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비자림로 공사, 웃는 자들은 누구인가

[주장] 비자림로 파괴, 제주 동부지역 난개발의 신호탄

등록 2019.04.10 11:26수정 2019.04.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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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생숲 500여 그루의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있었던 천미천 근처의 자생숲 자리.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김순애


제주 비자림로 확장 공사는 지난해 처음 시작되었을 때도 그렇고 올해 재개되었을 때도 그렇고 여전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전 국민이 인정하는 아름다운 길인만큼 공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8월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해 천 그루 가까운 나무들을 벌목해 아름다운 경관을 순식간에 훼손한 제주도에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제주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의 비판이 쇄도했고 난개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제주도민들이 분노했다. 

당시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 구좌읍·우도면)은 "주민 숙원사업"이라며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비자림로 2.9km에 이어 4차선 확장이 계획되어 있는 12km에 이르는 금백조로의 종착지인 서귀포시 성산읍의 고용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도로확장을 위한 벌채가 환경 훼손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안전의 관점에서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 재개가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아라뱃길 사업, 양양 공항 등 천문학적인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 이후 애물단지로 전락한 많은 사업도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개발 사업에서 환경영향평가와 투융자 심사 등 수많은 절차가 제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비자림로 사업 역시 각종 절차를 거쳤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절차들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3월 20일, 21일 양일간 베어진 500여 그루의 마지막 흔적 50여 그루를 미처 담지 못했다. 삼나무 외에 예덕나무, 동백, 팽나무, 식나무 등 수종이 다양했다. ⓒ 김순애

 
지방투융자 심사의원, 막대한 예산 낭비 동반한 사업 묵과

비자림로 리모델링 방안은 2013년 5월 '제2차 제주도 도로정비기본계획'에서 선을 보인 후 같은 해 지방투융자 심사를 통과했다.

지방투융자 심사 당시 심사의원들은 '최근 교통량과 사고유발사례, 위험한 도로인지 입증하는 데이터 보완 후 재심의하겠다"며 비자림로 리모델링 방안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11월 열린 재심사에서 제주도는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도로의 구조, 교차로 부근 병목 현상으로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는 도로, 사고에 따른 구상권 청구' 등을 비자림로 확장 사업의 근거로 들었다. 위험한 도로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 해당 구간에 한정된 교통사고 현황은 제시하지 않았다. 기하학적 구조 탓에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구상권이 청구됐는지는 자료 어디에도 없다. 


설사 제주도가 내놓은 의견이 맞다 하더라도 도로의 기하학적 구조가 문제라면 해당 구간의 구조를 개선하면 되는 것이지 2.9km의 도로 확장 공사의 근거로 삼는 것은 부적합하다.

하지만 당시 투융자 심사 회의록을 살펴보면 심사의원들은 도에서 제출한 실무검토의견을 어떤 토론도 없이 '적정'으로 처리했다. 

당시 투융자 심사의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어떻게 적정 의견이 나왔는지 문의했으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어떤 의원은 '내가 회의에 참석했다면 반대 의견을 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번에 10여 개 이상씩의 안건을 다루는 투융자 심사 회의가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되는지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2015년에 나온 '비자림로 확장 사업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영산강 환경유역청)를 보면 "공사 구간이 경관보전지구 1등급 지역인 선족이오름을 통과함에 따라 오름의 훼손이 발생하고 계획노선 대부분 구간이 경관보전지구 2등급 지역을 통과하는 바 도로확장 필요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사업 시행이 불가피할 경우 도로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로 양측에 조성된 삼나무림의 훼손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이러한 의견들을 숙고하지 않았다. 비자림로 확장을 기정사실로 삼고 계획을 진행했다. 비자림로 실시 설계 과정은 물론 공사 과정에서도 삼나무림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공사 과정에서 30년을 훌쩍 넘는 삼나무림의 훼손이 발생했지만 제주도는 나몰라라 했다. 소규모 환경영향 평가를 시행한 영산강 환경유역청조차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공사 이후 논란이 불거지자 제주도청은 '삼나무 유해성'을 부각하며 '환경파괴와 예산 낭비 도로 공사'의 문제를 덮으려 했다.

