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인물 많이 난 2200년 된 전통마을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비 세워진 전남 영암 구림마을

등록 2019.03.28 11:12수정 2019.03.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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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 구림마을에서 만나는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를 토대로 세웠다. 연주 현씨 사직공파의 종가 앞이다. ⓒ 이돈삼


꽃샘추위가 물러났다. 쌀쌀하던 아침 기온도 누그러졌다. 완연한 봄이다. 한동안 움츠러들었던 봄꽃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 매화, 산수유, 동백, 목련에 이어 벚꽃이 활짝 피고 있다. 까칠하던 가로수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황량하던 텃밭도 초록의 옷으로 바꿔 입고 있다.

다사로운 봄의 기운이 골목까지 넘실댄다. 우리 전통을 만날 수 있는 고샅으로 간다. 국립공원 월출산이 품은 전라남도 영암 구림마을이다. 2200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의 한옥마을이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고목과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택이 즐비하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전통사회의 흔적이 배어 있다. 
 

구림마을의 돌담과 어우러진 동백꽃. 새봄을 맞아 마을 곳곳에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고 있다. ⓒ 이돈삼

   

구림대동계의 모임 자리였던 회사정. 솔숲과 어우러진 회사정은 남도의 많은 누정 가운데서도 풍광 좋다고 몇 손가락에 꼽힌다. ⓒ 이돈삼

 
전통사회의 흔적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회사정(會社亭)이다. 남도에 있는 수많은 누정 가운데서도 풍광 좋다고 몇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 향약을 실천할 목적으로 조직된 구림대동계의 모임 자리였다. 3·1운동 때엔 마을사람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른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 한옥도 즐비하다. 전체의 3분의 1 남짓이 한옥이다. 그 집에 투박하게 쌓아올린 돌담도 다소곳하다. 고샅을 따라 하늘거리며 오랜 과거와 현재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왕인박사의 초상. 시경 등 다섯 경서에 능통해 오경박사에 등용된 왕인은 응신천황의 초청으로 일본에 건너가 백제문화의 진수를 알렸다. ⓒ 이돈삼

   

월출산을 배경으로 경서를 들고 서 있는 왕인박사의 동상. 왕인박사유적지는 그가 태어난 전남 영암에 있다. ⓒ 이돈삼

 
큰 인물도 많이 난 마을이다. 백제 왕인박사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왕인박사는 8살 때 월출산 기슭의 문산재에 들어가서 유학과 경전을 익혔다. 〈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 등 다섯 경서에 능통해 오경박사에 등용됐다. 405년엔 응신천황의 초청으로 일본에 건너가 백제문화를 알렸다. 일본 아스카문화의 초석을 닦았다.

왕인박사의 흔적을 왕인박사유적지에서 만난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동상이 서 있고, 전시관이 있다. 성천은 왕인이 마신 샘물이다. 그가 책을 보관해두고 공부했다는 책굴도 있다. 왕인과 그의 제자들이 모여 공부한 문산재도 있다.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돌에 새겼다는 왕인의 석인상도 있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갈 때 배를 탄 상대포도 복원돼 있다. 
 

도선국사와 최지몽의 흔적을 찾아 국사암과 국암사로 가는 길. 고샅을 따라 하늘거리며 과거와 현재를 함께 만날 수 있다. ⓒ 이돈삼

   

풍수지리의 시조인 도선국사의 전설이 서려 있는 국사암. 오른편의 기와지붕의 사당은 최지몽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국암사다. ⓒ 이돈삼

 
풍수지리의 시조 도선국사도 그 마을 출신이다. 국사의 탄생 설화도 전해진다. 빨래를 하던 도선의 어머니 최씨가 물에 떠내려 온 푸른 외 하나를 건져먹었다. 그날 이후 태기를 느꼈고, 아이를 낳았다.

처녀의 몸이던 그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을의 큰 바위 위에다 아이를 가져다 버렸다. 며칠 뒤에 가서 보니, 비둘기들이 날개로 아이를 덮어 보호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도선이다. 구림(鳩林)의 지명 유래와 엮이는 얘기다. 설화 속의 바위가 국사암이다.

한석봉의 얘기도 전해진다.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가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한 곳도 이 마을이란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이 스승인 영계 신희남을 따라 영암으로 내려왔다. 마을에 있는 죽림정사에 머물며 글씨를 익혔다. 어머니가 떡장사를 한 곳은 가까운 독천시장이다. 마을에 있는 육우당(六友堂) 편액이 그의 글씨다.

고려 왕건의 책사였던 최지몽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왕건으로부터 닭과 오리가 한 둥지에 있는 꿈 이야기를 듣고, 삼한통일로 해몽을 한 인물이다. 고려 태조 때부터 성종 대까지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그를 배향하고 있는 국암사가 국사암 바로 옆에 있다. 
 

대숲 사이로 보이는 죽림정. 연주 현씨 사직공파의 종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가 나온 집이다. ⓒ 이돈삼

   

연주 현씨 종가 앞에서 두 그루의 팽나무 고목과 함께 어우러진 '약무호남 시무국가' 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를 토대로 세웠다. ⓒ 이돈삼

 
이순신 장군 이야기도 전해진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얘기다. 국사암 앞에 죽림정이 있다. 팽나무 고목 두 그루가 지키고 선 집의 누정이다. 연주 현씨 사직공파의 종가에 속한다. 충무공 이순신이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가 나온 집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계사년(1593년) 7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라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집 앞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비가 세워져 있는 연유다. 
 

조각작품 사이로 본 영암도기박물관 전경. 녹갈색과 흑갈색의 유약을 입힌 구림도기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 이돈삼

   

구림마을에 있는 하정웅미술관. 다음 전시 준비를 위해 잠시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앞마당에 설치된 조각작품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성을 키워준다. ⓒ 이돈삼

 
영암도기박물관도 마을에 있다. 구림도기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녹갈색과 흑갈색의 유약을 입힌 첫 시유도기가 구림도기이다. 특별전으로 영암 출신 조성남 작가의 도자작품 전시도 하고 있다. 그 옆에 하정웅미술관도 있다. 앞마당에 설치된 조각작품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성을 키워준다.

구림마을은 벚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장이기도 하다. 남도를 대표하는 영암벚꽃길의 으뜸이다. 꽃축제는 4월 4일부터 나흘 동안 열린다. 축제와 상관없이 벚꽃 나들이도 오지다. 날씨 좋은 날은 꽃이 화사해서 좋다. 비가 내리면 내린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멋스럽다. 밤에는 불빛 아래로 비치는 꽃의 화사함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황홀하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복원된 상대포.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갈 때 배를 탄 포구다. 오래 전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것을 되살렸다. ⓒ 이돈삼

 
#구림마을 #약무호남 시무국가 #이순신 #왕인박사 #도선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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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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