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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보면 공개처형? 북한의 변화가 심상찮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다룬 영화들 북한서 인기, 왜일까?

19.03.28 10:39최종업데이트19.03.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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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 쇼박스

 
"<택시운전사>는 특별히 단속됩니다. '뇌물도 통하지 않고, 무조건 교화소(교도소)에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 저는 보지 않았지만, 1월경부터 대단히 재미있는 영화라는 평을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영화라지요?"

지난 20일 일본 매체 <아시아프레스> 발로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다. 이 매체는 함경북도 무산군에 거주하는 취재협력자의 말을 인용해 이와 같이 전했다. '<북한내부> 대히트작 <택시운전사> 확산 파문'이라는 제목의 해당 기사는 지난 3월 초, 17세 소년이 <택시운전사>를 친구에게 빌려준 것이 들켜 검거됐으며, 다른 한국 드라마 시청 사건과 달리 당국의 수사와 적발이 무척 엄중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기사는 앞서 취재협력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 드라마를 세 편 보면 징역 1년이라는 내부 규정이 있다고 하고, 실제 많은 사람이 교화소에 보내지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민들의 진술에 따르면, 중국 드라마·영화·음악 접촉의 경우 처벌 수위가 제일 낮고, 할리우드 영화나 한류 컨텐츠는 처벌 수위가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뇌물'을 주면 쉽게 무마돼 풀려나기도 한다. 하지만 소위 '시범' 케이스에 걸리면 '공개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 

<아시아프레스>는 이례적으로 <택시운전사>를 단속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주제로 한 영화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독재 타도, 민주화를 요구하며 싸우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비밀리에 젊은 세대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것에 당국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보안서(경찰), 보위국(비밀경찰)을 동원한 철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관객은 다른 것을 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북한 주민의식 조사 통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지가 평균 80%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 통일평화연구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북한 주민의식 변화 조사 결과. 북한에 한류 컨텐츠가 유입된 것은 지난 2004년께부터라고 알려졌다. ⓒ 통일평화연구원

   

남한 문화 유통경로 중 지인을 통한 접촉도가 높은 것은 믿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등을 통해 컨텐츠를 돌려 보면 발각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면 장마당에서 구입하면 고발당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 통일평화연구원

 
지난 2017년 8월 개봉해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택시운전사>는 북한에도 잘 알려져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뤘다(표 대남인지도 참고). 88서울올림픽, 4.19혁명 등 한국사에 여러 굵직한 사건이 많지만, 1980년 5월에 일어난 광주항쟁이 개성공단을 제외하면, 북한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3개의 표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해마다 바로 전 해에 탈북한 탈북민들을 면접조사한 결과를 집계·발표한 것이다. 바로 전 해에 탈북한 탈북민은 일반적으로 숫자가 적고, 학술기관 입장에선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최신의 북한 정보와 생생한 북한의 사회변동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일련의 설문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많은 북한 주민이 이웃이나 친구를 통해 암암리에 한류 컨텐츠를 접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남한의 대중문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표 남한문화 경험 정도에 따르면 '전혀 없음'에 대한 응답률이 2017년 13.6%에서 2018년 18.4%로 소폭 상승했다. 남한 문화를 '주변 사람들에게서 구해서 접했다'는 응답이 2017년 53.8%에서 2018년 61.6%로 소폭 증가한 것도 확인된다. 이로 볼 때 북한 당국의 통제가 강화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자는 남한에서도 크게 히트한 이 영화를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보고, 무엇을 느꼈을지 몹시 궁금하다. 보통 북한 사람들 혹은 탈북민은 남한 사람이 보는 것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본다고 한다. 그들은 등장인물이 어떤 집에 살고, 무엇을 먹고, 걸쳤는지를 유심히 본다. 남한의 거리를 보고, 그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와 도로 상태를 보고, 도시의 빌딩숲을 본다. 이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서도 이런 것을 봤을 것이다. 이에 더해 군사정권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사람들이 싸우고, 피흘리는 것을 봤을 것이다. 

