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규정이 상위법 부정하는 이상한 교육청 공문

[주장] 학교운영위원 자격 제한 개정... 정치적 중립보다 정치 기본권이 우선

등록 2019.03.31 15:46수정 2019.03.3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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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은 학교운영위원(약칭 학운위) 자격 제한을 두고 있는 단위학교 학운위 규정을 개정하라는 공문을 하달한 적이 있다. 서울지역 관내 초중고 1200개가 넘는 학교에 2018년 7월 19일자로 접수된 공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초 학교마다 학운위 규정 개정이 한창이다. 공문 내용은"학운위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 제7조 1항이 개정되었기에 학부모, 교직원 등 학교구성원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단위학교 학운위 규정을 정비하라"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 규정 예시안 1, 2를 담은 교육청 공문 상위법인 조례에서 삭제된 문구 <정당의 당원 배제>를 예시안 2로 안내하고 있으며 친절하게 법률자문을 구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예시안 2로 유도하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 하성환

상위법인 조례 제7조 제1항의 내용은'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이어야 한다'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그런데 교육청은 두 개의 예시안을 명기해 각급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예시안 2이다. 예시안 2에서는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이어야 한다'는 문구를 다시 집어넣은 것이다. 그러면서 법률자문을 구한 결과 다수 의견으로 나왔다며 학운위 규정으로 "정당의 당원을 배제하는 것이 명시 가능하다"고 밑줄과 함께 굵은 글씨로 안내한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 규정 예시안 1]
제0조(위원의 자격) ① 학부모 위원 및 지역위원은 국가공무원법 제33의 공무원 결격 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여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 규정 예시안 2]
제0조(위원의 자격) ① 학부모 위원 및 지역위원은 국가공무원법 제33의 공무원 결격 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여야 하며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이어야 한다.

☞ 법률 자문 결과 다수 의견(총 5명 중 4명)
- 초중등교육법 제34조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62조 및 동 조례 제26조의 포괄 위임 규정에 따라'단위학교 운영위원회 규정'으로 운영위원의 자격사항(정당의 당원 배제 등) 명시 가능


이에 따라 각급학교에서는 예시안 1과 예시안 2 가운데 양자택일하도록 가정통신문을 발송해 개정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있다. 예시안 1은 위원의 자격을'공무원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상위법인 조례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나 예시안 2는'공무원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여야 하며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이어야 한다'고 개정된 조례를 부정하고 있다. 
 

학부모에게 발송된 가정통신문 교육청 공문에서 안내한 예시안 1과 예시안 2를 그대로 가정통신문에 담고 있다. 다양한 의견수렴이라기보다 양자 택일하여 동그라미를 치게 했다. ⓒ 하성환

 
교육청의 공문은 마땅히 개정된 조례를 안내하며 예시안 1을 각급학교에 전달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끝났어야 옳다.


<기존 조례>
제7조(위원의 자격) ① 학부모 위원 및 지역위원은 「국가공무원법」 제33조의 공무원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아니 하여야 하며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이어야 한다.

<개정 조례>
제7조(위원의 자격) ① 학부모 위원 및 지역위원은 「국가공무원법」 제33조의 공무원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아니 하여야 한다.


상위법인 조례에서 정당의 당원 배제를 삭제한 조항을 교육청에서 예시안 2를 통해 정당의 당원 배제를 다시 집어넣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교마다 교육청이 내려 보낸 두 개의 예시안을 그대로 가정통신문에 넣어서 의견수렴 아닌 양자택일을 하게 한다는 데 있다. 교육청의 예시안 2가 개정된 상위법 조례 규정을 부정하는 것임에도 다양한 의견 수렴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학부모들 다수가 교육청에서 안내한 예시안 2에 동그라미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 교육청 관료를 그리고 학부모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아마도 정치적 편향성 배제를 염두에 두고 쓴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은 정치적 기본권에 우선하지 않는다. 상위법인 조례의 법 개정 취지도 그런 이유에서 정당의 당원 배제 문구를 삭제한 것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선진국에서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사조차도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랑스는 교사 신분을 유지한 채 특정 정당의 후보로 선거에 나가고 당선된 뒤 국회의원 등 정치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역할이 끝나면 교사로 복귀한다. 적어도 미국이나 일본조차도 정당 가입 정도는 허용한다. 따라서 공문에서 보듯이 정치적 중립을 그런 때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 이유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고 정치공동체를 민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정치적 중립과 별개의 차원이다. 정치적 중립 이전에 모든 시민이 간직하고 누리는 정치적 기본권이자 침해할 수 없는 인권의 본질적 영역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 문제에 참여하는 정치적 기본권은 정치적 중립보다 우선한다. 정당에 가입돼 있다고 해서 학운위원이 될 수 없다거나 교사와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후진적인 발상이다. 선진국이 선진국다운 이유를 생각해 보라!

다만 교사는 보이텔스바흐 합의처럼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선 중립을 지킨다. 수업에 지극히 정치적인 쟁점이나 논쟁적인 사안을 수업재료로 끌어들이고 교실을 토론으로 활성화시킬 뿐이다. 아이들의 토론에 가치판단을 하거나 특정 정당의 견해를 주입하지 않는다. 전후 독일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며 학자들이 합의한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내용을 견지하는 이유이다.

심지어 북유럽국가에선 특정 정당의 정치인들이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자기 정당의 교육정책을 홍보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장차 투표권을 지닌 유권자이기에 청소년들로 하여금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도록 관심과 태도를 이끌어 내려는 정책적 노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사회는 매우 유치한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자랑인 사회가 되고 정치적 중립이 무슨 대단한 금과옥조인 양 여긴다. 
 

서울시교육청 ⓒ 서울시교육청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가장 정치적인 동물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표현은 결코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니다. 하물며 정치적 중립을 운운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자 사회적 존재인 이유는 인간만이 이성과 지성에 기초하여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간만이 정치가 가능한 존재이다.

과거 이승만 정권은 교사와 경찰 등 공무원을 부정선거에 강제로 대거 동원한 잘못을 저질렀다. 이에 대한 우려로 박정희 정권 때 만든 것이 국가공무원법 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다. 그 이후 정치적 중립이 마치 바람직한 가치이자 절대 진리인 양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각 영역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 못지않게 박정희 정권 18년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미명 하에 학교를 정치교육의 선전장으로 전락시켰다.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게 만들고 외우지 못하면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고교생들에겐 수십 초 만에 총기를 분해했다가 결합시키는 군사훈련을 버젓이 강제했다. 학교 전체를 병영화 했고 군사훈련을 담당한 군인 출신 교련교사들이 휘젓던 시절을 연출했다. 나치의 독일교육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필자는 60이 되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교육의 암흑기였다.

그런 시절에 널리 유포된'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아직도 교육청은 맹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학부모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교육청 관료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민주시민교육을 학교에 선구적으로 정착시켜야 할 역사적 소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순된 공문을 구체적인 예시안으로 만들어서 학교현장에 내려 보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현장에 뿌리내려야 할 학교당국이 교육청 예시안을 그대로 가정통신문으로 발송하는 현실은 보신주의도 아니고 무엇으로 이해해야 할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학부모에게 양자택일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의견수렴을 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의 의견도 수렴해야한다. 그것이 민주적인 학교운영이자 학교 현장에 민주주의를 안착시키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민주시민교육을 선도해야 할 교육청과 민주주의를 학교현장에 뿌리내려야 할 학교당국이 좀더 선구적으로 지성을 발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정치적 중립 #정치기본권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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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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