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은 농사를 즐겁게 하는 '마약'

농기계 사고... 졸지에 귀농인 됐다가 제 명 못 살 뻔

등록 2019.04.05 10:05수정 2019.04.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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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냈지. 하나 부탁 좀 하려고 하는데, 100평 정도 되는 땅 밭으로 갈아줄 만한 사람 주변에 없을까? 수고비는 당연히 줘야 하는 거고."


엊그제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밭과 축대 사이 땅을 정돈하기 위해 씩씩거리며 삽질을 하는 와중에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뻐근한 허리도 펼 겸 먼지 가득한 손으로 휴대전화의 액정판을 문질러 전화를 받았습니다.
 

굴삭기로 제고 되지 않고 밭에 남아 있는 나무 뿌리. 지름 15cm 정도의 이런 뿌리는 힘이 탁월한 강력한 트랙터라도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 김창엽

   
"어디인데 밭으로 만들어 달라는 거냐? 2월말부터 나 지금 한 달도 넘게 주말도 없이 막노동하고 있는데, 시간만 괜찮다면 내가 갈아줄 수도 있지만, 너무 바빠서 도저히 안 되겠는데."

응용수학을 전공한 박사이기도 한 친구는 세종시에 최근 단독택지 한 필지를 분양받았다고 했습니다. 당장 집을 지을 수는 없는 사정이어서 주말 농장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밭 속에 자리한 어른 주먹 3개를 합한 크기만한 돌. 보행 관리기의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천적아닌 천적이다. ⓒ 김창엽

   
고교 동창인 친구는 이리저리 고민을 한 끝에 나를 생각해 냈을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졸업생 700여명 가운데 약 150명이 약사, 한의사, 의사 등으로 일하는 직종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고교를 나왔고, 듣기로는 나를 빼고는 농사하는 사람은 없다시피 한 상황입니다. 친구로부터 5분 남짓 얘기를 더 듣고 결론을 내려줬습니다.

"그거 한 30만원 들여서 굴삭기를 동원하면 될 거야. 경운기나 관리기로는 만족할만한 밭이 만들어질 수 없어. 보나마나 크고 작은 돌들이 가득 널려 있을테고. 무엇보다 경운기가 관리기 사용한다면 부상 위험성이 있으니까."
  

큰 사고를 당할 뻔했던 날 오후 5시쯤 작업을 마치고 셀피. 흙먼지를 뒤집어 쓴 탓에 억지로 웃어 보았지만 어딘지 심란한 표정이다. 뒤쪽으로 차에 실린 보행 관리기가 보인다. ⓒ 김창엽

 
친구에게 전화를 받기 직전인 4월 첫날, 사실 제 명에 못 살 뻔한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그 경험 때문에 자신 있게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골에 터를 잡은 지 올해로 12년째이지만, 스스로 아마추어 농사를 지향해 왔습니다. 2008년 최초로 구입한 농지는 약 700평이었는데, 두 차례에 걸쳐 일부를 처분하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400평이 안 되는 밭을 게으르게 관리해 왔습니다.

헌데 올 들어 갑자기 최소 2500평이 넘는 밭을 경작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4월 1일 축구장보다 훨씬 큰 이 밭을 보행 관리기로 갈다가 커다란 부상을 입을 뻔 했던 것입니다. 당시 입은 부상으로 지금도 오른쪽 가슴에 멍울이 있는 상태입니다.
  

한달 내내 이어진 막노동에 오른손 마디 사이가 갈라지고 말았다. 접었다 폈다가 수없이 반복되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 김창엽

 
최대한 간단하게 당시 사고 상황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축구장보다 큰 밭의 3분2 정도는 지목이 전, 즉 밭인데,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이른바 묵밭이었습니다.


전문 업체에 맡겨 나무를 베어내고 굴삭기를 거의 10여일 동원해 뿌리를 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굴삭기 작업기사의 눈을 피해 살아남은 나무뿌리와 크게는 아이들 머리만한 돌들이 널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는 경사가 심한 곳은 15도 정도로 밭치고는 꽤 가파릅니다. 보행관리기의 요체는 타이어 형식의 바퀴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밭을 가는 쇠 재질의 날입니다.

밭을 갈 때는 바퀴는 어른 걸음걸이의 3분의 1도 안 되는 속도로 전진 혹은 후진을 합니다. 반면 강철 회전 날은 조절하기 따라 다르지만 최대 분속 수 천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승용차를 시속 100km 이상으로 몰면 최대 분속 회전수(rpm)이 최소 2000 이상으로 올라가는데 이걸 상상하면 되겠습니다. 

