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아이들에게도 봄이 왔습니다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엄마 없는 아이들에게 파티를 열어준 봄볕 같은 사람들

등록 2019.03.31 12:18수정 2019.03.3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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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진 시인은 소년원 출원생을 비롯한 학교 밖 청소년에게 일자리와 밥을 주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 카페 '소년희망공장'을 2016년 만든 뒤 위기청소년 스포츠․문화예술 공간 '소년희망센터'를 2018년 부천역 골목에 만들었다.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는 가정해체 등의 불우한 환경으로 위기에 처한 소년들의 절망 '팔할'(八割)과 희망 '이할'(二割)에 관한 이야기다. -기자 주-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 김인호

 
봄이 왔어 봄
화사한 봄이 와서
봄놀이 가는 사람들아

강산에 매화꽃 목련꽃
진달래 철쭉꽃 지천이어도
봄이 다 왔다 말하지 마시라

엄마 떠난 빈집에 버려진 아이
술 취한 아버지 매질을 피해서
거리 떠돌다 잡혀 간 그 아이가

이불을 덮었는데도 추워요
라면을 먹었는데도 배고파요
엄마는 안 오시나 안 오실거야

울다 잠들었다 깨어난 밤
견디기 힘든 건 슬픔이 아니라
라면을 또 끓이는 허기진 봄 밤

멍든 얼굴로 라면 먹는 봄
먹다가 질려서 불어터진 봄
아버지, 라면 드세요 깨우는 봄

내 기다린 봄은 그런 봄이 아니야
지들만 꽃 피는 그런 봄이 아니야
그대들이나 놀러가 나는 못 놀러가

(졸시, '라면 먹는 봄' 전문)

지중해 요리로 행복한 '소년 희망, 봄 파티'

 

지중해 요리를 먹으면서 오카리나 연주를 듣는 '소년 희망, 봄 파티' ⓒ 민경택

 

오카리나 연주로 봉사해준 '다원 앙상블' ⓒ 민경택

   
오카리나 연주를 들으면서 난생 처음 먹어보는 지중해 요리에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박수치며 웃음꽃을 피우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봄밤을 밝히는 아이들…. '소년희망, 봄 파티'가 열린 이곳은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랍니다. 봄 파티가 열린 곳은 불우한 소년들에게 밥을 주기 위해 부천역 뒷골목에 만든 청소년 아지트 '청개구리식당'(대표 이정아)입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대표 최승주)이 28일 오후 7시 청개구리에서 '소년 희망, 봄 파티'를 열었습니다. 봄 파티에 초대한 손님들은 엄마 없이 자란 성준(가명․19)이와 소년원에 몇 번 갔다 온 봉수(가명․22) 그리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현태(가명․18)를 비롯해 30여 명의 부천역 아이들입니다. 라면 먹는 배고픈 밤 때문에 슬퍼했던 가슴 아픈 아이들입니다.

봄 파티를 연 것은 이 아이들에게도 봄을 선물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봄이 왔다고 꽃구경 가고, 집 안팎에 봄단장을 하고, 봄 신상품 옷을 사 입으며 다들 봄을 만끽하는데 그늘진 아이들에겐 봄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에 들에 별의 별 꽃들이 피어 희희낙락거리지만 봄볕 들지 않는 방에 누운 아이들은 여전히 춥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년희망, 봄 파티'를 열기로 했습니다.

"세상엔 따뜻한 어른들이 있다는 걸 믿어다오"
 

전동휠체어를 타고 봉사 중인 호영씨. ⓒ 민경택

 
봄 파티의 주역들은 봄볕 같은 어른들입니다. 지중해의 고급 요리를 재능기부로 만들어 준 셰프와 도움을 청하면 선뜻 달려오는 사진작가, 봄 파티를 제안한 대기업 CEO 출신 교회 장로와 건축회사 중역으로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 전동휠체어를 타고 온 자원봉사자와 오카리나 연주를 해준 아마추어 음악인 등 봄볕 같은 이웃들로 인해 그늘진 아이들에게도 봄이 왔습니다.

