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되니 다른 병원 가라? 쫓겨나는 어린이 환자들

[제보취재] 점점 사라지는 소아재활병원... '재활 난민' 몰리는 장애아동 가족들

등록 2019.04.04 14:29수정 2019.04.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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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일산병원 재활의학과 소아낮병동 폐쇄 및 외래 진료 축소에 대한 장애아동 보호자들의 서명문. ⓒ 동국대대책위

 
'동국대병원 재활의학과입니다. 병원 경영방침에 따라 19년 3월부터 낮 병동 운영 중단이 불가피하여 안내문자 드립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루아침에 엄마와 아이는 '재활 난민'이 됐다. 2월 18일, 동국대일산병원에서 온 '(소아) 낮 병동 운영을 중단한다'는 통보 때문이다. 동국대일산병원은 3월 1일부터 재활의학과 소아 낮 병동을 폐쇄하고, 기존에 주 2회 이뤄지던 외래 진료도 주 1회로 축소했다. '소아 낮 병동은 재정적 문제로 계속 운영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1급 발달장애 아이를 둔 김수현(42)씨는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꼬박 2년을 기다렸다. 동국대일산병원 낮 병동에 들어가고자 하는 대기자들은 평균 200~300명 정도다. 소아 낮 병동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선천적 장애 아동들을 위한 집중재활치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용인원은 고작 10명 안팎. 입소하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기간이 상당하다. 이번 3월은 김씨의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기회였다.

"정말 한 동안 가만히 서 있었어요.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우리 애는 치료 없이는 살 수가 없는데 이렇게 갑자기..."

김수현씨의 오랜 기다림은 낮 병동 입소 11일 전에 물거품이 됐다. 김씨는 병원 측에 수차례 '정말 폐쇄된 게 맞냐, 우리 아이는 어떡하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른 병원 알아보라'는 것뿐이었다.

"돈 안 된다고 대책 없이 나가라니... 이건 내 자식 목숨 달린 문제"

지난달 28일 김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통화 중 몇 차례나 전화를 끊어야 했다. 아이의 재활 치료를 위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세 번째 통화했을 때였을까. 가쁜 숨을 고르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그의 목소리가 순간 높아졌다. '동국대 병원에서 문자 통보를 받고난 후 심경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였다.


"이제 일곱 살 된 우리 지O이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요. 모왓-윌슨 증후군이라고. 심한 지적장애에 간질 증세까지 보이기 때문에 물리, 인지, 작업 치료 중 무엇도 빠져서는 안 돼요. 그런 우리 아이가 하루아침에 치료받을 곳 자체를 잃어버렸어요. 그들에겐 돈이 우선일지 몰라도, 환자들에겐 생명이 달린 문제예요.

병원은 '위에서 결정된 내용'이라면서 '다른 사설센터나 복지관으로 가라'고만 하는데, 현실적으로 못 가요. 복지관은 2년 이상 대기해야 갈 수 있어요. 병원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하죠. 그런데 병원은 고작 11일 전에 통보한 겁니다. 또 사설센터는 너무 비싸요. 40분에 4만 원 정도 들어요. 병원은 보험금 청구를 할 수 있어 회당 2500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 것에 비교하면 정말 큰 차이입니다. 무작정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은 정말 무책임해요."

 

동국대일산병원 재활의학과 소아낮병동 장애 아동 및 보호자 시위 사진. ⓒ 동국대대책위

 
결국 엄마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통보를 받은 38명의 보호자들이 모여 동국대비상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구성했다. 병원 앞에서 집회도 열고, 청와대 국민청원과 국민 신문고에 직접 글도 올렸다. 하지만 국민신문고에서 온 답변은 '2022년까지 공공어린이재활기관 건립을 추진할 예정'이라는 것뿐이었다. 당장의 상황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대책위는 계속 목소리를 냈다. 국회에 민원을 올리고, 병원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병원 이사장과의 대화도 요구했다. 하지만 개선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동국대일산병원 재활의학과 소아낮병동 폐쇄 및 외래 진료 축소에 대한 장애아동 보호자들의 탄원서. ⓒ 동국대대책위

 
김수현씨는 이사장실 문 앞에 찾아간 날 들었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날 이사장 대신 동국대병원 예산집행실 팀장을 만났어요. 근데 그 사람이 '엄마들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카페를 가도 어떤 메뉴를 팔 건지는 주인의 마음 아니냐'고 말하는 거예요.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게 병원 아닌가요? 병원에서 돈이 우선시 되는 게 말이 됩니까? 내 자식의 목숨을 상품에 비교하다니요. 내 자식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이런 말을 하면서 어떻게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김씨에 따르면, 발달장애 아동 치료비는 한 달 평균 약 80만~100만 원 정도다. 김씨는 외래진료마저 주 2회에서 1회로 줄어든 상황이라 치료비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씨는 "돈이 들더라도 제발 안정적인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기에 적절한 재활치료가 수반돼야 손상된 신체기능을 회복시키거나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 아이가 세 살이었을 무렵, 집중재활치료 덕분에 병원에서 첫 걸음을 뗐어요. 원래 걷지도 못하는 아이였거든요. 그땐 정말 병원을 교회처럼, 신앙처럼 믿으면서 다녔어요.

지금은 이런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잖아요. 발달장애 아동 엄마들은 내 새끼 살리기 위해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써요. 그런데 갑자기 폐쇄한다고 통보해 버리면, 여태까지 낮 병동에 들어오려 했던 200~300명의 대기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이건 병동에 들어올 일부의 문제가 아닌 몇 백 명의 사람들 문제예요."