누가 비자림로 공사를 부추기는가?
 

곧 사라질 팽나무 제주도는 기초설계용역보고서를 통해 '삼나무를 베어내고 다른 수목은 이식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 김순애

   

곧 사라질 숲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위해 없어질 숲 ⓒ 김순애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비자림로와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송당과 성산 마을에 사는 유지들이다. 그러나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 대한 송당지역 주민 설명회에는 5명만이 참석해 사인을 했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주장한다.

성산읍의 이장협의회 등도 찬성했다. 성산읍은 제2공항 예정 부지로 마을 안에서도 제2공항 찬성과 반대가 맞서는 곳이다.

비자림로 확장과 제2공항 건설을 찬성한 김경학 의원과 고용호 의원은 도의원 재산 공개 결과 제2공항 수혜지역에 부동산 소유 1, 2 순위에 나란히 올라있다. 제2공항과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반대하는 측은 '제2공항 예정부지 토지가 투기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상속 받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해관계가 강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김경학 의원과 고용호 의원이 비자림로와 제2공항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환경 보존에 대한 도민들의 열망이 커지고 난개발에 대한 피로감과 위기감이 여론 조사를 통해 표출되자 제주도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라는 구호를 전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주요 정책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건설과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한 단기 경기부양 정책에 목매고 있다.

현재 제주도의 주요 일간지 사주들도 대부분 건설회사 대표로 비자림로 공사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도의원들의 각종 회의록은 자기 지역구에 도로를 유치해달라는 주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제주도 곳곳에 도로가 개설되거나 확장되고 전국에서 도로 연장률 1위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제주를 제주답게 보존하려는 이들의 산발적인 목소리는 행정당국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018년 비자림로 공사가 시작되고 언론을 통해 이를 접한 시민들이 제주도 관계자들에게 강력히 항의하며 도지사 면담과 공개 토론회 등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정치가, 행정가들이 점처럼 흩어져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무심한지 알 수 있다.

비자림로 공사는 제2공항의 첫 삽, 동부지역 난개발의 신호탄
 

허구적인 비자림로 대안: 아름다운 경관도로라지만 도로폭 확장, 예산 낭비, 30년 이상된 경관을 파괴하고 또 다른 나무를 심어 경관을 조성하겠다는 기이한 안이다. ⓒ 제주도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해 전국의 분노 여론이 들끓자 환경 훼손을 최소로 해 아름다운 생태 도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롭게 발표된 대안 또한 나무를 벤다는 여론에 대응해 넓은 폭의 중앙분리대에 나무를 심겠다거나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 산책로를 조성하겠다는 등 기존 환경과 경관을 훼손하는 것들이었다. 들끓던 여론이 점차 가라앉자 제주도는 도로 폭을 더 넓히고 사업비를 207억 원에서 242억 원으로 늘렸다. 

최근 원 지사는 '삼나무가 유해하니 베어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9일 열린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 원 지사는 "삼나무는 제주에서 수종 개량이 필요한 나무"라며 "삼나무 훼손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자연 파괴라는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려는 주장일 뿐이다.

현재 비자림로는 건설한 지 오래돼 보수가 필요한 2차선 도로다. 차량 추월 단속, 갓길 주차 단속, 갓길 조성 등 관리와 유지 보수를 통해 주민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4차선 확장이라는 대규모 공사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자림로 확장공사가 마무리 되면 그 다음 구간은 천혜의 오름, 곶자왈 등을 통과하는 금백조로이다. 공사 구간은 비자림로의 5배가 넘고 공사비는 10배가 넘는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는 제2공항이 기다리고 있다. 비자림로, 금백조로 구간이 제2공항 연계도로임을 국토부와 제주도는 2018년 '구국도건설계획'을 통해 표명한 바 있다. 

비자림로는 제주 사회를 갈등으로 몰고 간 제2공항의 첫 삽이며, 동부지역 난개발의 신호탄이다.
덧붙이는 글 김순애 기자는 비자림로시민모니터링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자림로 #제주도 #제주개발 #제주동쪽 #제주제2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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