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부하의 아내를 빼앗으려 한 임금... 대체 이유가 뭐였기에

[리뷰] 삼국사기 '도미설화' 모티브의 창작 뮤지컬 <아랑가>

19.04.03 10:59최종업데이트19.04.03 10:59
원고료로 응원

뮤지컬 <아랑가> 커튼콜 장면. ⓒ 서정준


끝내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마지막에 흩날리는 꽃종이가 내 가슴에 내리는 듯 했다.

세련된 고전미와 탄탄한 만듦새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뮤지컬이 있다. 오는 7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아랑가>는 삼국사기에 실려 널리 알려진 '도미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도미설화는 개로왕(혹은 개루왕)이 평민 도미의 아내를 탐하여 도미의 눈을 멀게 하고 내쫓았으나 아내의 지혜로 둘은 고구려로 도망쳤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뮤지컬에서는 이를 극적으로 재구성해 기울어져가는 백제의 왕 개로는 자신을 위로해주는 꿈 속의 여인이 장군 도미의 아내인 아랑임을 알게 되고, 고구려의 첩자 도림의 계략에 마음이 움직여 도미를 국경으로 내쫓고 아랑을 취하려 한다.
 

뮤지컬 <아랑가> 중 한 장면. ⓒ 서정준

 
개로 역에 강필석, 박한근, 박유덕, 아랑 역에 최연우, 박민주, 도미 역에 안재영, 김지철, 도림 역에 이정열, 김태한, 윤석원, 사한 역에 임규형, 유동훈, 도창 역에 박인혜, 정지혜가 출연한다.

뮤지컬 <아랑가>는 누가 봐도 그 완성도에 고개를 끄덕일만한 웰메이드 작품이다. 우선 음악의 힘이 아주 강하다. 음악이 강한 것은 최근의 공연계에 이르러 당연하다시피 요구되는 것이지만, <아랑가>는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적절히 조화돼 그 중에도 특별하다.

멜로디컬한 건반악기가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이리저리 휘저으면 리드의 구슬픈 음색이 씬을 정리한다. 여기에 배우들이 뽑아내는 뮤지컬의 맑은 소리와 도창이 만드는 대비가 강한 소리가 더해지며 <아랑가>를 아름답게 만든다. 극 후반, '아랑'만으로 이뤄진 가사로도 다양한 감정을 전하는 장면, 도창이 부르는 도림과 사한의 만남 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컬 <아랑가> 중 한 장면. ⓒ 서정준

 
또 무대 위에서 복잡한 상황을 흩뿌려 관객의 감정이 다양한 인물에게 분산되는 경향이 있는 최근 대학로의 흐름과 달리 탄탄한 대본을 바탕으로 한 연출 중심의 구성이 큰 역할을 한다.

예컨대 <아랑가>는 심플함이 강조되는 미니멀리즘한 무대 위에 배우들 역시 정적으로 움직이며 대사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내뱉는다. 마치 샌드아트같은 배경의 움직임,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도창들의 소리에도 크게 반응하기보단 한 걸음 한 걸음 집중하며 연기한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배우들의 연기를 주고받으며 감정을 쌓아가기보다는 중간중간 의도적으로 도창이 개입해 관객들에게 흐름을 전해준다. 이를 통해 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감정들을 하나로 취합해 극장 전체의 에너지를 <아랑가>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관객의 시선도 연출의 의도대로 배우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맞춰 함께 움직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랑가>가 배우 예술의 가치를 잊은 작품은 아니다. 단단하게 깔린 상황과 이야기를 더욱 빛내는 것은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무거운 저주와 운명을 지고 살아가며 아랑을 그리는 개로, 아랑을 사랑하며 백제의 운명에 고뇌하는 도미, 수동적인 형태의 현모양처를 넘어 지혜롭게 생각하며 능동성 있게 개로에게 맞서는 아랑의 입체적인 면모가 극 전반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뮤지컬 <아랑가> 중 한 장면. ⓒ 서정준

 
여기에 더해 도미와 아랑, 개로의 삼각관계를 설득력 있게 만드는 도림과 사한의 쓰임새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도창까지 여섯 명의 인물이 무대 위에서 만드는 에너지는 <아랑가>를 관객들의 가슴 속에 있을 뭔지 모를 응어리를 꺼내는 작품으로 만든다.

다만 굳이 단점을 꼽자면 이야기 자체는 모티브가 되는 설화도 유명하고, 극의 방향성 자체가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박진감 넘치는 형태는 아니다. 긴박감 넘치는 탄탄한 플롯에 매료되는 관객이라면 <아랑가>의 감정에 함께 올라타지 못한 채 느슨한 100분이 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아랑가 뮤지컬 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