인권과 경제 발전의 상관 관계
 

<택시운전사> 스틸컷. ⓒ 쇼박스

 
또 사적 소유와 이동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자기들과는 달리 김만섭(송강호)이 개인 소유의 택시에 '외국인'을 태우고, 경찰이 발급한 '여행증명서'도 없이 서울을 벗어나 멀리 떨어진 광주로 가는 여정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모여 있고 저마다 의견도 피력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군대가 물러가고 광주가 자유로운 '해방구'가 된 것도 목격했다.

하지만 남한 정권도 과거에 매우 잔혹했고, 억압적이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는 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점, 자유와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하고 쟁취하는 것이라는 점도 전달됐길 바란다.

남한의 어떤 이들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취하고 경제가 발전하면, 북한 인권 상태도 덩달아 개선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제사회나 남한의 시민사회가 북한에 인권을 개선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효과가 적고 긴장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 개선과 경제 발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엔 어려운 것 같다. 과거 남한의 경험을 볼 때,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은 모두 시민의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권력자의 선의나 선물, 인류의 발전단계에 따라 당연히 얻어진 열매가 아니었다. 이 영화 <택시운전사>가 그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북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유엔(UN)에서 수십년간 일하고 정년퇴직한 한 인사는 1980년대 초부터 아프리카나 남미 등지에서 북한 외교관을 가끔 만났다고 한다. 당시는 남한도 해외 여행 자유화 전이었고, 여권을 갖고 있는 국민도 거의 없었다. 이 인사는 유엔에서 일한 덕분에 해외에 상주했고, 그 와중에 북한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북한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일성 숭배를 비판하면 화를 내고 상종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북한 외교관과 자주 만나 친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다음 근무지로 가기 전 헤어질 때 넌지시 "우리는 군사정권 몰아내고 이렇게 잘산다. 너희도 들고 일어나 몰아내라"라고 말하곤 했다. 북한 외교관은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고 한다. 

점점 닫히고 있는 북한의 문... 우리 과제는?
 

<택시운전사> 스틸컷. ⓒ 쇼박스

 
이런 백마디 말보다 이야기로 꾸며진 영화 혹은 드라마의 '호소력'과 '파급력'이 더 크다. 그래서 더 많은 북한 사람이 남한과 외부세계의 모습을 담은 컨텐츠를 접촉하길 바란다. 지난 2014년에 국내에서 방영된 KBS 드라마 <정도전>도 당시 북한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모순 가득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개국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계로 분한 유동근이 북한 사투리로 연기하는 모습도 인기 요인이 됐을 것이다. 또 의외로 MBN에서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인기도 높다고 한다.

스탈린(1878~1953) 사후 소련에서 외국 방송을 듣는 것은 완전히 합법이었다. 동독 주민들도 서독 방송을 자유롭게 시청했다. <택시운전사>에 외신기자 힌츠페터로 나온 토마스 크레취만도 동독을 탈출해 서독으로 간 난민이었다. 어릴 때부터 서독의 문물을 접한 그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전체주의의 통제를 피해 서독으로 갔다. 

그러나 21세기에 북한만 외부 세계와 단절되고 고립돼 있다. <아시아프레스>는 북한 내부의 취재협력자와 휴대전화로 소통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 보위부가 국경 전역을 순찰하며 전화신호를 탐지하고, 강력한 방해 전파를 발사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북중국경 통제가 엄격해져 USB와 SD카드 등의 반입이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전해진다. 예전엔 국경을 건너는 데 100위안의 뇌물이면 충분했지만 최근엔 3000위안을 줘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남한 드라마를 '이색적 퇴폐 문화'로 지목하고 엄벌하면서 이것을 팔거나 보는 사람이 격감했다. 

이런 것을 보면, 비핵화를 하면 국제사회가 북한의 경제개발을 도울 것이며 풍요로운 미래로 통할 수 있다고 설득해온 트럼프의 발언이 얼마나 북한 지도부의 마음에 가닿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북한 지도부나 몇몇 외교관의 입이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북한의 행보를 예측해, 현실의 눈으로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다.
택시운전사 송강호 북중국경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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