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검증 시스템, 권한-책임의 일치 시급하다

[주장] '또' 낙마, 끊임없는 인사검증 논란... 해답은 인사혁신처 실질화

등록 2019.04.04 14:31수정 2019.04.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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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과 책임의 일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재벌개혁 캐치프레이즈다. 대기업 총수들의 권한과 책임 수준이 매우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 진단이 필요한 곳이 또 있다.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이다. 고위공직 후보자를 검증하는 행정 절차에서, 권한과 책임이 크게 어긋나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권한은 애매하고 책임은 없다. 명확한 검증 기관과 근거 법령이 없고, 자연히 책임지는 주체도 없다. 유령 시스템이다.

법정-위탁-실무기관이 모두 다르다?

법령상의 검증기관은 총리실 산하 인사혁신처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 2조는 "인사혁신처장은 공직후보자에 관한 정보를 수집·관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10조에서 곧바로 "인사혁신처장은 '국가공무원법' 제20조 또는 '정부조직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위촉하는 직위 등에 대한 인사사무의 적정한 수행을 위하여 인사혁신처장이 인정하는 범위에서 제2조에 따른 정보의 수집·관리 권한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위탁한다"고 적시했다.

실제로 인사혁신처 조직도를 살펴보면 '검증' 업무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국이 없다. 1차장 4국 직제인데, 4국은 인재채용국, 인사혁신국, 인사관리국, 윤리복무국이다. 앞의 셋은 감찰 부서가 아니고, 윤리복무국은 후보자 검증이 아니라 기성 공무원 재산 심사와 징계 관리, 퇴직 공무원 재취업 관리 등을 맡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처장 직속으로 인재정보기획관이 있지만, 역시 검증이 아닌 인재 발굴 및 DB 관리가 주 업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어떨까. 지난 2018년 8월 <한겨레>는 '청와대, 장차관 검증 국정원 빠지자 정보경찰에 더 의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청와대가 '불법 사찰' 등 정보경찰의 월권 논란에도 고위공직자의 인사 검증과 장차관에 대한 복무점검을 정보경찰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경찰청 정보국 정보2과는 내부 보고서에 "국정원 국내정보가 폐지돼 경찰청이 사실상 유일한 검증 기관으로 중추적 역할"을 한다면서, "청와대 공직기강에서 FAX가 하달(대상자 명단·작성기한)"된다고 썼다. 사실상 청와대가 인사 검증을 경찰에게 '재위탁'한 셈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법정 주무기관(인사혁신처)과 위탁기관(청와대 비서실), 실무기관(경찰청 정보국)이 전부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심지어 위탁기관의 재위탁, 즉 청와대가 경찰에 검증 업무를 지시한 것은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 경찰법과 경찰관직무직행법에 명시된 일곱 가지 임무범위에 '인사 검증'은 없기 때문이다. 경찰도 알고 있다. 위의 정보국 정보2과 보고서에는 "명확한 수권조항이 없어 사실상 비공식 업무와 같이 수행, 법적 근거 긴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같은 기형적 구조는 인사 검증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개각 때마다 인사 검증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생겨나고, 야당은 '인사 참사'를 외치지만, 누군가에 제대로 책임을 물었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사 검증 실패를 이유로 물러난 인사혁신처장과 경찰청장(내지 과거 국정원장)은 없었고, 민정수석은 몇 차례 있지만 사태가 정말 심각한 경우에 한했다.

참여정부 시기 이기준 교육부총리(취임 5일 만에 자진 사퇴) 검증 실패로 박정규 민정수석이 사퇴했는데, 정권 지지율이 급락해서 인사추천위원 전원이 일괄사의 표명을 했던 상황이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정동기 민정수석이 검증 실패 책임을 짊어지고 사퇴했다.

