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사태의 핵심, 각자도생 솔선수범

[주장] 한국 국민 다수의 역린을 '청와대의 입'이 건드렸다

등록 2019.03.29 15:49수정 2019.03.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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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5억7천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흑석동 복합건물. ⓒ 연합뉴스

 
이해찬 대표는 민주당이 20년 이상 장기집권해야 한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이에 부합하는 롤모델은 타게 에를란데르.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총리로서 23년이나 연임에 성공했으며 68세가 된 1969년에 자진하여 퇴임하고 나서야 그의 장기집권이 종료되었다. 총리에서 물러난 이후 기거할 집 한 칸이 없다는 게 알려지자 모금을 통해 거처가 마련되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더욱 희한한 점은 에를란데르의 보좌관으로 본격 정치 무대에 올랐던 올로프 팔메다. 그는 스웨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한 부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일찍이 사민당을 택하고 정치에 투신했다. 한국으로 치면 정주영이나 이건희의 아들이 젊은 시절 정의당에 들어가고 장관 등을 역임한 이후 집권당의 수반까지 역임했던 셈. '집도 절도 없던' 에를란데르와 그가 발탁한 대부호 팔메의 조합은 기괴하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부와 재산은 그 자체로는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을 에를란데르와 팔메가 잘 보여준다. 경제적 지위가 극과 극에 있었던 이 둘은 현재에도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최소 수억대의 시세 차익이 확실시되는 서울의 재개발지구에 25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던 김 대변인은 문제가 불거진 지 불과 하루 만에 아내가 자신 모르게 한 일이었다는 말을 전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여전히 찝찝함을 남기는 해명이지만, 사안의 곁가지이니 사퇴의 변에 대한 논박은 이 정도로 넘어간다.

아내의 결정이었든 부부의 결정이었든 개인적으로 이런 부동산 구입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싶지 않다.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하나 빚에 대한 리스크도 져야 하는 일이고, 아무리 공직자라고 한들 불법만 없었다면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이나 강조해오던 관점들을 생각하면 고운 눈길이 가진 않는다.

김의겸 사태는 무엇을 남겼는가. 정권과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현대 한국과 집


기이한 한 쌍, 에를란데르와 팔메는 주거 정책 면에서도 스웨덴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이다. 에를란데르의 정치 인생 말기인 1965년, 스웨덴 국회는 심각한 주택 부족을 해결하고자 10년 이내에 10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는 '밀리언 프로그램'을 의결한다. 이는 에를란데르의 뒤를 이은 팔메의 집권기에도 연속되었다.

1970년 스웨덴의 인구가 800만 명이었으므로 이 당시 100만 호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현재의 한국으로 치면 400만 호 이상의 주택을 건설하는 것과 동일하다. 노태우 정권기의 200만 호 주택 건설과도 비슷한 규모이다.

에를란데르와 팔메는 이 블록버스터급 주택 토건 정책을 위해 건설 비용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공금(ATP기금)을 통한 대출(국민연금 기금으로부터의 대출), 저금리 보장, 단독주택 보유자를 위한 대출이자 세금 감면 등 각종 주택공급 지원 정책을 시행했다. 이 시기 건설된 주택은 현재 스웨덴 주택의 약 26%를 차지할 만큼 대단위였고 역사적으로도 의의가 깊다.

얼마 전 썼던 글 '집값 상승이라는 맥거핀'에서 확인하였듯 현재 한국은 집이 매우 부족한 나라이다. 1000명당 주택수를 통해 스웨덴과 비교하자면 2015년 기준 스웨덴이 476호, 2017년 기준 한국이 395호로 스웨덴만큼의 주택을 한국이 구비하려면 약 400만 호의 집이 더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스웨덴보다 질이 나쁜 주택이 훨씬 많기에 400만 호도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는 집이 부족함에도 문재인 정부는 국제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금융 규제 등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펼침으로써 주택공급을 억눌렀을 뿐 아니라, 공급정책이 부실하다는 비판에 대응한다며 고작 30만 호의 공급계획을 내놓았다. 즉, 문재인 정부의 주거 정책은 기초적인 통계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다.

