하고 있다. ⓒ 이희훈

 
가수 정준영씨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불법 촬영·유포에 대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전향적 시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관계 영상을 몰래 찍어 카카오톡 대화방에 전송한 정씨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4조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21일 구속됐다. 정씨와 불법 영상을 공유한 김아무개씨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해당 조항은 타인의 의사에 반해 영상을 찍어 촬영·배포하거나(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영상을 찍을 당시 동의를 구했더라도 의사에 반해 배포(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할 경우 처벌하도록 돼 있다.

이번에 정씨가 구속되긴 했지만, 그동안 큰 사회적 문제였던 불법 촬영·유포 범죄에 대한 경찰·검찰·법원의 잣대는 관대한 편이었다. 이번에 경찰이 정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검찰이 이를 청구했을 때에도, 법조계에선 불구속을 예측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씨가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해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며 깊이 고개를 숙인 것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구속영장 발부 사유 중 하나인 '증거 인멸의 우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 바짝 엎드린 정준영, 두 손 모은 채 "모든 혐의 인정").

성폭력 피해자 다수를 변호한 이은의 변호사는 "그동안 불법 촬영·유포 범죄의 중대성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아 구속하는 사례가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례도 드물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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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촬영해 카카오톡 대화방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씨가 21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미리 준비한 자필 사과문을 손에 들고 낭독하고 있다. ⓒ 법원기자단

 
실제로 불법 촬영·유포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비해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너무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예를 들어 2015년 한 남성이 유포한 성관계 동영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으나, 경찰과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도 않았고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홍아무개 전 판사(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의 아들)는 판사 시절이던 2017년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했는데,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법원이 감봉 4개월 처분을 내리자 사직서를 제출한 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남인순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7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4조 카메라 등 이용 촬영'으로 인해 총 7446명이 재판을 받았으나 징역·금고형은 647명(8.7%)에 불과했다. 벌금형이 4096명(55.0%), 집행유예가 2068명(27.8%)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사사로운 습관? 호기심? '엄중 처벌' 인식돼야"

그렇다면 정씨 사례가 불법 촬영·유포 범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우선 이번 정씨의 구속을 특이 사례로 보는 시선도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불법 촬영·유포 범죄 자체가 아닌, 이 사건만을 중대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수사기관과 법원 입장에선, 여론과 언론이 이 사건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구속영장을 신청·청구하고 이를 발부해야 할 명분이 마련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2016년 같은 문제로 수사 받을 당시 정씨가 증거를 인멸하려고 한 정황이 포착된 점도 정씨 구속에 힘을 실었다. 당시 정씨는 휴대전화에 문제가 생겨 사설 복원업체에 맡겼다며 경찰의 휴대전화 임의제출 요구를 거부했고 결국 그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경찰은 '휴대전화 복원을 맡긴 업체로부터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는 내용의 허위 확인서를 제출한 당시 정씨의 변호인을 최근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했다.

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임민성 부장판사도 "피의자가 제출한 핵심 물적 증거의 상태 및 그 내역 등 범행 후 정황,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보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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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승리, 시간차 경찰 출석 가수 정준영과 승리가 14일 오전과 오후 각각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와 '성접대 의혹'과 관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 이정민

  
하지만 이러한 정씨 사건의 특수성과 별개로, '불법 촬영·유포 범죄 자체를 중대하게 다루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우선 임 부장판사가 정씨 구속영장 발부 이유 중 "범행의 특성과 피해자 측의 법익침해 가능성 및 그 정도"를 명시한 것도 불법 촬영·유포 범죄의 중대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은의 변호사는 "불법 촬영·유포의 경우 대부분 상습적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사사로운 습관이나 호기심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라며 "유포는 말할 것도 없고, 촬영 자체에 대해 강하게 법 적용을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에 엄벌을 내리는 경향을 거론한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가 크고 광범위하며 서민이 주 대상이기 때문에 수사·사법기관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것 아닌가"라며 "불법 촬영·유포도 그 피해가 크고 광범위하다, 사회가 변한 만큼 변화된 범죄 양상의 심각성에 발을 맞춰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이 범죄가 단순히 공공연한 놀이, 남성들의 문화로 인식돼 왔다면 이 기회에 바뀔 필요가 있다"라며 "제대로 처벌해서 '엄중하게 처벌되는 범죄구나'라는 인식이 심어지도록 국가가 의지를 보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법 촬영·유포만이 아닌 성폭력 전체로 봤을 때도 피해자가 신고 이후 경찰·검찰·법원을 거쳐도 제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는다"라며 "전체 성폭력 문제를 사소하게 여기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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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불꽃페미액션 회원, 녹생당 당원 등이 28일 오전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 특별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디지털성범죄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는 현재 20만 7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 이희훈

 
"피해에 비해 형량 낮아"

이를 위해 형량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법무부가 "죄질이 불량한 경우 원칙적으로 법정최고형을 구형하도록 하겠다"라고 발표했지만, 형량 자체가 비교적 낮다는 비판이다(관련기사 : 음주운전·불법촬영범 '분노' 여론, 법무장관 "최고형 구형").

김수지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강제추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 불법 촬영·유포 범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라며 "두 범죄로 인한 피해를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불법 촬영·유포로 인한 피해는 인터넷에 영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버리는 등 가해자의 사과만으로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교적 형량이 낮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불법 촬영·유포 범죄의 특성이 상습이고 피해 회복이 어렵다는 게 문제인데, 상습과 관련해 가중 처벌이 잘 내려지지 않는다"라며 "상습일 경우 가중 처벌하는 별도의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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