파티의 꽃은 지중해 요리였습니다. 맛과 건강을 위해 슬로우 푸드를 요리하는 임회선 셰프가 지중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레스토랑 문을 닫고 온 임 셰프는 동료 이동진 셰프와 스페인 새우요리 '감바스'와 길쭉한 모양의 이탈리아 빵 '치아바타', 뉴질랜드 양고기로 만든 '찹스테이크'와 꽈배기 모양의 이탈리아 국수 '푸실리 파스타', 생선 대구로 만든 감자 고로케와 토마토와 파프리카 등으로 만든 이탈리아 샐러드 '카프레제' 등의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온 호영씨는 아이들에게 접시를 나눠주었고, 예쁜 꽃님이인 재연씨와 정영씨를 비롯한 여성봉사자들은 배식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은 접시 가득 담아준 요리를 먹으면서 오카리나 연주단 '다원 앙상블'의 은은하고 경쾌한 연주를 들었습니다. 다원의 순덕씨는 "엄마의 마음으로 연주했다"면서 "아이들이 박수치고 즐거워하며 호응을 해주어서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든 불러주면 달려오겠다"고 했습니다.

두 딸의 아빠인 사진작가 경택씨는 "불편한 몸인데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와서 웃으며 봉사한 호영씨와 재연씨를 보면서 감동받았다"며 "이런 감동 때문에 자원봉사를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색당 당원 미선씨는 "파티비용을 후원하면서 자원봉사를 한 이들을 보면 세상에는 선하고 멋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오늘의 멋진 파티가 내게 감동이듯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겠지"라며 감동의 여운을 페이스북에 남겼습니다.

건축회사 중역으로 중학생 아이를 둔 엄마는 퇴근하자마자 달려와 설거지 봉사를 했습니다. 엄마는 "봄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바빠서 가지 못해 서운하던 차에 봄 파티 소식을 듣고 참여했다"면서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세상은 힘들고 그늘진 곳이 많지만 그럼에도 세상엔 따뜻한 곳이 있고 따뜻한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믿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삐딱한 아이들에게 "사회자 아저씨 경찰이야"라고 했더니
 

봉사 전문 사회자인 인천 남동경찰서 조우진 경위. ⓒ 민경택

 
봉사 전문 사회자인 인천 남동경찰서 조우진 경위는 봄 파티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경찰 제복 대신에 반짝이 조끼와 산티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날라리처럼 진행하자 맨 뒤에 앉은 봉수 패거리들이 삐딱했습니다. 혹시라도 깽판칠까 봐 "사회자가 경찰이야"라고 슬쩍 뒤띔하자 바로 자세를 고치더니 파티 끝까지 적극 협조했습니다. 성준이는 최고의 사회자라며 조 경위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쌍으로 치켜세웠고 미연(가명․17)이는 카카오친구가 되어달라며 전화번호를 땄습니다.

"너무 즐겁고 행복한 파티였어요. 너무 재밌어서 소리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아파요. 히히, 다음에 또 파티를 해주세요."

지중해 요리와 좋은 음악과 레크리에이션으로 신난 데다 텀블러와 문화상품권 등의 선물까지 받은 혜주(가명․18)는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현태는 "지중해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몰랐다"면서 "그중에서 감바스가 최고로 맛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떠난 뒤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편의점 음식 등 인스턴트 먹거리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과연 지중해 요리가 통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늘진 아이들에게도 봄이 찾아 오셨습니다!
 

소년 희망, 봄 파티의 주역들. ⓒ 민경택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다가 아주 많이 실패했습니다. 100전 97패 3승, 정도 될까요? 야구로 치자면 패전 전문 투수입니다. 그늘진 아이들은 어른들을 잘 믿지 않습니다. 희망이 껌도 아닌데 몇 번 씹다가 버리라며 툭 던져주는 식으로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에게 기대하지 않고 절망을 선택합니다. 아이들에게 희망은 불신의 단어, 그래서 못 믿을 희망보다는 익숙한 절망을 선택합니다. 그게 아이들의 잘못만일까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꼰대짓을 하면서 주었습니다. 몇 번의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일어서라고 강요해선 안 되는데도 '옛날엔 너희들보다 더 배고팠어',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야지', '절망에 지지말고 희망을 가져야한다'면서 희망 고문을 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수와 실패의 연속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희망의 강을 건너야죠, 이렇게 좋은 이웃들의 손을 잡고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 도달해야죠. 

봄볕 같은 이웃들에게 봄 기운을 받았습니다. 그늘진 아이들에게 '아이들아 엄마 없이 사느라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니, 봄인데도 배고프면 어쩜 좋으니'라며 안아준 봄볕 같은 이웃들, '아이들아, 미안해. 우리만 행복하면 되는 줄 알고 살아서 미안해. 혼자만 행복한 건 행복이 아니라고 너희들이 깨우쳐 주었어!'라며 아이들을 가슴에 담은 따뜻한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아이들도 저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늘진 아이에게도
따뜻한 봄이 오셨으니
이제는 진짜 봄입니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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