하지만 정권 지지율이 흔들리는 수준이 아닐 경우, 청와대는 침묵을 유지하거나 사과문 발표 선으로 대응해왔다. 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한꺼번에 낙마했을 때 책임을 물은 수석 비서관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한 달 만에 10명 가까이 낙마했으나 책임자 사직이나 경질 없이 비서실장 사과로 대처했다. 2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두 분(조국, 조현옥)이 잘못한 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가 다소 무책임한 태도를 고수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인사혁신처로 권한 강화하고 책임까지 지워야

무책임한 말장난은 그만둘 때다. 인사검증을 맡을 기관을 명확하게 규정해 권한을 주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사혁신처의 실질화다. 총리의 제청권을 규정한 헌법과, 인사혁신처장의 공직자 정보수집권을 다룬 법령을 그대로 따라가는 정공법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몇 차례 나온 주장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월 <한국경제> 인터뷰를 통해 "경찰 인사정보 수집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이나 인사혁신처, 감사원 등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지난 2018년 12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인사 검증은 인사혁신처에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가 직접 만들어본 가안은 대강 이렇다. 기존 4국 체제의 인사혁신처에 인사검증국을 신설해 5국 체제로 확대하고, 현행 실무조직인 경찰청 정보국 정보2과 기능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인사검증 기능을 여기로 이관하면 된다(조직을 옮겨오라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정보2과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본연의 업무를 보면 된다).

규모는 정보2과가 19년 기준 51명, 공직기강비서관실이 13년 기준 19명으로 단순합산하면 70명인데, 기존 4국의 인원 규모가 50명에서 84명 사이이므로 국 단위가 적절하다. 그리고 나서 '인사 참사'의 직접적 책임을 인사혁신처장에게 무겁게 지워야 한다. 구조를 이렇게 바꾸면 심각할 경우 총리까지 책임을 지게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 도입론이 제기되고 있는 미국의 인사모델도 유사한 맥락이다. 미국의 공직 후보자는 연방인사관리처(OPM, Office of Personal Management)의 도덕성 검증을 1차적으로 통과해야 비로소 의회 청문회장에 설 수 있다. 미국 인사관리처는 산하에 NBIB(National Background Investigation Bureau, 국가신원조사국)과 SuitEA(Suitability Executive Agent, 적격성집행관)을 두고 있다.

통과에만 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FBI와 국세청이 범죄와 납세 기록을 들여다본 뒤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물론이다. 청문회 통과율 98%가 가능한 배경이다. 한국에도 강력한 경찰과 국세청, 언론은 있다. 다른 점은 인사처의 실질적 검증 권한 유무 하나다. 한국도 미국처럼 인사혁신처를 강화하고 상시 조사권한을 부여한다면, 청문회마다 반복되는 도덕성 논쟁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인사혁신처 강화의 기대효과는 또 있다. 경찰정보의 폐단 방지다. 국정원 개혁을 강하게 주장해온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국정원의 국내정보 파트를 없앴다. 그간 인사검증의 주축이던 '국정원 존안자료'도 포기했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경찰로 옮겨갔을 뿐, 비공식적 정보수집에 기댄 인사 관행은 그대로다.

경찰이 범죄 대응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소홀해지는 측면도 있다. 3월 4일 KBS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초 기준 경찰청 정보국 업무 가운데 범죄첩보 작성은 1.3%였고, 청와대로 가는 '정책자료' 작성이 22.5%였다. 정부 출범 초기 당연시되던 '정보경찰 개혁' 논의는 사실상 사장됐다. 경찰개혁위원회는 당초 정보국 폐지를 추진했으나, 청와대가 반대 의사를 폈기 때문이다. 인사정보 수집 기능을 옮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정부 출범 3년차, 책임정치 되새길 때

"흠 없는 사람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지난 3월 국회 대정부질문, 이낙연 국무총리의 말이다. 장관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에 대한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의 비판에, 국무위원 제청권자로서 어느 정도 문제점을 시인한 것이다. '여러 의혹을 사전에 몰랐으며,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쿨한 총리'의 태도였다. 실제로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날을 세웠던 윤상현 의원도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이는 국가적 차원의 책임방기다. 윤 의원과 이 총리의 대화에는 결국 아무런 실체적 내용이 없다. '모호한 책임 소재'가 문제의 본질임에도, 이를 짚지 않고 명목상의 지휘자인 총리에게 하는 '화풀이'로 보이기도 한다. 총리의 사과 역시 '쿨한 인정'이라기보다 '무능 고백' 같기도 하다.

인사검증에 있어서 "권한과 책임의 일치"가 절실하다. 헌법 취지와 달리 인사검증을 청와대와 정보기관이 독점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정확한 현주소다. 잘못된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정보수집 권한을 인사혁신처로 회수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우는 방향의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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