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타깃으로 한 여당 대변인 논평, 잘못됐다"

[스팟 인터뷰] 파비안 크레츠머 '타게스자이퉁' 한국 특파원

등록 2019.03.22 19:45수정 2019.03.2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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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6일 이유경 기자가 쓴 블룸버그 기사 ⓒ 블룸버그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유경 <블룸버그통신> 기자가 쓴 기사의 일부 내용이 6개월이 지나 제1야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에 다시 등장하고, 그를 빌미로 여당 대변인이 이 기자를 향해 "매국"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비난하면서 '문재인=김정은 수석 대변인' 논란은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파문이 일었다.

이유경 기자는 지난 2018년 9월 26일 치 <블룸버그통신> 기사에서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칭찬하며 사실상 대변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다"라고 썼다. 특히 이 기사의 제목(headline)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앞장서서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이 담긴 제목이었다.

이는 한국의 보수정당이나 보수언론의 시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이 기사가 나왔을 당시에는 거의 아무런 논란이 발생하지 않았다.

민주당 대변인 "매국" 논평... '언론의 자유 위협' 파문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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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사진은 지난 1월 1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이 기사가 논란이 된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뒤였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은 이제 부끄럽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 달라"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의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발언이 큰 논란을 일으키자 '외신 보도를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가 인용했다는 외신 보도는 이유경 기자가 지난 2018년 9월 26일에 쓴 <블룸버그통신> 기사였음이 금방 알려졌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은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선출한 국민을 모독했다"라는 거센 비판을 불러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 모독 논란' 정도였다. 하지만 여당 대변인이 이유경 기자를 비난하는 논평을 내면서 '문재인 대통령 모독 논란'은 '언론의 자유 위협 파문'으로 바뀌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3일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이유경 기자'의 실명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비난했다. 게다가 다음날(14일) 낸 논평에서도 "해당 기사는 한국인 외신 주재원이 쓴 '검은 머리 외신' 기사에 불과했다"라고 힐난했다.

이에 지난 16일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이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민주당이 블룸버그통신 기자 개인에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고 이로 인해 기자 개인의 신변안전에 큰 위협이 가해진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자 한다"라며 "언론 통제의 한 형태이고 언론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아시아계 미국 언론인들의 모임인 '아시안아메리칸기자협회'(Asian American Journalists Association) 아시아지부와 서울지부도 지난 18일 낸 성명서에서 "기자 개인에게 가해지는 인신공격적 비판에 명백히 유감을 표한다"라며 "이러한 위협들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언론의 자유를 해치는 행위다"라고 성토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I)도 지난 20일(미국 현지 시각) "(민주당처럼 대변인 공식 논평을 통해) 특정 기자를 '매국 행위'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라며 "민주당은 기자의 역할이 정부의 '응원단원'이 아니라 공익 사안에 대해 독립적이며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매국' '검은 머리 외국인' 등의 표현이 잘못됐다"
 

파비안 크레츠머 <타게스자이퉁> 서울특파원. ⓒ 구영식

 
4년여 동안 한국에서 기자로 활동해온 파비안 크레츠머(Fabian Kretschmer, 34) <타게스 자이퉁>(Die Tageszeitung) 서울특파원은 2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기사의 헤드라인(제목)을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기자를 타깃으로 '매국자' 등으로 비판한 것은 성숙하지 못한 발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매국'은 국가 기밀 사항을 누설하거나 불법적으로 무기를 팔 때 쓰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이런 경우에 쓰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블룸버그통신> 기사의 헤드라인이 논쟁을 야기할 만한 것이긴 하다"라면서도 "그렇지만 그 헤드라인 내용이 크게 틀린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좋게 얘기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그 총회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대변하는 걸로 보였을 수 있다"라며 "물론 저 같은 경우 이런 헤드라인을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민주당 대변인이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잘못이다"라며 "일단 그것은 기자 개인을 공격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 대변인이 헤드라인이 잘못됐다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고, 그럴 경우 그 이유를 잘 설명하면 된다"라며 "그런데 '매국' '검은 머리 외국인' 등의 표현을 쓴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정치 쪽은 외신 기사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

파비안 기자는 "지금 상황이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거나 침해하는 것도 조금 있다"라며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한 기자를 타깃으로 해서 논평을 내고 그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팬들이 그 기자의 신변에 위협을 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유경 기자의 트위터 계정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상당히 모욕적이긴 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전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때보다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한국, 특히 정치 쪽에서 외신기자들이 쓰는 기사에 지나치게 많이 신경을 쓴다"라며 "미국 매체 등 외신기자가 한국을 찬양하거나 좋게 보도하면 좋아하고, 반대로 비판하면 너무 불쾌하는 등 외신기자들에게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국적을 가진 기자가 외신 기자로 일하는 것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것 같다"라며 "연세가 많은 한국 분들은 '한국편에 서는 거냐? 외국편에 서느냐?'는 두 가지를 자기고 기자를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출신 외신기자들이 한국을 중립적으로 다루기 어려운데 그것도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극우정당에서나 그런 논평 볼 수 있을 것"

또한 파비안 기자는 "유럽 경제위기 때 한 그리스 매체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히틀러'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서 기사를 냈다"라며 "당시 독일 국민들이 놀라긴 했지만 크게 반응하지 않고 무시했다, 미성숙한 행위라고 받아들이고 끝냈다"라고 전했다.

그는 "만약에 (그 기사와 관련해) 비판이 있었다면 감정적 비판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남겼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여당 대변인이 특정기사를 감정적으로 논평하는 것은) 독일의 경우 극우정당만 할 수 있는 일이다"라며 "나치 수준의 극우정당인 AfD('독일을 위한 대안')에서나 그런 논평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볼 수는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애국심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두운 역사를 가졌던 독일보다는 좀 더 긍정적이다"라며 "일제 강점기 등의 역사 때문인지 한국의 좌파가 독일의 좌파에 비해 애국심, 민족주의 성향을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 1978년 설립된 <타게스자이퉁>은 베를린에 본사를 둔 독일의 진보성향 언론사로 한국의 <한겨레>와 비슷하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6년 동안 여성이 편집국장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덧붙이는 글 파비안 크레츠머 기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통역을 도와준 윤명원씨(한국외국어대 통번역 대학원 한불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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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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