김의겸 대변인의 객관적 위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처럼 10억 원을 은행에서 대출받고 1억 원을 친척에게 빌려오고 14억 원을 현금으로 당겨서 25억 원짜리 상가 건물을 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인해 어지간한 중산층도 내 집 마련이 여의치 않아졌다. 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수요 억제책, 선해하면 집값 관리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세입자로도 별 지장 없이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세입자에게, 특히 비전세 세입자에게 살가운 나라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집이 부족하기에 세입자의 주거 여건도 불리하다. 민간임대도 부족하고 공공임대는 더욱 부족하다. 민간임대에 대한 임대차 규제도 OECD 가운데 가장 느슨하고, 저소득층 세입자를 위한 주택수당은 OECD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투기꾼과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대출과 자가주택 수요를 화끈하게 억눌렀으면 세입자를 위한 정책을 화끈하게 펼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문재인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돈다발을 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10억 원대의 대출까지 받아서, 서울의 재개발지구에 수십억짜리 건물을 사들였으니, 비난이 빗발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김 대변인은 공무를 위해 제공되는 청와대 관사를 자신의 사적인 주택 자금을 대기 위한 용도로, 본의든 우연이든, 써먹었다. 비판받아 마땅한 특권적 일탈이다.

김 대변인의 언론인 시절 이력과 현재에 대한 해명도 많은 비판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예컨대, 김 대변인 본인은 (청와대와 무관하게) 어엿한 중산층이다. <한겨레>에서 30년 가까이 재직한 고참 기자면, 평균 이상의 소득이고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사는 데 전혀 문제없는 소득이다.

김 대변인의 부인은 중산층에서도 위쪽이다. 30년 넘게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면 말년에 이르러서는 한국 평균임금의 거의 두 배를 번다. OECD 교사들 가운데 눈에 띄게 높은 최고 수준의 벌이다. 15년 재직자 기준으로도 한국의 교원 급여는 OECD 최고 레벨이다.

부인의 퇴직금을 건물 구입에 투입했다고 하는데, 이를 무시했을 때 통상의 요즈음 장기 재직 퇴직자라면 약 300만 원의 연금을 매달 받을 수 있다(일반 대기업처럼 퇴직금과 연금이 별도인지 아니면 퇴직금을 받을 때 연금액이 깎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인이 받게 될, 또는 받을 수도 있었던 교원연금은 관련 연구자들이 OECD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고연금이다. 거의 한국의 평균임금에 육박하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높은 연금액인지 알 수 있다.

공적 연금의 보험료율이 높은 유럽 국가들은 보통 급여의 18% 내외가 연금보험료이며 한국의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과 비슷하고 국민연금보다는 두 배가량 높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장기 가입자라고 하여 평균임금에 약간 미달하는, 연금으로서는 매우 고액을 공적 연금으로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김의겸 대변인의 경우에는 국민연금에 장기 가입했을 테니 못해도 100만 원의 연금이 보장돼 있다. 결국 김 대변인의 가구는 부인이 퇴직하기 전에는 부인의 고소득에 힘입어 가구소득으로 상위 5% 안팎에 속했고, 부인이 연금을 100% 받는다고 하면 이 역시 가구 단위에서 상위 5% 안팎의 공적 연금을 수령한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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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이렇게 상위 중산층에 드는 청와대 대변인이 노후 대책으로 25억 원짜리 건물을 구입했다는 발언은 자못 고개를 가로젓게 한다. 호화 부유층은 아니어도 상당한 상위계층인 공직자 가구가, 그것도 넉넉한 연금이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굳이 건물주가 됨으로써 노후 준비를 하려 했다니, 개인의 자유이긴 하겠으나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김 대변인은 청와대를 나가면 '집도 절도 없는' 상태이고, 살면서 한 번도 내 집을 갖지 못했으며, 자기 나이에 또 전세를 살고 싶진 않아서 상가 건물을 매입했다고 말했다. 김의겸 대변인이 살던 집의 전세금은 4억 8천만 원이다. 3억 원이 넘는 전세는 전국의 전세 가운데 10.5%다. 결국 4억 8천짜리 전세는 김 대변인의 얼마 전 가구소득과 비슷하게 상위 5% 정도로 비싼 전셋집이다. 내 집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고가인 전세다. 4억 9천 5백만 원을 초과하는 주택가격은 전국에서 9.9%로, 여기에 비추어도 김 대변인의 전세는 상당한 고가이다.