소아재활 서비스 축소는 전국적 현상... 늘어가는 '재활 난민'

소아 낮 병동이 폐쇄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동국대일산병원 측은 어떤 입장일까.

동국대일산병원 홍보팀 담당자는 "2년 내에 재활 병원을 만들겠다는 얘기가 오가긴 했지만 현재는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 재활은 수가가 굉장히 낮다, 우리도 10년 넘게 적자로 운영하다가 병원 경영상의 문제에 부딪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어머님들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민간 병원의 운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문제는 개별 병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김수현씨를 비롯한 장애아동과 보호자들은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이곳저곳 전전하고 있다. 이른바 '재활 난민' 처지다. 그러나 소아재활 서비스를 제공했던 병원들도 대부분 규모를 줄이거나 문을 닫는 상황이다. 소아 재활의 의료수가가 낮아 민간 병원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게 이유다. 실제 김수현씨와 유사한 상황은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인천의 올림피아병원도 소아 낮 병동을 폐쇄했다. 이곳의 보호자들도 입소 한 달 전에 병동 폐쇄 통보를 받았다. 이로 인해 약 20~25명의 중증 장애 아동 치료가 중단됐고, 보호자들은 다른 재활 시설을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당시 통보를 받은 당사자였던 허윤제(39)씨는 이런 상황만 두 번째 겪었다. 본래 부천에서 살며 아이의 재활치료를 받아왔지만, 부천 소재의 병원에서도 소아재활병원을 폐쇄한다는 통보를 받아 인천으로 쫓겨왔던 거다. 대안으로 온 이곳에서조차 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허씨는 "이젠 배신감을 느낀다"며 말을 이었다.

"또 쫓겨나는구나 싶었죠. 병원과 환자, 혹은 보호자의 관계는 갑과 을이에요. 혹시라도 밉보였다가 내 아이 치료를 안 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 말 못하거든요. 실제로 '낮 병동의 아이들 급식이 맛이 없다'고 말했더니, 급식 자체를 없애버린 적도 있어요. 불만을 말 할 수가 없는 거죠. 갈 곳 없는 상황이니까 병원의 눈치를 더 보게 되는 거예요."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장애아 가족과 시민들이 만든 비영리법인 '토닥토닥'에 따르면, 일본에는 200여 개가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이 한국에는 단 한 곳뿐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아래 푸르메 병원)'이다. 이곳에서 치료받는 어린이들은 하루 약 500명이다. 현재 입원 중인 어린이는 33명이고, 46명의 아이들은 낮 병동에서 치료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공급 탓에 입원하지 못하고 대기하는 어린이들만 190명이다.

이곳도 재정난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매해 약 20억 가량의 적자를 보고 있다. 푸르메 병원 측은 부족한 적자폭을 메우려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간 병원만으론 한계"... 정부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약속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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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국정과제 추진 T/F 추진 상황실 ⓒ 경기도

 
소아 재활병동 부족 문제는 정부에서도 인정한 사안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중증장애 아이들 치료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약속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발표한 국정 과제에 장애인의 건강관리 강화를 위한 '권역별 어린이 재활병원 확충'을 포함시켰다. 2018년 3월에 발표한 '제 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도 어린이 재활의료 체계 구축 방안을 담았다. 종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부족한 중증장애아동의 집중재활치료를 확대하기 위해 2022년까지 9개 권역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토닥토닥 김동석 이사장은 "9개 권역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을 약속했던 제도의 본래 취지와 달리 규모가 축소됐다"고 말한다. 당초 약속과 달리 3곳에만 병원을 지을 뿐, 4곳에는 병원이 아닌 외래 중심의 센터를, 2곳은 기존 병원에 소아 재활 센터 건립을 지정하는 형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김 이사장은 "장애아동 가족들이 재활 치료를 받으러 떠도는 상황에서 재활병원 건립을 축소하는 게 말이 되냐"며 "기존 병원에 지정만 할 경우, 지금처럼 보호자들은 언제든 병동이 폐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증 장애 아동들은 2022년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며 공공병원 설립에 앞서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 지원 체계도 문제다. 김 이사장은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전체 복지 예산의 20%도 안 되게 예산을 편성했다. 예산 자체가 적다보니 보건복지부에서도 소아재활병원 건립에 일부만 지원해 줄 뿐, 절반 넘는 금액은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라며 "심지어 이를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에서 전담한다, 이 문제는 단순 장애 문제가 아닌 공공의료 부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영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팀장도 "정부가 나서서 소아재활 분야의 의료수가(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를 개선해야 한다"며 "발달장애 아동의 재활치료를 위해 국가가 보다 폭넓은 차원에서 지원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 사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윤수현 서기관은 "병원들의 소아 재활 병동 운영에 재정적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현실적으로 정부가 민간병원의 운영 방침을 규제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며 "하지만 사업 시행과 함께 민간병원의 의료수가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가가 인상된다면 장애아동의 재활치료도 보다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오늘도 제2, 제3의 김수현씨와 허윤제씨는 중증 장애 자녀 치료를 위해 전국을 전전한다.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건강권법)에는 '장애인이 최적의 건강관리와 보호를 받을 권리'와 '장애를 이유로 건강관리 및 보건의료에 있어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돼 있다. 아직 장애 아동들과 보호자들은 법이 정한 권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 '우리 아이들 치료받게 해주세요' 청원 바로가기
#장애 #아동 #동국대 #소아재활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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