큰 일 날 뻔 했던 일은 그날 다섯 차례에 걸쳐 발생했는데, 처음에는 정말 식은땀이 흐르고 기운이 좍 빠질 정도로 아찔했습니다. 관리기의 바퀴도 또 회전날도 전진으로 맞춰놓고 밭을 가는데, 100미터 스프린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관리기가 갑작스럽게 후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래쪽은 밭 위쪽은 마당으로 축대 작업을 했다. 경사면에 잔디를 심는 게 간단치 않다. ⓒ 김창엽

 
일종의 킥백(kick back) 현상이었는데요. 엄청나게 빠르게 앞으로 돌아가던 회전 날이 꿈쩍도 않는 굵은 나무뿌리에 걸리자 저절로 후진을 하면서 관리가 밀려 났던 것입니다. 더구나 경사면 아래에서 위쪽을 향해 밭을 갈고 있던 터라 짐작컨대 시속 30~40km 정도의 속도로 순간적으로 제 몸을 가격한 것입니다. 충격적인 후진 가속으로 뒤쪽으로 거의 10m 가까이 물러났던 것 같습니다.

뒷걸음 치다가, 아니 뒷달리기를 하다가 제가 넘어졌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바퀴에 깔린다면 다행이지만, 회전날이 넘어진 제 몸을 덮쳤다고 가정하면 그렇습니다. 첫 킥백을 경험한 뒤로는 네 차례 정도 같은 현상이 있었지만, 1~2m 뒤로 물러나는 정도로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아마추어 농사만 고집하다가, 졸지에 축구장 1.5배쯤 되는 밭농사를 짓게 된 것은 무엇보다 이모부가 지난해 말 갑작스런 암수술을 밭게 된 탓입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이모네가 이 밭의 농사를 주로 맡기로 돼 있었는데, 이모부가 항암치료를 하는 중이어서, 제 손으로 떨어진 겁니다.

관리기로 밭을 갈기 일주일 전쯤에는 트랙터를 빌려 애벌 갈기를 했습니다. 나무로 가득했던 묵밭을 제대로 된 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가들도 5~6년은 필요하다고 하던데, 의욕만 앞세워 연거푸 밭갈기에 달라붙었다가 큰 코를 다친 것이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이나 시골과 연관을 맺고 있는 분들은 짐작하겠지만, 밭농사는 좀 고달픕니다. 예를 들어 밭농사 대 논농사 노력 비율은 최소 15대 1은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밭 2000평을 짓는데 드는 노동력이 논 3만평에 비해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논농사는 손으로 짓는 과정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거의 99퍼센트 기계화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고 모를 길러서 쪄내는 과정 정도가 거의 유일하게 인력으로 충당하는 부분입니다.

중학교 때까지 농사를 도왔고, 그래서 농사가 낭만이 아니라는 건 알만큼 압니다. 그럼에도 32살 때던 1993년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에게 틈날 때마다 시골 가서 살 거라고 떠들어 댔습니다.

요즘 말로는 귀농 혹은 귀촌인데요. 사실 당시 귀농 생각도 귀촌 생각도 없었습니다. 귀연 즉,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최근 티비 프로그램으로 유행하는 '자연인' 류의 삶을 1993년 당시에 꿈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08년 시골에 땅을 마련해서 집을 짓고,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제가 추구했던 인생 경로 선상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올 들어 졸지에 본격적인 귀농인이 돼버린 것입니다.

생색내려는 게 아니라 농사는 틀림 없는 중노동입니다. 아마 가장 편한 농사는 벼를 짓는 정도일 것이고, 고추나 마늘 오이 혹은 이런저런 원예작물 다 마찬가지로 허리며 골반, 어깨, 손마디 등이 성하기 쉬운 막노동에 가깝습니다.

헌데 천성이 몸 쓰는 걸 좋아해서인지, 막상 졸지에 귀농인이 돼보니 몸은 극도로 피곤하지만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은 듯 합니다. 가슴팍에 멍드는 정도로 부상을 당한 4월 1일 하루 종일 밭을 갈고 와서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극단적으로 드물게 찾아오는 충만함 혹은 충족감 같은 걸 느꼈습니다.

'Those were the days'로 더 널리 알려진 러시아 민요 '머나먼 길'을 들으며 주방 싱크대를 가득 채운 접시며 냄비 등을 닦는데 홀연 내 자신의 삶이 객관화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왔다 가는 인생 혹은 존재라는 홀가분한 느낌이 찾아왔습니다.

큰 사고 피하고 제 명을 채울 것 같은 하루였던 탓이어서 그랬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4월 1일 이후 이틀 더 미친 듯이 밭에 나가 일했지만, 비슷한 기분이 지속되는 걸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이유를 찾는 게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봄볕 때문이 아닌가 막연히 짐작합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더라도 봄볕만큼 일하는 내내 따뜻했습니다. 그게 아마도 내 몸안의 호르몬 변화를 유도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최소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봄바람이 난 거라고 추정해 봅니다. '봄볕은 마약'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밭을 갈아서 먹고 살라고, 자연이 그렇게 봄이면 호르몬의 변화를 유도하는지도 모릅니다.
#귀농 #사고 #농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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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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