"집도 절도 없는" 처지라든가, "결혼하고 30년 가까이 내 집이 없었다"는 등, 마치 자신이 사회 약자인듯 해명하는 김 대변인의 처세는 '객관적으로' 볼썽사납다. 14억 원을 현금으로 당기거나 10억 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면 굉장히 혜택받은 소수이지만, 김 대변인은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으니 그의 처신이 이런 쪽으로는 일관성이 있다.

김의겸 대변인이 <한겨레> 기자 시절 쓴 칼럼 중에는 지금과는 일관성이 어그러지는 내용이 있다. 2011년 칼럼이다.

"난 전셋값 대느라 헉헉거리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 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고, 난 애들 학원 보내기도 벅찬데 누구는 자식들을 외국어고니 미국 대학으로 보내고, 똑같이 일하는데도 내 봉급은 누구의 반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삶 등등.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는 '도대체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낳게 한다."

2011년의 김 기자가 2019년의 김 대변인을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동산이 야기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꼬집던 그가 시간이 흘러 공직자가 되고는 부동산으로 돈방석에 앉아 이제는 자신을 변호하고 있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문재인 정부의 형편없는 주거 정책과 잘 어울리는 김의겸 대변인을 보며 나야말로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싶어진다.

진정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길인가

김의겸 대변인은 장남으로서 청와대를 나가면 팔순 노모를 모실 계획이며 차후 재개발로 아파트와 상가가 할당되면 임대료 등의 수입도 얻고 노모를 부양할 넓은 집도 마련하고자 25억 원을 주고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 부부는 굳이 상가건물을 사지 않아도 (아마도 연금이 없거나 매우 적을) 노모를 모실 만큼의 자산과 연금이 있는 (또는 있었던) 이들이다. 그래서 저 해명이 좀 구차하긴 한데, 그보다도 자식이 노인을 부양해야만 하는 한국의 허약한 복지가 정말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다른 역대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입으로" 복지를 하는 정부이고, 한국의 경제력에 맞게 복지를 강화하기 위한 보편 증세는 불가함을 선언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김 대변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충분히 먹고살 만한 이들은 사적으로 부모를 부양할 수 있지만, 공적 차원에서 그 해결이 어려운 다수 국민은 그저 막막하다. 형편이 되는 이들만 각자도생으로 본인 및 부모의 노후를 챙기는 한국의 냉혹한 세태, 그 중심에는 김 대변인을 비롯한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의 '각자도생 솔선수범'이 있음을 이번 김 대변인의 부동산 매입과 해명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김의겸 대변인은 결국, 지난 1월 실언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사임했던 김현철 청와대 경제 보좌관을 연상시키듯, 빠른 타이밍에 사퇴했다. 이제는 전 대변인이라고 불러야 할 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물러난다고 해서 이번의 헛발질이 만회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 다수의 역린을 '청와대의 입'이 건드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 대변인의 행적에는 헬조선을 낳는 한국의 고질병들과 이 정부의 철학과 비전 없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미 집이 있는데 또 사거나, 아니면 시세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경우에 (본인은) 해당되지 않으므로" 투기가 아니라는 김 대변인의 해명은 사실 사소한 시빗거리다.

생겨울에 고생해가며 국민이 정권을 바꿔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노후 대비는 건물주가 되는 것임을 청와대 대변인이 몸소 보여주었다는 것, 아주 준수한 소득이나 연금이 있음에도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너무나 흔한 일이라는 것, 정권이 어디에 있든 이 땅에서는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 실로 절망스럽다.
덧붙이는 글 '밀리언 프로그램' 정책 내용은 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을 참조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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