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

[서평] 한겨레신문의 탐사기획팀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등록 2019.04.05 09:44수정 2019.04.0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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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혼율이 굉장히 높은 지역에서 자랐다. 내가 살던 지역의 이혼율은 통계적으로 보아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순위권에 든다. 이혼율이 높다는 것은 이혼에 다가서기 직전의 파탄난 가정은 훨씬 더 많다는 말도 된다. 아이들에게는 부모들의 돌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 같은 반 아이들의 학부모들은 스트레스가 극단적이었다. 실업하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노는 부모들도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 부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친척들 간에 서로 아이의 양육을 떠넘겨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아이, 학급문고 도서를 구입하지 못해 매일 혼나는 아이가 있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공장 일을 오래 쉰 아저씨는 얼굴빛이 어두워지다 '술만 안 먹으면 좋은 사람'이 되어 집안을 때려 부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아이들이 학대와 방치 사이에서 살았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이웃이었는데도 어린 시절엔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 류이근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은 누군가에게는 범죄지만 누군가에게는 교육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아동학대에 대한 책이다. 저자들 다섯 명(류이근 임인택 임지선 최현준 하어영)은 한겨레신문의 탐사기획팀이다(이 책은 2016년에 출간되었다가 2019년에 재출간되었다).

이들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우리나라에서 학대로 사망한 아동에 대해서 조사했다. 그 기간 동안 263명의 아이가 죽었다. 

책에 따르면, 아동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가정이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가 전체 아동학대의 83.3%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그 수가 적다.

저자들은 한국에서 가정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에 요란을 떠는 이유가 우리의 범죄는 불편하기 때문에 남의 범죄에 분노를 투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알면 불편하게 다가오는 가정 내의 아동학대에 집중해서 쓰였다.
 
 왜 언론은,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가정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에 더 요란을 떠는 것일까? 아동 학대 자체도 불편한 소재이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는 더더욱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중략) 또 남의 범죄엔 분노를 쉽게 투사할 수 있지만, 우리의 범죄는 분노보다 비극과 동정 등 여러 감정이 겹쳐 불편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미디어는 적어도 이런 뉴스를 선호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들이 아닌 우리의 범죄를 직시하길 꺼린다. -160~161P
 
아동학대 문제는 아이들에게는 생명과 정신이 달린 문제다. 학대는 그들의 신체를 파괴하고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학대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이들은 정작 이 문제에 개입할 수가 없다. 아이들은 자신이 학대당하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선거권이 없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행동을 할 수도 없다. 아동 학대를 위해서 강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없는 이유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많은 아이들을 살리는 일에 실패했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가정에선 가정불화가 흔했다. 실직이나 경제적 궁핍 등의 이유가 원인이었다. 한겨레신문의 조사 결과,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가정 110곳 중 45가정에서 공통적으로 가정불화가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책은 아동 학대 가해자의 특성으로 학대당한 경험과 고립을 꼽는다. 가해자 중 일부는 본인도 남에게 학대당한 사람이고,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와 고립을 겪고 있었다.

책에는 아동학대자들, 주로 부모들이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해 스트레스를 풀거나 아이를 제대로 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학대의 종류는 다양하다.

아이가 대소변을 잘 못 가리거나 음식을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경우 등의 직접적인 공격 이외에도 아이를 방치하거나 아이에게 필요한 돌봄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대자 상당수가 아이는 하나의 생명체이고 자신이 부모이기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기초적인 식사조차도 제공받지 못하고 폭력을 견딘다.
 
가해자 면담만으로 아동 학대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 엄마와 3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눈 뒤 상담원들과 따로 조사실을 나와 "아이 엄마가 측은하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하지만 잠시 뒤, 경찰이 확보한 증거 자료 속 아이 엄마의 모습은 반전이었다. 증거 자료 속에서 조금 전 흐느끼던 바로 그 목소리가 사납게 흘러나왔다. "울지 마라, 이 새끼야. 자다가 왜 울고 지랄이야. 너는 그냥 처맞아야 돼." 아이의 뺨과 맨살을 짝짝 때리는 소리가 수십 차례 반복됐다. -250~251P
 
현실이 이렇게 처참하지만,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큰 난관을 겪는다고 한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사람들을 상담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활동하는 그들에게 학대자가 매우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보고 내 것인데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며 분노하는 그들은 직접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들도 과태료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음에도 신고를 겁내기도 한다.

아이를 소유물로 보는 관념은 살해 후 자살과도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일반적인 학대 이외에 학대로 잘 여겨지지 않는 살해 후 자살에 대한 내용도 책에 담았다. 책에 따르면, 동반 자살이라는 개념은 일부 국가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소유물로 보기 때문에 아이 부모가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 아이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다. 

책에 따르면 이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이 아닌 가해자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살해를 살해 후 자살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만 동반 자살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자식 살해 후 자살은 한국과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은 많은 아이들이 사망한 후에 나온 것이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나라지만 정작 태어난 아이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는 일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책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개선과 아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어린 시절에 아동학대가 눈에 보이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는 소유물이고 부모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자녀는 부모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라고 여겨졌기에, 그런 대상을 상대로 학대라는 개념이 가능한 줄 몰랐다.

책은 한국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고, 이는 학대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시선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부모도 사람이고, 자녀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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