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혼동'으로 탄생한 국정감사, 이제 폐지할 때다

[주장] 국회의 한바탕 '큰 행사'일 뿐... 상임위-국정조사 강화가 답이다

등록 2019.04.04 11:50수정 2019.04.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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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정감사. 사진은 지난해 10월 11일 통일부 조명균 장관과 천해성 차관이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대한민국 국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매년 10월 전후로 열리는 국정감사다. 그야말로 국회의 '큰 행사'다. 그런데 이 국정감사 제도가 세계적으로 우리 국회에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정조사'(국정감사가 아니다!) 제도는 영국 의회에서 1689년 아일랜드 전쟁의 실패 원인을 조사하고 그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조사활동을 전개한 게 그 모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세계 대부분의 국가 의회에서 국정조사권은 인정되고 있지만, '국정감사'라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문일까. 매년 국정감사가 끝나면 '회의론'이 고개를 든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개헌의총(2017년 12월 말)에서 '국정감사 폐지론'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국정조사 실효성 강화'가 전제조건이었다.

'개념 혼동'에서 만들어진 국정감사 제도

1948년에 제정된 우리 제헌헌법 제43조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 하여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같은 해 제정된 국회법에서도 국정감사와 관련된 내용을 규정했다.

"국회는 의안 기타 국정에 관한 사항을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의원을 파견할 수 있다(제72조)."
"국회로부터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정부 기타의 기관에 대하여 필요한 보고 또는 기록의 제출을 요구할 때에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제73조)."
"국회는 의안 기타 국정에 관한 사항을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증인의 출석을 요구할 때에는 따로 정하는 규정에 의하여 여비와 일당을 지급한다(제74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국회법에서는 제헌헌법과 달리 '감사' 대신 '심사' 혹은 '조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정례적으로 실시한다는 내용이나 감사의 대상과 주체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의 구분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감사'와 '감시' 그리고 '조사' 용어에 대한 혼동과 관련해, 제헌헌법 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국정감사를 '국정조사'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었다. 유 박사는 제헌헌법 제43조 규정을 이렇게 해석했다.

"국회가 국정을 감시하기 위하여 제반의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기능이라 할 것이며, 본조는 국회의 이 당연한 기능을 선명(宣明)하는 동시에 국회가 국정을 감사할 때의 증인을 소환하여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음을 명백하게 한 것이다. 국회의 국정감사기능은 처음 영국에서 시작되어 점차 각국에 보급된 것인데, 종래 각국에 있어서의 국정감사의 실제를 보면..."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유 박사는 국정감사를 영국에서 기원해 각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국정조사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김효전, '입법부의 정책통제 기능; 국정감사권과 조사권을 중심으로', <대한변호사협회지> 제150호, 1989).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직접 감사'는 권력분립 원칙 위배

그런데 '감사'와 '조사'는 상이한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정확하게 구별해 사용돼야 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지 행정부에 대해 직접 감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행정부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된다.

이러한 국정감사는 이제 폐지돼야 한다. 현행 헌법상으로도 행정부 감사는 원칙적으로 감사원이 하도록 규정돼 있다(이관희, '우리나라 국정감사·조사 제도의 개혁방안', <헌법학연구> 제11권 제3호, 2005).

국정감사를 폐지하는 대신 국회의 정부 감시 기능은 상임위원회를 1년 내내 활성화시켜 상시적으로 활동하면 될 일이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상시국회, 국정조사 활성화'와 같은 맥락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의회처럼 의회 내에 회계감사원을 설치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 의원들은 우리처럼 시끄러운 국정감사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뱅갈고양이까지 특별증인으로 신청되는 '연기정치'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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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고양이를 놓고 대전동물원 푸마 사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해마다 국정감사철이 되면 각 부처 장관들이 수시로 불려 다니고 국회는 정부 공무원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국회 복도까지 아수라장으로 변할 지경이다. 국정 마비 현상을 초래할 정도다. 미국에서는 엄격한 권력분립에 의해 '원칙적으로' 의회의 장관출석 요구권이 없다.

그동안 국민들은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에 호통을 치고, 엄청난 양의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해왔다. 감사보다는 정쟁의 연속이고, 건수 위주며, '특권 과시의 현장'이다. 지난해 국감에서도 태권도복이나 한복을 입고 나오거나, 뱅갈고양이를 특별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희화화된 '연기(演技)정치'가 반복됐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고,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졸속감사, 수박 겉핥기식 감사, 한방 위주 감사 등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결국 국회의원들의 이미지를 더욱 추락시키고 정치 불신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는 낳는다.

'개념 혼동'으로 탄생한, 세계 어느 의회에도 없는 대한민국형 국정감사 제도. 이제 폐지하는 게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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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푸단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았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대한민국민주주의처방론>,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유신과 전두환정권에 반대해 수배, 구속된 바 있으며,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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