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마을교육공동체, 어떻게 생겨났을까

절로 형성되는 교육공동체 없어… 주민과 학교가 함께 각성하고 부단한 노력 기울여야

등록 2019.03.25 17:36수정 2019.03.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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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놀장. 송악면 주민들의 최대 축제. 이날은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이면 누구나 흥겨운 자리의 주인공이 된다. 아이들과 주민들 공연은 물론이고 마을에서 난 갖가지 특산물과 수공예품, 먹거리를 판매하는 장터까지. 해마다 몇 차례씩 열려 외부에서도 꽤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 송악동네사람들

 
교육정책 채택 전부터 마을교육공동체로 살아온 송악마을 이야기

지난해 10월 전국단위 '공동체 우수사례 발표 한마당'에서 최우수상 수상, 같은 해 12월 '공동체 활성화 성과공유회 및 민관협치 포럼'에서 도정 민관협치 활성화 부문 공로로 충남도지사 기관표창 수상. 아산시 송악면 마을의 최근 수상 이력만 이렇다.

송악면은 이미 전국적인 마을교육공동체 모범사례가 된 지 오래다. 마을교육공동체와 마을 만들기 등 공동체 관련 선진지로 송악면에 벤치마킹을 오는 단체가 적지 않다. 외부에서 요청하는 체험과 견학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이 마을은 충남교육청이 주관해 선도하는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마을주민 스스로 마을을 챙기기 위한 공동체를 형성해왔으며 지금도 '온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의식과 협력 의지를 갖추고 주민이 함께 더불어 살고 있다.

충남교육청이 꿈에 그리는 이상적인 마을교육공동체, 교육정책의 생성 이전부터 마을교육공동체를 실천해온 송악면 사람들의 촘촘한 삶과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 특성 파악한 주민 의지에서 시작 
 

골목예술제를 즐기는 아이들.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익힌 자기계발 작품을 모아 해마다 전시하는 골목예술제. 이제는 송악놀장과 결합해 더 큰 축제의 한 장르로 어우러졌다. ⓒ 송악동네사람들

 
송악면은 2018년 기준 4400여 명이 살고 있다. 2000년에 비해 1200명이 늘었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늘었다. 송악면 딱 2곳뿐인 초등학교 중 거산초등학교는 2000년 39명에서 120명으로 늘었고 송남초등학교는 87명에서 250명으로 늘어났다. 약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른 시골은 인구가 격감하는데 송악면엔 오히려 인구가 늘어난 걸까.

송남초 분교였던 거산초는 2000년대 들어 정부의 작은 학교 통폐합 대상이 되어 폐교 위기에 직면했다. 주민들은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어 대응했다. 주민들 노력으로 거산초는 살아났고 거산초를 '공교육 안 대안학교'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학부모와 뜻이 같은 교사들이 결합하면서 거산초는 '전원형 작은 학교'로 거듭났다. 거산초 아이들은 나가지 않게 하고 도시 지역 아이들이 거산초에 다닐 수 있게 한 것이다. 농촌을 살릴 대안으로 선택한 학교운영방침이었다.


송남초는 달랐다. 송남초 학부모들은 시골에서 살며 아이를 키우고 싶어 온 이들이 많았다. 거산초가 학교 교육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형태라면 송남초는 마을이 중심이 되어 학교를 바꾼 사례다. 송남초 학부모들은 마을 특성에 따른 교육을 학교에 요구했다.

"마을교육공동체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우리 마을에선 아이들 돌봄을 해왔어요. 당시 학교는 그 역할을 해낼 체계가 없었어요. 지금도 운영하는 반딧불이지역아동센터(이하 반디)가 그 시작이었죠."

홍승미 사회적협동조합송악동네사람들(이하 송악사람들) 상임이사는 마을교육공동체 형성의 뿌리를 알고 싶다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IMF 이후 전국에 도산한 기업이 늘어나자 실업자 역시 급증했다. 가정경제 유지가 어려워지자 이혼가정도 늘었고 자녀부양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시골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떠났다.

송악면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송남초 상황은 심각했다. 2004년까지도 해도 조부모 가정이 70% 이상이었다.

