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긴급 출국' 김학의, 죄를 자백한 꼴

[게릴라칼럼] 김학의의 '도주 시도'와 사필귀정

등록 2019.03.24 18:40수정 2019.03.2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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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PD 수첩> 카메라를 피해 운동장을 질주해 도망치던 임종헌 전 법원 행정차장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 그 보다 더 했다. 검은 정장 차림의 강압적인 경호원 두 명을 대동한 것도 모자라 일종의 '가게무샤'(그림자 무사, 대역)까지 앞세운 모습이 영락없는 마피아 두목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시종일관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게 선글라스와 모자, 목도리로 얼굴을 꽁꽁 숨겼다는 것뿐.

'별장 성폭행' 의혹의 당사자로 6년 만에 언론 카메라에 얼굴을 드러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2일 인천공항에서 포착됐다. 한밤의 '실패한' 도주극이나 다름없었다. 지상파 3사 메인뉴스와 JTBC <뉴스룸>이 일제히 톱뉴스로 내세운 김학의 전 차관의 모습은 흡사 부정한 마피아 두목 같았다고나 할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인천공항에서 '잡혔다'. 법무부로부터 이른바 '긴급 출국금지'를 당한 것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강제 수사'를 언급한 지 고작 사흘 만이었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김 전 차관의 목적지는 방콕 돈므앙 공항. 비행기 예약도 하지 않은 채 인천공항에서 직접 오전 0시 20분 출발하는 태국행 저가 항공표를 구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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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태국으로 출국하려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특수강간 혐의 수사를 앞둔 김 전 차관이 이대로 출국할 경우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긴급히 출국금지 조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진은 지난 2009년 당시 울산지검장이던 김 전 차관이 인터뷰하는 모습. 2019.3.23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법무부가 출국 절차를 마치고 대기 중이던 김 전 차관을 긴급하게 제지했고, 김 전 차관은 결국 23일 새벽 5시께 언론 카메라에 6년 만에 노출된 채 급하게 공항을 떠났다는 전언이다. 그래서인지, '도주미수'와 같은 단정적인 표현을 쓴 언론도 있었다. 김 전 차관을 닮은 '가게무샤', 즉 김 전 차관이 친인척이라고 알린 남자가 취재진을 막아서며 취재를 방해한 것도 그때였다고 한다.

"김학의 전 차관과 비슷한 외모의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손으로 카메라를 가로막습니다. 취재진을 거칠게 밀치는가 하면 짜증 섞인 듯한 반응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남성은 김 전 차관이 아니었습니다. 김 전 차관은 모자와 선글라스,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채 이 남성의 뒤를 따랐습니다. 남성은 김 전 차관을 의식한 듯 뒤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김 전 차관 옆에는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 두 명도 동행했습니다. 김 전 차관이 차에 탈 때까지 양쪽에서 경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 전 차관의 짐은 큰 여행용 가방 2개 분량이었습니다. 김 전 차관 측은 외모가 비슷한 남성은 함께 출국하기로 했던 가족 중 한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른 남성 2명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부른 사람들이며 가방에는 반바지와 티셔츠 등을 넣었다고 답했습니다."


23일 JTBC <뉴스룸> 보도다. 경호원에, '가게무샤'까지. 김 전 차관이 사전에 출국을 철저하게 계획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한편 일각에서 제기한 김 전 차관의 '출국 금지'에 대한 과잉 대응 논란에 대해 법무부 측은 내사사건 피의자의 경우 긴급 출국금지 조처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 전 차관은 왜 '도주극'처럼 보이는 '긴급 출국'을 시도했을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같은 날 KBS <뉴스9> 보도가 제공하고 있었다.


박근혜 청와대의 외압 의혹

"경찰이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하기 시작한 2013년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수사를 막기 위해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했다고 당시 경찰 수사 책임자가 KBS에 증언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직접 경찰청을 찾아와 '대통령이 불편해한다'며 '수사를 진행하면 큰일난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뉴스9>가 전한 <VIP가 관심이 많다… 朴 청와대, 김학의 발표 앞두고 경찰 압박> 보도의 앵커 멘트다. 요컨대, 6년 전 김학의 전 차관의 '별장 성폭행' 사건 수사에 대한 박근혜 청와대의 외압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이 최초로 나온 것이다.

KBS와 인터뷰한 당시 경찰 수사 실무 책임자의 증언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박근혜 정부가 갓 출범한 2013년 3월 초, 경찰은 '별접 성접대' 동영상에 대한 첩보를 입수,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당시 대전고검장'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경찰청 수사국 최고 책임자 김학배 국장이 자신을 불러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수사 착수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다고 한다.

또 이 책임자는 며칠 뒤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박관천 행정관이 직접 경찰청을 방문, 김 수사국장과 자신을 함께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거론하며 "수사가 부담스럽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우려의 뜻도 함께 전했다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이면서 지금 이 첩보내용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엄지손가락 보이면서 이 분의 관심 사안이다…"

"VIP가 관심도 많고 이거 큰일난다. 이 사안에 대해서 진행되는 게 굉장히 큰 문제다. 뭐 이런 표시를 했다는 것이지."


