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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 돌아온 첫사랑에 흔들린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넘버링 무비 135] 영화 <아사코> 사랑에 대한 다면적인 화두를 던지다

19.03.25 13:57최종업데이트19.03.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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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아사코> 메인포스터 ⓒ 이수C&E


01.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의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은 어떤 것일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에서부터 자의든 타의든 그 사랑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까지, 그 어떤 지점도 소홀해도 좋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집요하게 딱 한 부분만 짚어내 보라고 한다면 어떨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아사코>는 설레지만 불안했던 어린 날의 사랑이 불완전한 채로 끝나고, 그 사랑과 가장 닮은 모습으로 나타난 새로운 사랑 앞에 선 주인공 아사코(카라타 에리카)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아사코에게 첫 사랑은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였다. 주변 공간과 어울리지 못하고 일부러 잡음을 일으키는 듯 보이던 그의 자유분방함이 그녀는 마음에 들었다. 한번도 상상해 본 일이 없는 종류의 사랑을 그는 보여줬다. 물론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녀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것 역시 그의 그런 자유로움일 것이라고는. 그는 조금 늦더라도 꼭 그녀의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아사코의 곁을 떠나버린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바쿠와 똑 같은 외모의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처음 만나게 된 아사코가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처럼, 그 시절의 바쿠가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르니. 물론, 그는 바쿠가 아니었다. 그는 그를 조금 많이 닮은 료헤이였을 뿐이었다.
 

영화 <아사코> 스틸컷 ⓒ 이수C&E


02.

언뜻 생각해보면, 언젠가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 같다. 첫사랑의 감정을 잊지 못한 주인공이 그와 닮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과 엮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특정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식의 구조 말이다. 여기에 일본 멜로 영화 특유의 잔잔함과 고요함이 결합하면서 서사는 바깥으로 펼쳐지기보다 갈수록 내부를 파고드는 경향을 보인다. 대부분의 지점에서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역시 주인공인 아사코. 그녀의 심리 변화는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료헤이라는 인물의 심리를 좌우하는 트리거이자,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스스로에 대한 극적인 변화를 통해 이 작품의 전체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녀의 외부에서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서사를 쌓아나가는 료헤이의 이야기도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다.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간 쌓아온 내면의 불안이 터져 나오기는 하지만, 그의 불안이 외부로 발현되는 순간에야 그 동안 그가 아사코에게 주었던 믿음의 실체가 더욱 또렷해지는 부분이 있다. 믿음이 깨진 시점에서 료헤이가 보이는 실망감과 절망감과는 달리, 믿음을 주는 시점에서는 조금도 유난스럽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아사코 본인은 자신과 바쿠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료헤이로부터 완벽히 분리해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사를 쌓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대사'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오직 '행동', 그것도 일상적인 행동들로 자신의 서사를 쌓아나간 료헤이라는 인물의 모습은 곱씹을 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다시 아사코에게로 돌아와서, 이 작품은 아사코의 서사를 다섯 부분으로 해체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바쿠와의 서사 속에 존재하는 아사코, 료헤이와의 서사 속에 존재하지만 바쿠의 그늘 아래에 있는 아사코, 료헤이와의 서사 속에서 료헤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아사코, 다시 돌아온 바쿠에 흔들리는 아사코, 마지막으로 료헤이에게 다시 돌아오는 아사코까지. 동일한 인물이지만 그 배경과 심리가 변함에 따라 각각의 지점에서 보여지는 미세한 차이가 흥미롭다. 특히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수동적이기만 한 아사코가 스스로 적극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세 군데 있는데, 이 지점을 통해 사랑의 속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료헤이를 떠났던 아사코가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을 시작으로 그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된다.

03.

이렇게 각자 떼어 놓으면 부정한 사랑을 저지른 이와 그 사랑을 인내하는 이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작품. 이 작품에도 후반부를 향하며 변화하는 지점들이 발생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바쿠의 존재가 암초가 되면서, 아사코와 료헤이가 쌓아가고 있는 것이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기보다 하나의 관계였다는 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호감(好感)이라는 것이 좋은 감정만을 의미한다면, 관계 속에서는 호감뿐만이 아니라 그 외의 범주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사람이 형성해가는 관계라는 것이 무결한 것에서 시작해 완전히 더럽혀진 상태로 끝나는 종류의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의 잘못이나 죄악을 지켜보면서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상태로 맺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료헤이의 대사가 그 모든 지점을 갈무리한다.

"저 강은 참 더러워 보이지만 아름다워."
 

영화 <아사코> 스틸컷 ⓒ 이수C&E


04.

마야(야마시타 리오 역)의 연극을 보러 온 료헤이가 지진을 만나게 되는 플롯은 그 과정이 함축적으로 묘사된 중요한 지점이다. 그 시점에 료헤이가 연극을 보러 온 까닭은 사실 아사코를 만나기 위함이기 때문에. 그를 만나게 될까 봐 그녀는 이미 다음날로 티켓을 변경한 후지만 그는 그녀의 곁을 한결같이 맴돈다. 그리고 지진으로 인해 연극은 상영되기도 전에 중단되고 만다. 지금 무대 위에서 상영될 연극이 두 사람의 인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지진으로 인해 그 연극이 중단되고 만 것은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 상황 뒤에 넘어진 간판을 직접 세우는 료헤이의 모습은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게 한다. 홀로 남겨진 아사코를 그가 결코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료헤이와 아사코는 거리에서 만나 서로를 힘껏 끌어안는다. 이처럼 액자식 구성의 형태 속에 하나의 겹을 더 만들어 두 사람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은 관객들의 무의식 속에서 일종의 완충 작용을 하며 극을 유연하게 만든다.

05.

실존과 감정의 분리 혹은 어느 한 쪽에 대한 완벽한 몰입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왔다. 특히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뜨거운 감정 앞에서 타인으로 인해 개인의 내면에 발화하는 존재에 대한 물음은 더욱 그랬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아사코>가 들여다보고자 하는 지점은 꽤 명확한 편이지만, 하나의 관계를 두 개의 분절된 이야기로 나누어 인간의 심리를 다면적으로 관찰해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시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좋은 시절의 감정만이 우리의 관계를 연결하는 매개는 아니라는 것 역시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무비 아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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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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