홍승미 상임이사는 "IMF 이후 마을에 아이들이 부쩍 늘었어요. 근데 조부모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당시 마을에 살던 이종명 목사는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일탈을 목격했다. 이 목사는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보살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절감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이 목사는 홍승미 이사와 김영미씨(현 반딧불이지역아동센터장)에게 방과 후 아이들 돌봄을 부탁했다. 현실을 져버릴 수 없던 홍승미 이사는 당시 수익 좋은 과외를 그만두고 김영미 센터장과 함께 '반딧불이 교실(이하 반디)'이란 이름으로 돌봄을 시작했다.

돌봄으로 시작한 주민 후원과 발표회, 주민참여 마을 축제로 거듭나 
 

꿈사다리캠프 아빠들의 관심의 참여가 만든 송남중학교 진로캠프다. 대학생들이 방학마다 마을에 와서 2주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배로서 조언하는 캠프다. ⓒ 송악동네사람들

 
반디는 어느 개인이 사업적으로 꾸린 지역아동센터가 아니었다. 마을 특성상 필요해서 주민들 스스로 봉사개념으로 시작한 아동 돌봄센터였다. 당시는 지역아동센터라는 이름도 없을 때, 용케 마을회관 빈방을 얻어 둥지를 튼 방과 후 공부방, 반딧불이 교실이었다.

이종명 목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돌봄을 지속할 수 있게 마을 후원을 이끌었다. '우리 마을에 사는 우리 아이들을 우리가 돌보자'는 취지로 후원자를 모았다.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이 십시일반 참여했고 마을 밖에서도 후원이 들어와 공부방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다.

공부방에선 후원에 감사하단 뜻으로 아이들이 활동한 내용을 공개하는 미술제를 열었다. 발표회는 언제부턴가 마을 축제로 커졌다. 지금은 그 규모가 상당해 마을 전체 주민이 참여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풍성한 축제로 성장했다.

마을의 관심이 공부방에 쏠리니 학부모가 교사가 되어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학부모가 모인 반딧불이 교실은 어느새 마을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토론의 장이 되었다.

반딧불이 교실을 중심으로 마을 돌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학교가 마을의 중심이 돼서 마을의 과제를 함께 나누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의 변신을 꾀했다.

학교는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현재 송남초 안에 있는 솔향글누리도서관은 2010년 아이들이 한겨레에 사연을 투고해 삼성이 건립해준 마을도서관이다. 사서도 마을 후원금으로 운영했다.

도서관이 생기자 학부모들의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학부모들은 도서관 방과 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학부모생태모임'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생태, 환경을 이야기해주었다. 많은 지식을 가르치기보다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컸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들이었다.

학부모들은 함께 가기 위해 교사들을 설득했으나 되지 않았다. 결국 이런 내용에 동의하는 교사를 찾아 송남초에 발을 디디게 했다. 학부모들의 노력은 그런 교사들이 마을에 오게 했다.

의식의 결이 같은 교사들은 학교 교육과정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여러 길을 열어줬다. 교사들은 학부모와 함께 고민하고 마을 이야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전국최초 유기농쌀 급식 시작한 송악면 
 

교사와 부모, 아이들이 함꼐 떠나는 탐방 송악 마을 사람들은 주민이 교사이고 교사가 마을 주민이다. 송남초 절반가량이 교사인 마을이다. 모두 함께 타 지역의 다양한 선진지를 견학하는 일도 진행한다. ⓒ 송악동네사람들

 
또 이종명 목사는 토박이 안복규 씨 등 여러 주민과 '친환경농업연구회'를 만들어 송악면을 친환경 생태 마을로 바꿔보자는 분위기를 이끌었다. 전국 최대 친환경마을로 유명한 홍성군 홍동마을을 견학하고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쌀을 생산했다. 아이들도 오리를 맡아서 키우는 등 자연스럽게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학부모들은 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쌀을 학교급식으로 사용하길 바랐다. 먹거리 안전을 생각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농법으로 짓고 아이들이 직접 참여해 생산한 뜻깊은 쌀이었다. 학교는 거부했다. 교장이 바뀌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2004년 당시 80kg 쌀이 8만원 수준일 때 유기농쌀은 33만원 했어요. 학교급식에 유기농쌀이 들어간 건 전국최초였지요."

홍 이사는 또 "이즈음 친환경 농사를 짓기 시작한 송악면이 현재는 한살림에 채소를 공급하는 최대 친환경산지가 됐다"고 말했다.

