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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제 이사장 결국 사임, 내부 갈등 수습될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이사장 내분 책임지고 물러나

19.03.23 18:17최종업데이트19.03.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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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이사장이 21을 최근 내부 갈등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 여성영화제


(사)서울국제여성영화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이사장이 최근 집행위원장 불신임으로 촉발된 프로그래머 사퇴 등 내분의 책임을 지고 21일 사임했다. 여성영화제는 22일 공개한 이사회 공식 입장문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혜경 이사장의 사임은 내부 갈등이 불거지면서 예정됐던 수순이라는 점에서 여성영화제 내부 갈등이 전환 국면을 맞은 셈이다. 이후 갈등이 해소될지 아니면 새로운 갈등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내분 책임지고 이사장 사퇴
 
여성영화인들 사이에서 진행되던 갈등이 표면으로 부상한 것은 지난 12일 김선아 전 집행위원과 집행위원들이 입장문을 공개적으로 밝힌 데 이어, 같은 날 이사회 명의의 반박 입장문이 나오면서부터다. 내부적인 갈등이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을 연임시키지 않은 2월 이사회의 결정에 있었다.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 측은 부당하게 해임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혜경 이사장이 소수의 이사를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이사회를 구성·운영하고 권한을 독점해 왔다면서 집행위원장 해임에 대한 이사회 의결과정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사장과 이사회의 사과 및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여성영화제 이사회는 비공식 입장문을 통해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의 연임을 부결한 것"이라며 "직권남용·사무국의 비민주적 운영·여성영화제의 역사와 공동체성을 무시하는 태도 등"을 복합적인 이유로 제시했다. 김 전 위원장 불신임 결정은 내용과 절차에 전혀 문제없는 민주적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사회의 입장은 일부 이사가 독자적으로 정리해 상태에서 외부에 전하는 과정에서 공개된 것으로 이사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이사장 역시 입장문 내용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일부 표현이 적절치 못하다는 인식을 했지만 이사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어 이해하고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에 공식적인 입장문으로 간주되면서 바로잡기는 늦었기에 사후 승인 형태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부당 해임 VS. 임기 만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 ⓒ 여성영화제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부당한 해임'과 '임기 만료에 따른 연임불가'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였다.
 
영화제의 안정적인 진행과 예산 증가, 높아진 위상 등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당연한 연임을 예상했던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 쪽에서는 갑작스런 연임 불가를 해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성과보다는 운영 과정에서 빚어진 과오를 더 무겁게 생각하고 있던 이사회 쪽은 "2년 임기로 한번 연임을 했고, 임기가 만료된 것으로 적법한 권한을 가진 이사회가 더 이상 연임을 안 시키려 한 것이 어떻게 해임이 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부당한 해임'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이혜경 이사장이 20년 이상 여성영화제를 이끌어 오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로,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이들로 구성된 이사진들에 대한 개혁도 요구하며 조혜영 프로그래머와 사무국장 등은 동반 사퇴서를 제출했다. 세대교체 프레임을 내세운 것이다.
 
반면 이사회 측은 철저히 세대교체와는 관계없는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이 영화제를 이끌어 온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사회의 적법한 결정에 대해 이사장 개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1년 연임 후 TF 구성을 통한 절충안을 제시했음에도 집행위원장이 거부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집행위원장이 이사장 사퇴를 요구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이었다.
 
장단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성과를 강조하는 집행위원장 측과, 장점보다는 단점을 크게 본 이사회의 시각 차이는 컸다. 양측은 이후 개인 SNS를 통해서도 갑론을박을 벌였으나 이혜경 이사장이 이번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임을 발표하면서 매듭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중립적인 시선은 양비론
 

2018년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의 이혜경 이사장과 김선아 집행위원장 ⓒ 여성영화제

 
사실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 측 입장문이 여성영화인들 사이에서 회람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일부터였다. 외부에 공개되기 1주일 전 즈음이었는데, 이혜경 이사장은 집행위원장 측 입장문을 확인하고 곧바로 "이사장에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밝혔다. 이 이사장은 "후배들과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는 진흙탕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며 "더 이상 미련도 없고 건강도 약해진 상태에서 깨끗이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사회의 반발을 우려했다. 실제로 한 이사는 "여성영화제를 처음 만들고 성장시키는 데 역할을 해 온 분에게 이런 식의 수모를 안기는 건 옳지 않다"는 뜻을 나타냈다.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내분이 공개될 경우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인 듯 양측은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불신이 이어지면서 입장문은 1주일 뒤에 공개됐다. 김선아 집행위원장 측 관계자는 "입장문을 발표하지 않고 내부에서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으나 이혜경 이사장 측이 사퇴의사와 간담회 소집 계획을 번복해 외부로 공개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사회 측은 "사퇴의사 번복이 아니고 2월 28일 열렸던 이사회와 집행위원 간담회의 상황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있어 조정이 필요해 연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불신과 신뢰 저하가 작용하면서 갈등이 외부로 노출됐던 셈이다.
 
양측을 중립적인 시선에서 보고 있는 영화인들은 양비론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 프로듀서는 "여성영화제 내부 이너서클의 갈등"이라며 "둘 다 차이가 없다"고 양측을 똑같이 비판했다. 한 감독은 "안타깝고 슬프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이 예의를 다 하길 바란다."며 어느 쪽 입장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여성영화제에서 일했던 전직 스태프는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을 책임을 강조하는 이사회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립적인 입장을 밝힌 감독님과 같은 생각"이라면서 "양쪽 다 문제점이 있다고 보기에 어느 한쪽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프로듀서 역시 "젊은 여성영화인들 입장에서는 선배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 실망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성영화제 흔들려서 안 된다'에 공감대
 

2018년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한 관객들 ⓒ 여성영화제

 
여성영화제의 내부 갈등은 영화계 내부에서도 상당히 우려가 많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내부 갈등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감정적인 말들이 오고가기 보다는 나름 절제된 표현으로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여성영화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는 모두가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간 쌓아온 성과를 이어내면서 내부적인 이견과 갈등은 더 나은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시각들도 있다. 외부로 표출돼서 커 보이는 것이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이견과 갈등이라는 것이다.
 
여성영화제 이사회는 22일 공식입장에서 "내부 인사 문제로 여성영화제를 사랑하시는 분들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새로운 집행위원장 선임과 원활한 소통과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약속했다.
 
다만 비상대책위 구성 등을 요구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과 신임 집행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따라 갈등의 요소는 남아 있는 상태다. 신임 집행위원장은 총회 인준 후 공개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진용 구축에 따른 올해 영화제 차질 우려도 높아졌다.

여성영화제에서 활동했던 한 영화인은 "고생하면서 여성영화제를 성장시킨 전임 집행위원장은 안타깝지만, 전화위복이 돼서 잘 수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여성영화제 이혜경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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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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