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면에 감춰진 부러운 사실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온달의 성공 신화와 빈곤 탈출률

등록 2019.04.05 21:17수정 2019.04.0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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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442년 전 이맘때였다. 가야가 망하고 고구려·백제·신라만 남은 577년 4월 6일, 음력으로 정유년 3월 3일은 전통 명절인 삼월삼짇날이었다.

조선 후기에 정석모가 쓴 풍속학 서적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꽃놀이 시즌과 겹치는 삼월삼짇날이 되면 진달래꽃으로 만든 화전(花煎)이란 떡과 화면(花麵)이란 화채 등을 해 먹었다. 충북 진천에서는 여성들이 무녀의 인도 하에 용왕당과 삼신당에 가서 출산을 기원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모여든 여성들로 인해 진천 땅이 인파로 뒤덮일 정도였다고 한다.

이날 고구려에서는 두 가지 행사가 가장 큰 관심을 끌었다. 사냥대회 개최와 더불어 하늘신 및 산천신에 대한 제사였다. 산돼지와 사슴을 신들에게 바치기 위해 사전에 사냥대회를 열었다.

이때 벌어진 사냥대회는 고구려가 귀족사회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신선한 행사였다.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짐승을 잡으면 신분과 관계없이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성적이 좋으면 평민도 귀족들과 나란히 설 기회가 생길 수 있었다.

우리 머릿속에서는 '고구려' 하면 광개토태왕(태왕이 정식 칭호)이나 장수태왕 같은 영웅적 군주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들은 정복 활동에서 두각을 보였을 뿐 귀족들을 압도할 만한 권력을 갖지는 못했다. 고구려의 실질적 주인은 왕실이 아니라 귀족들이었다. 이 점은 여타 한민족 왕조들도 마찬가지다.

역사학자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는 원래 1인 전제주의의 나라가 아니라 귀족 공화제의 나라였다"면서 "국가의 기밀 사항도 왕이 단독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왕과 5부 대신들의 회의로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일부 예외적인 시기를 제외하고 이처럼 귀족들이 항상 막강했던 고구려 사회에서, 음력 3월 3일 사냥대회는 유능한 평민이 두각을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바로 그 기회에 편승해 서기 577년 이맘때 혜성처럼 출현한 인물이 바로 온달이다. 평양성 시내에서 '바보 온달'로 유명했던 청년이 전국적 '사냥 오디션'에서 1등을 하면서 갑작스레 스타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온달의 사냥대회 1위, 제힘만으로 얻어낸 성과는 아니었다
 

서울 광진구 아차산에서 찍은 온달 부부. ⓒ 김종성

 
'바보가 어떻게 1등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온달이 바보로 불렸던 것은 지능 때문이 아니었다. <삼국사기> 온달 열전에 따르면, 온달은 얼굴은 웃음이 날 정도로 못났지만, 마음씨는 고왔다. 여기에 더해, 홀어머니를 봉양하고자 다 떨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평양 시내에서 밥을 얻으려 다녔다. 

"해진 적삼에, 다 떨어진 신발로 시내를 왕래하니, 사람들이 그를 지목해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고 온달 열전은 말한다. 얼굴·옷차림 및 착한 마음씨에 더해 구걸 행위가 복합적으로 풍기는 이미지로 인해 '바보 온달'이란 별명이 붙여졌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구걸을 많이 했다는 사실에서, 온달의 경제력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온달 열전은 "집이 매우 가난했다"고 말한다. 먹을 게 없어 느티나무 껍질로 연명할 정도였다. 부잣집 노비로라도 들어가 농토를 얻었다면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겠지만, 그는 그런 기회도 얻기 힘든 최하층 빈민이었다. 

그렇게 알려져 있었던 온달이 사냥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하니, 세상이 놀랐다. 기마술과 사냥술을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과 장비를 고려할 때, 최하층 빈민이 동네 사냥대회도 아니고 태왕이 참석한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누구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1등을 차지한 온달이 평강태왕 앞에 불려가기 전까지, 누구도 그가 온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가 평강태왕의 공주와 결혼한 남성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이는 온달이 누구의 '빽' 없이 자기 실력으로 1등 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로지 자기 힘만으로 얻어낸 성과는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귀금속과 패물을 들고 나타난 공주가 경제력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온달의 잠재적 능력은 말 그대로 몸속에 잠재된 채 사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공주가 제공한 빈곤 탈출 및 계층이동의 기회가 온달의 성공신화를 가능케 한 결정적 동력이었다. 

바보 온달과 같은 신화, 2019년에는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온달의 성공 신화를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접하기는 쉬워도, 실제 체험하거나 목격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현대판 온달'이 출현할 기회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계층이동 또는 신분 이동의 기회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의미의 계층이동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학술 연구로도 뒷받침된다. 한국재정학회가 2018년에 발행한 <재정학 연구> 제11권 제1호에 실린 윤성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소득계층이동 및 빈곤에 대한 동태적 고찰: 재정패널조사 자료를 중심으로'를 보면, 이러한 경향이 계속 심화하고 있음을 절감할 수 있다. 

소득과 납세액, 복지 혜택 등을 근거로 전체 가구를 10등분 한 이 논문에서, 1분위는 최하층, 10분위는 최상층을 의미한다. 1분위에서 3분위까지는 논문에서 말하는 빈곤층이다.
 

본문에 언급된 <그림 4>. ⓒ 한국재정학회, 윤성주


<그림 4>에서 알 수 있듯, 2007부터 2015년까지, 이 기간동안 기존 순위를 그대로 유지한 가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그림 속의 빨간 줄이 현상유지 확률을 보여준다. 빨간 줄에 해당하는 수치는 오른쪽 Y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빨간 줄은 84%에서 시작해 88% 가까이로 상승했다. 순위가 상승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왼쪽 Y축을 통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청색 줄과 녹색 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파란 줄은 빈곤층으로 순위가 떨어질 확률이고, 녹색 줄은 빈곤을 탈출할 확률이다. 파란 줄은 8.0%를 넘은 상태에서 시작해 6.5% 미만까지 떨어졌다. 녹색 줄은 8.0% 미만에서 출발해 6.0% 미만까지 떨어졌다. 빈곤층으로 떨어지거나 빈곤층을 탈출할 확률이 감소하고 있다. 

세 개의 줄을 종합하면, 전체 가구의 계층이동 가능성은 계속 낮아지고 현상 유지 가능성만 꾸준히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가 활력을 잃고 정체성을 보인다는 증거다. 윤성주 연구위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2007년 이후 소득계층의 이동성은 낮아지는 추세로 나타났으며, 빈곤의 고착화가 심화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중산층 붕괴, 양극화 심화, 공정·공평성 및 투명성 악화 등과 관련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빈곤 탈출과 계층 상승의 기회가 감소하는 사회에서, 가난하고 유능한 사람들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당장 급한 생계 문제를 해결하느라 자기를 위해 아무것도 투자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이런 사회에서 온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력이나 제삼자 혹은 사회의 도움으로라도 빈곤을 탈출하고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진달래꽃으로 떡이나 화채를 해 먹던 삼월삼짇날, 고구려 사회는 온달이라는 극빈층 청년이 제삼자의 도움으로나마 빈곤을 탈출하고 계층이동을 이룬 뒤, 기마 및 승마 실력을 바탕으로 전국적 스타가 되는 훈훈한 장면을 목격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재벌개혁, 부동산 개혁, 노동 개혁, 경제민주화, 복지정책 등이 과감히 추진되지 않는다면 온달과 같은 성공신화를 목격할 기회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층이동 #신문상승 #온달 #삼월삼짇날 #공정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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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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