아빠들 아이디어로 중학교까지 변화 이끌어 
 

마을언니에게 배우자 마을 주민들이 가진 재능과 자원을 서로 나누는 자리다. 서로 배움과 익힘을 주고 받으며 주민들은 더욱 돈독한 정을 나눈다. ⓒ 송악동네사람들

 
학부모들은 역대 교장 중에서 지금 교장이 가장 좋은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학부모들이 의지와 수고가 녹아든 세월은 송남초를 변하게 했고 변화된 학교와 마을에 공감하는 교사들이 일하고 있다. 마을에 같이 사는 교사만 송남초 전체 교사의 절반가량이다. 학교 선생님이 마을주민이고 옆집 아줌마이고 이웃 아저씨인 셈이다.

그러나 중학교는 또 하나의 관문이었다. 홍 이사는 "송남중학교는 마치 군대 같은 분위기였다. 송남초와 거산초에서 자유롭게 자연친화적으로 배움을 접한 아이들은 송남중 가기를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고민했다. 특히 아빠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웃 주민이 된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떠나는 등 아빠 커뮤니티도 자연스럽게 형성된 후였다.

송남중 학생 수를 늘릴 묘안으로 교복장학금을 생각해냈다. 2014년부터 송남초와 거산초를 졸업한 아이들 전원에게 교복을 해주는 장학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비용은 아빠들이 손수 먹거리 장터를 열어 마련했다.

또 아빠들이 모은 돈으로 벽 높은 중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꿈사다리 진로캠프'를 진행했다. 지금도 방학마다 대학생멘토가 마을에 찾아와 숙식하며 아이들과 진로에 관한 모든 것을 나눈다.

반딧불이 미술제가 '골목예술제'가 되고 마을 축제와 결합해 '송악놀장'이 됐다. 아빠들의 장학금 마련 행사도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특히 송악놀장은 매년 3번씩 열리는 정기 마을축제로 승화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마을이 움직이는 마을 
 

아이들의 무대 송악면 마을의 아이들은 무대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아이들의 무대가 생기면 옆집 아줌마와도 건넛집 할아버지와도 함께 무대에서 흥겨움을 발산한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마을, 송악면이 그러했다. ⓒ 노준희

 
이밖에도 송악마을 이야기는 샘 솟듯 많다. 주민들 노력으로 주민공유공간 '해유'가 생겼고, 아이들이 주축이 된 다양한 프로그램과 마을 어르신 자서전 쓰기 등 송악마을이 함께 가꿔온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오랜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마을주민들이 마을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생각으로 관심과 사랑을 표현했고 학교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소박한 희망을 실현하고 있다.

송악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도움(24)씨는 다시 마을로 들어와 일자리를 가졌다.
"어릴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환경이 마을 어른들의 수고와 노력이 오래도록 들어간 걸 이제야 알았어요. 저는 참 좋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것 같아요."

마을주민 김현미씨도 송악마을에 사는 것이 진심으로 행복하다.

"자연이 좋아 들어와 살았는데 이 마을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었어요. 칭찬의 힘을 받으며 나의 재능을 나누고 봉사할 수 있게 했지요. 마을이 나를 꺼내줬어요."

처음에는 한두 사람의 의지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지만 동의하고 협력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지속할 순 없었을 것이다. 또 의식 없이 주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된 마을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송악마을은 마을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아이들을 잘 보살피기 위해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인식하면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이 형성되어 변화된 마을이다.

송남초 거산초 혁신학교 지정에 이어 최근 송남중도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김태곤 아산교육지원청 장학사는 "송악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주도에서 학교주도로, 마을과 학교 공동체로 성장했으며 교육청이 주도한 사례가 아니다. 송악 마을은 오래전부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마을이 나서서 움직였던 마을교육공동체다. 그곳에서 나는 교사로, 지금은 마을 교사로 사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송악면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 주민들이 만든 다양한 함께함 프로그램을 통해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정말 알아야 할 것을 배워나간다.

더불어 사는 것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자연스럽게 체화하며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모두 함께 고루 소통하는 마을, 이곳에서 아이들은 여전한 마을주민들의 관심과 이해 속에서 세상을 향한 힘찬 날갯짓을 펼쳐나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천안아산신문에도 실립니다.
#송악마을교육공동체 #송남초등학교 #거산초등학교 #송남중학교 #충남교육청마을교육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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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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