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더라도 끝까지 말하는 페미니스트가 됩시다"

페미워커클럽 주최 토크콘서트 '포스트 #빨간약, 우린 어디에'

등록 2019.03.29 15:28수정 2019.03.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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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마포구 '팟빵홀'에서 페미워커클럽 주최의 토크콘서트 'B급 페미니스트 - 포스트 #빨간약, 우리 어디에'가 열렸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저는 이제는 말하고 싶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순간도 당신의 잘못은 없다고. 그 대신 우리 건강하게 살아남자고요."(지영) 

고백했고, 공감했고, 함께 울었다. 

지난 28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팟빵홀에서 페미워커클럽이 주최하는 토크콘서트 'B급 페미니스트: 포스트 #빨간약, 우린 어디에'가 열렸다. 페미워커클럽은 한국여성노동자회 내에서 성평등 노동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젊은 여성들의 모임이다.

 '빨간 약'을 먹고 난 뒤의 삶

이날 행사는 페미워커클럽 소속 회원들이 자신이 겪은 성차별·성폭력 피해를 직접 이야기하며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마련됐다. 100여 명의 관객들이 팟빵홀을 가득 채웠고 손희정 문화평론가의 진행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페미워커클럽 회원들은 공통적으로 '여성혐오'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사는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페미니즘이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무대 위에 오른 지윤(활동명)은 페미니즘이라는 '빨간 약'(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이 진실을 깨닫는 도구가 된 것에서 빗댄 표현)을 먹은 뒤 달라졌다고 한다.


과거의 그는 "드세 보인다며 화장을 연하게 하라던 전 남자친구"의 충고에 따랐고, "남고딩들의 이쁜 누나가 되어달라"고 말한 PC방 사장의 말을 문제의식 없이 넘겼다. 그러나 페미니스트가 된 이후 지윤은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존감'이 생겼고,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지영(활동명)은 성폭력 피해를 겪었으나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며 용기 있게 공론화하는 일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을 '찌질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살아있고 싶어서", "힘이 되어 준 연대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자신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지영이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내비치자, 관객들도 덩달아 눈시울이 불거졌다.

마라(활동명)는 "은근하고 축축하게 스며드는 미세먼지같은 상황에서도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문제제기가 어려운 '은근한 성차별'도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녕(활동명)이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으로 페미니즘을 깨닫게 되고, 결국 오랜 기간 겪었던 '사내 성희롱'을 알려 가해자의 징계를 이끌어내고, 사내규정을 바꿔내는 성과를 얻었다고 밝히는 영상이 상영되자 큰 박수를 받았다. 

무례한 '남자들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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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 초대손님으로 나온 은유 작가 ⓒ 한국여성노동자회

 
이날 게스트로 참가한 은유 작가는 강연할 때 '중년 남성'들이 유독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아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여성 강연에서 대뜸 한 남성이 "작가님, 폭력 당한 경험이 많으신가 보네요. 저는 옆에 있는 부인에게 목숨도 바칠 수 있는데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닌데"라는 말이었던 것. 

당시 그는 "그 발언은 용기를 내서 아픔을 내놓고 그 아픔에 감응한 사람에 대한 결례"라고 반박했지만 분이 잘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몇 년 동안 성폭력 가정폭력 여성들과 글쓰기 수업을 한 은유 작가는 당시 상황이 생각나는지 잠시 눈물을 흘렸다. 

"여성들은 무례한 질문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죠?'라고 말해서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는 게 우리 생존 방법이에요. 남성들은 자신들이 소수더라도 기죽지 않고 질문하고 결정하는 게 자기들의 몫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조심스럽고, 반성하고, 틀리는 것을 걱정합니다. (여성들도) 결정하고 질문하고, '왜 그런 걸 묻냐'고 말해야 합니다. 울더라도 끝까지 말하는 페미니스트가 됩시다."

이날 토크콘서트는 단순히 무대 위에 선 사람이 말하기만 하는 행사는 아니었다. 관객들도 '내 인생의 빨간약'을 말하는 시간을 통해서 각자 품고 있던 일들을 고백했다. 성폭력 피해, 임신중절 등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하기 힘들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자리에 있던 여성들은 발언자가 가해자를 욕할 때 같이 욕했고, 울먹일 때는 같이 울었다. 발언이 끝날 때마다 크게 박수를 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했다. 사회를 본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중간에 "굉장히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할 만큼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과 폭력에 서로 위로 받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래도 괜찮아"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페미니스트'로서 실천하는 삶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나눴다. '꾸밈노동'을 할 때, 성희롱적 언사에 대응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의 외모가 싫어지는 경우 등에 있어서 그들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라는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 지윤은 페미니스트로서의 고민과 갈등들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의미가 아닌) 'B급 페미니스트'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공동대표는 "사람이 안과 밖이 다 빨간 '토마토'로 살기는 정말 힘들다. 저도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항상 '빨갛게 살아야 돼'라는 압박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도 사람이야'하면서 제 스스로 위로한다"며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내려놓으셔도 된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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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나고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토크콘서트 패널들과 관객들 ⓒ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니스트 #페미워커클럽 #은유작가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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