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에서 소 키우기, 의미 없는 일일까

[그림책이 건네는 세상살이 이야기56] 생명, 희망, 존재의 가치 '희망의 목장'

등록 2019.03.26 15:24수정 2019.03.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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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이 단어는 마치 먹구름 뒤로 빼꼼히 머리를 내민 햇살 같아서 곧 좋은 소식을 전해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때로 '희망'이란 말은 그저 잡을 수 없는 무지개같이 공허한 목소리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신비로운 단어 앞에서 나는 종종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희망의 목장 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해와나무 ⓒ 최혜정

 
<희망의 목장>(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해와나무)이라는 그림책은 '희망'이라는 단어보다 나에게 더 많은 고민을 던져 준 그림책입니다. 무엇을 희망이라 불러야 하는지, 희망은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상념을 던져주었습니다.

이야기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에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덮치고 후쿠시마 원전이 파괴된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담담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이야기의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마을에 남았습니다. 물론 방사능이 두려웠지요. 하지만 떠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소치기니까요."

그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마을에서 330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소를 키우던 일은 갑자기 닥친 불행 때문에 순식간에 '과거형'이 되어야 했지만, 그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합니다.


정부에서 마을을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소를 살처분하라는 명령도 떨어집니다.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마을을 떠나며 자식처럼 키우던 소들도 살처분합니다.

하지만 그는 소를 치며 마을에 남기로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도 눈물을 머금고 소를 죽이는데 당신만 왜 소를 살려두느냐고 비난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습니다.

'의미 없는 일일까? 어리석은 일일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나는 소치기다.'
 

<희망의 목장> 소 살처분 장면 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해와나무 ⓒ 최혜정


생명

팔 수 없는 소를 치는 그는 소를 먹이기 위해 돈은 자꾸 들어가는데 돈은 못 벌고, 영양가 있는 것을 못 먹여 소들이 자꾸 죽어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고 이후에 330마리였던 소들이 360마리로 늘어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웃 농장의 소들이 들어오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의 농장은 '희망의 농장'이라 이름 붙여집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소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본다고 합니다. '절망'만이 내려앉은 땅에서 희망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 저기에서 도와주는 손길 때문일까요? 여전히 건재한 농장 덕분에 방사능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서일까요?


희망은 오직 '생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디에서나 '희망'을 말합니다. '생명'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인 '현재'와 살아갈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생명이 있는 것은 누구나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삶도 아주 '희망'적입니다.
 

<희망의 목장> 후원자들이 몰려드는 장명 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해와나무 ⓒ 최혜정


희망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아야 겠습니다. 소치기는 열심히 소들을 먹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생각합니다. '희망이란 게 있기나 한 걸까?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걸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갑니다.

그가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힘은 '희망'에 있습니다. 그 희망은 '생명'에 있구요. 그렇다면 '희망'이란 결국 원하는 결과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얘들아, 많이 먹고 똥 누거라. 그래도 돼. 그게 너의 일이니까. 내일도 모레도 밥 줄게. 나는 소치기니까.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있을 거란다.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어."
 
 

<희망의 목장> 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해와나무 ⓒ 최혜정

    
존재의 가치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인가를 향해 달립니다. '희망'을 좇는다고 말하지만 달려간 그 곳에 과연 '희망'이 존재하기는 한 걸까요? 돈을 좇고, 권력을 좇고, 명예를 좇고, 환락을 좇고... 하지만 연일 뉴스를 시끌벅적하게 하는 사건들 모두 그들이 달려가 잡으려 했던 그 어떤 것에도 '희망'은 없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자리가 나보다 빛나 보이거나 누군가의 자리가 내 자리보다 크게 보이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고,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그저 내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존재 가치는 유일하고 존귀합니다. 내가 선 이 자리는 '희망의 목장'입니다.
#희망의 목장 #모리 에토 #해와나무 #후쿠시마원전 #소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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