당시 경찰 수사팀 실무 책임자의 증언이다. KBS의 취재에 박관천 전 행정관은 물론 당시 청와대 보고 라인이자 직속상관이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공직기강비서관)과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민정수석)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당시 새로 부임한 이성한 경찰청장이 수사팀을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2013년 3월 29일 부임한 이성한 경찰청장은 관련 수사 진행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청장에게) 보고를 하는데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 본인도 벌받을 것이다' 이런 얘기까지 했어요.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그 '남의 가슴'이 김학의여야 되겠습니까, 피해를 입은 여성이어야 되겠습니까?"(당시 경찰 수사팀 실무 책임자)

이 같은 청와대와 신임 경찰청장의 우려 덕(?)에 해당 수사팀은 정식 수사 착수 한 달도 되지 않아 전원 교체됐다고 한다. KBS는 또 김학배 당시 경찰청 수사국장은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이세민 전 수사기획관은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 전보 조치됐다고 밝혔다.

김학의 전 차관의 사필귀정

"청와대가 분노한 거는, 법무부 차관을 임명했더니 경찰에서 이런 사건을 어떻게 터뜨릴 수가 있냐라고 분노를 한 거고, 그 다음에 검찰 사이드에서는 난리친 거죠. 경찰이 감히… 그래서 청와대에서는 부인할지 몰라도, 직간접적으로 청와대한테서 경찰 쪽에 압박이 엄청 났죠."

작년 4월 방송된 MBC <PD 수첩> '검찰개혁 1부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 편과 인터뷰한 한 경찰 관계자의 증언이다. 청와대가 경찰을 압박한 정황과 관련해 KBS 보도와 일치하는 증언인 셈이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 역시 <PD 수첩>에 "저의 뜻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인사명령을 받아서 거기를 떠났어요. 마무리까지 못 했어요, 제가"라며 "외압이다, 이런 얘기는 제가 하고 싶지 않고 다만 저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사를 당해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역시나 KBS와 인터뷰한 경찰 수사팀 실무 책임자의 증언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김학의 별장 성폭행' 사건은 당시 경찰이 김 전 차관을 특수 강간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넘긴 사건을 검찰이 두 번이나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하면서 부실 수사와 은폐․외압 의혹을 받아 왔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공소 시효가 남은 특수 강간 혐의에 대해 이르면 26일 검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진상조사단은 두 번이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과거 검찰 수사에 부당한 외압이 있었던 정황을 포착, 이 부분 역시 수사를 의뢰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검찰이 수사할 대상이 하나 더 늘은 듯 보인다. 경찰 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압박 말이다.

"저희는 기소를 확신했었고 저도 수사를 ◯◯년 가까이 했는데 그런 정도 사건 같으면 검찰에서 먼저 구속영장을 칩시다 하고 승인이 들어와요, 검사들이. 그런 정도의 사안은 구속영장을 당연히 청구한다고 생각했었고요. 발부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PD 수첩>과 인터뷰 한 또 다른 경찰 관계자의 회고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한 지 4개월 후인 2013년 11월,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김학의 전 차관은 물론 건설업자 윤중천에게도 증거 불충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듬해 피해자가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역시나 마찬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후 김 전 차관의 검찰 수사 라인은 박근혜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외압과 함께 검찰이 알아서 '기었다'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이유다.

국민 여론이 '특검' 요구로 기우는 것은 어쩌면 사필귀정일 것이다. 진상조사단이 활동하던 초기인 작년 상반기만 해도, 김학의 별장 성폭행 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끌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진상조사단 자체에서도 제대로 된 조사는 물론 재수사 의뢰는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진상조사단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김학의 사건의 피해자는 작년 11월 "2차 가해를 당했다"며 조사팀의 교체를 요구했고, 결국 조사팀 교체와 사건 재배당이라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후 김학의 별장 성폭행 사건을 수면 위로 올린 것은 피해자의 호소와 국민 청원, 고 장자연 사건과 함께 언론의 잇따른 보도 등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철저 수사를 지시했고, 진상조사단의 조사 2개월 연장에 이어 재수사까지 바라보게 됐다. 하지만, 이미 사건을 철저하게 덮었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를 비롯해 '제 식구'는 물론 그 윗선까지 수사해야 하는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겠냐는 국민 여론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다. 자유한국당이 앞장서 반대하고 있지만, 특검 도입이야말로 국회 차원에서 국민 여론을 떠받들어 대승적으로 결론내야 할 사안임이 분명한 이유가. 김학의 전 차관도 예감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제대로 된 수사를 받게 될 거란 사실을. 죄가 없는 사람이 그리 도망치듯 떠날 순 없는 법이다. 한밤의 '긴급 출국' 시도야말로 김 전 차관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꼴 아니었을까.
#김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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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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