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이 '파묘'하자는 이승만... 우리 학교엔 왜 동상까지

[기고] 심산 김창숙이 '독부'라 칭한 대통령... 배재대에선 두 차례 철거 후에도 다시 들어서

등록 2019.03.26 16:56수정 2019.03.27 09:52
46
원고료로 응원
* 이 글을 쓴 홍경표님은 이승만동상철거공동행동 집행위원장입니다.[편집자말]
 
a

2018년 5월 3일 '이승만 동상철거 공동행동' 회원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에 죄상을 적은 종이를 붙이고 있다. ⓒ 공동행동


대전지역 5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승만동상철거공동행동'은 배재대학교 교정에 있는 이승만 동상을 학교 측이 자진 철거할 것을 지난 2018년 4월 19일부터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 동상은 최초 설치 후 두 차례나 철거됐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다시 이 학교 교정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학이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한다고 생각한다면 배제대 측도 마땅히 대전시와 대전시민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이승만을 위하여 그의 동상을 대학의 교정에 버젓이 세워두는 것은 우리 지역의 공공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대전은 대전고와 대전상고 학생 1천6백여 명이 1960년 3월 8일에 이승만 독재 정권에 조직적으로 항거한 역사적인 도시다. 국가도 이를 인정하여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 '3. 8. 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에 앞서 대전시의회도 오광영 의원 대표발의로 '반민족·반헌법행위자 단죄 및 국립현충원 묘소 이장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여 이승만 동상의 철거, 김창룡 묘 현충원에서의 이장 등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 대학 교정에 이승만의 동상을, 졸업생이라는 이유(이승만은 배제학당을 졸업했다)로 세워두는 것은 대학 측의 자기부정이며 반지역적 정서로 지역 주민의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업적보다 과오가 더 많은 정치가

이승만은 학생이 중심이 된 4.19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외국으로 망명한 후 사망할 때까지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승만의 전 생애(1875. 3.26~1965. 7.19)를 살펴보면, 많은 측면에서 본받을 만한 업적보다는 잘못 저지른 과오가 훨씬 많다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우선,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절정을 이루던 자유당 말기에 유림 출신의 독립운동가였던 심산 김창숙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 촉구 공개장'에서 '독부(獨夫) 이승만'이란 말로 그의 아픈 곳을 지적하였다. 독선적이고 독재적인 그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말이다.

독부란 "민심을 잃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곳이 없게 된 외로운 남자"라는 의미다. 이승만은 남의 말에 귀 귀울이기보다는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인물이다. 권력 유지를 위해 시도한 여러 차례 헌법 개정이 이를 증명한다.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사령관이 만나는 모습 ⓒ 국가기록원

 
1960년 이후 국내에서 이승만 비판의 선봉에 섰던 언론인이자 사학자인 송건호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해 집권 기간 아래와 같이 3대 '과오'를 범했다고 하였다.


"이승만은 여러 일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가 범한 많은 과오 중에서도 민족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① 외세의 국가이익 추구에 편승하여 이 나라를 분단하는 데 앞장섰고 ② 일제시대에 민족을 배반한 친일 역적들을 싸고돌아 민족정기를 흐려놓은 점과 ③ 12년의 통치 기간에 이 나라를 자주 아닌 열강 예속으로 전락시켰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또 "이승만의 집권으로부터 직간접으로 혜택받아 영화를 누린 층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오늘날 한반도가 겪고 있는 민족의 수난은 다름아닌 이승만의 지도노선에 일단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한 김삼웅은 국내외 학계에서 축적된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이승만의 '죄악상'을 ① 분단의 책임 ② 친일파 중용 ③ 한국전쟁 유발 내지 예방 실패 ④ 독립운동가 탄압 ⑤ 헌정 유린 ⑥ 정치군인 육성 ⑦ 부정부패 ⑧ 매판경제 ⑨ 민간인 학살 ⑩ 극우 반동 ⑪ 언론 탄압 ⑫ 정치 보복 등 12개 조목으로 나누어 지적한 바 있다.

이같은 이승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일부 정치세력들은 소위 '건국절' 논란을 통하여 이승만을 국부라고 치켜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였고, 이 주장은 아직도 극우보수 세력들이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전문에 대한민국의 법통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음과 이승만 독재정권에 항거한 4.19 혁명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승만 동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요구이며, 우리 헌법 정신에 충실한 정의로운 행동이다.

이승만의 행적 중에서 가장 중대한 범죄행위로는 인권과 관련된 '생명 경시'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권력 쟁취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불법적으로 살해한 최종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다.
 

1946년 제27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김구와 이승만 김구와 이승만이 해방 이후 처음 맞이한 '3.1국경절 제27회 기념식'(보신각 앞,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주최)에서 연단에 나란히 앉아 있다. ⓒ 국가기록원


이승만은 해방 정국에서 소위 백색테러를 배후 조종해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많은 민족지도자를 암살했다. 또 남한 지역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4.3 제주항쟁을 군대와 서북청년단을 앞세워 강제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3만 명 이상의 제주도민을 학살했다.

더구나 한국전쟁 기간에는 국민보도연맹원을 비롯한 1백만 명 이상의 민간인을 군경 등 국가 공권력을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살해했다. 대전 지역 산내 골령골에서 국군 특무대와 경찰 등이 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자행한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거창을 비롯한 지리산 인근 지역은 물론 울산, 마산 등 비점령 지역에서조차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지식인과 민족세력이 희생되어 엄청난 인적 손실을 가져왔다.

아직 이승만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

이승만이 저지른 이러한 인권유린은 그의 모든 공을 다 더한다 하더라도 부족하다는 의견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승만의 범죄행위는 대한민국에 씻을 수 없는 반민족적·반민주적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연좌제 등 아픈 흔적으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의 주류사회는 매판자본의 후손들이 '재벌'이라는 이름으로 상상할 수 없는 갑질을 이어오고 있으며, 친일 반민족 세력들은 틈만 나면 외세에 기생해 개인의 영달과 잇속을 챙기기에 바쁘다. 정치·사법·행정 및 언론 권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이들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최근 도올 김용옥이 "이승만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한 것과 관련, 조선일보 등을 필두로 김용옥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여기에다 재향군인회는 "김용옥 발언은 반국가적 범죄행위"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한미동맹을 훼손했다"며 규탄 성명을 내기도 했다. 또 3월 26일 오늘 이승만 탄신일을 맞아 탄신기념식을 열고 2017년부터 작업해온 이승만 전집을 공개한다고 한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모든 적폐를 가능케 한 이승만 정권의 죄악을 청산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 첫 번째 과제는 우리 사회에 친일파를 득세케 하였던 이승만의 모든 반민족적이며 반민주적이었던 정책적 과오와 이승만 개인의 반인권적 범죄행위를 단죄하고 청산하는 것이다.

그럴 때 대한민국의 민족정기는 바로 서고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 건설의 첫걸음마를 뗄 수 있다. 배재대학교 교정의 이승만 동상 철거는 그 첫걸음마의 상징적 의미이다.
#이승만
댓글4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