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시인들이 30년간 부른 노동가

일과시 동인지 9집 '고공은 따로 있지 않다'... 제발,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

등록 2019.04.08 09:16수정 2019.04.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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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시 9집 동인지 <고공은 따로 있지 않다> ⓒ 푸른사상사

 
지난해 성탄절을 닷새 앞두고 <일과시> 동인지 9집 <고공은 따로 있지 않다>(푸른사상)가 출간됐다. 8집을 출간한 지 13년 만에 펴낸 동인지다.

삶의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맞선 세월이다. 살아 남아 옛일을 돌아보니 고통스럽던 삶에서 새살이 돋는다. 지금은 동인의 시대도 아니고, 앤솔로지를 찾는 독자들도 없고, 뜨거운 시를 기다리는 항구도 없는데도 동인들은 시의 그물을 던졌다.

<노동해방문학> 문예담당 김명환 시인 주도로 1990년 동인을 결성했으니 어느덧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린 더 이상 노동해방을 외치던 젊은 노동자가 아니였다. 어떤 동인은 환갑을 넘겼고 더러는 환갑을 앞두고 있다. 어떤 동인은 세상을 등졌고, 어떤 동인은 질고로 인해 활동을 중단했고, 어떤 동인은 암 투병 중이다.

구례, 임실, 합천, 용인, 수원, 서울….

동인들은 흩어져 산다. 형제라도 얼굴 보기 쉽지 않은 거리다. 거리도 문제지만 삶에 쫓기면서 모임이 힘들었다. 시가 무기인 시대라면 거리와 삶과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해방의 불길이 계속 솟았다면 불의 가슴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길은 금방 진압됐고 동인들의 삶은 벼랑으로 내몰렸다. 생존에 급급했던 동인들은 <일과시>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암 투병 중인 김용만 동인이 전화했다.

"우리 얼굴 좀 보자!"

아픈 동인의 소집 명령에 불응할 순 없었다. 뜨거운 시를 해산(解産)하지 못할 바엔 <일과시>를 해산(解散) 시켰어야 했는데 그렇게도 못했다. 우리들은 못난 시인이라는데 동의했다. 못난 소나무가 고향을 지키듯이 못난 시인들이 쓸모없어진 노동가를 30년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삶에 쫓기다 못난 얼굴을 그리워하다 잊을 만 하면 모여 소주를 마시고 시를 추리면서 동인지 9집까지 펴낸 것이다.

굴뚝농성 연대의 밤으로 대신한 9집 출판기념회
 

일과시 9집 출판기념회는 연대의 밤으로 진행했다. ⓒ 송경동

 
출판기념회를 어디서 어떻게 할까?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동인지 9집 제목 <고공은 따로 있지 않다>가 출판기념회 장소를 미리 정해 놓았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에 단체협약 이행 등을 요구하며 75m 높이 굴뚝에서 고공 농성 중이었고 동인인 송경동 시인은 무기한 연대 단식에 돌입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일과시> 동인지 9집 출판 기념 '시와 노래가 연대하는 밤'은 굴뚝 농성 410일째인 2018년 12월 26일 밤, 단식 천막농성장이 설치된 서울 목동 CBS방송국 후문 광장에서 진행됐다. 귓불이 아플 정도로 매서운 추위였다.

안양천 강바람이 목동 시가지를 헤집고 다녔다. 술꾼들과 젊은이들은 술집과 카페로 대피했다. 길길이 날뛰는 한파에 맨몸으로 당하는 건 우리들뿐인 것 같았다.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강바람을 피할 길이 없었다. '하필이면 이런 날을 잡았을 게 뭐람!'이라고 투덜댈 수도 없었다. 투덜대봤자 입만 더 시릴 뿐이므로 꾹 다물었다.
 

시낭송하고 있는 송경동 시인. ⓒ 조호진

 
<일과시> 동인들이 추위에 떨면서 낭송한 것은 시가 아니라 인간 선언문이었다. 죄라면 일한 것뿐인 노동자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삼백예순날이 아니라 장장 사백 열흘을 굴뚝에서 농성하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목숨을 살려달라고 절규하고 있는데, 어떤 놈이 기쁘다 구주 오셨다고 노래한단 말인가. 언놈이 새해가 밝았다고 영신(迎新) 타령을 한단 말인가.

<일과시> 동인들은 노동해방을 노래했던 시인으로서, 인간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노동자로서 75m가 아니라 그 이상에서 농성한다고 해도 연대하는 역전의 용사들이다. <일과시>의 질긴 생명력은 이것이었다. 30년 순정이 기쁘고 고맙다. 동인지 9집에 참여한 동인 한 명 한 명을 호명한다. 조호진, 이한주, 오진엽, 송경동, 손상렬, 서정홍, 김해화, 김용만, 김명환 시인.

파인텍 노사협상 타결... 그러나 고공 농성은 끝나지 않았다
 

연대의 밤을 마치고 농성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일과시' 동인들. 왼쪽부터 이한주 시인, 김명환 시인, 오진엽 시인의 딸, 오진엽 시인, 맹문재 시인, 송경동 시인, 필자. ⓒ 조호진

 
2019년 1월 15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파인텍 노사 협상이 타결되면서 426일 동안 고공 농성 중이던 두 노동자가 땅을 밟았다. 목숨 걸고 싸워야 생존을 허락하는 야만의 땅으로 내려온 두 노동자의 건강이 염려된다. 다시는 굴뚝에 올라가는 일이 없기를 부디, 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야만의 사회가 또 다시 굴뚝에 오르게 만들 것이란 것을.

오물조물 담쟁이로는 감히 오를 수 없는 굴뚝, 세계 최장 고공농성 신기록을 세우게 만드는 굴뚝, 엄동 추위와 굶주림으로 싸우는 노동자를 조롱하는 비인간화의 굴뚝에 떠밀려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시는 몽롱한 공간이 아닌 쫓겨난 이들의 거리에서 읽혀져야 한다.

송경동 시인은 희망버스 투쟁 중에 입은 부상 때문에 몸이 성치 않다. 파인텍 협상이 타결되면서 연대 단식을 멈춘 송 시인이 집으로 돌아가 요양했으면 했다. 그에게도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송 시인은 5일 현재 부당 해고에 맞서 투쟁한지 4447일째, 임재춘 조합원의 무기한 단식 24일차, 본사 옥상 점거 4일차인 콜텍 투쟁에 합류했다. 송 시인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썼다.

"노동자들이 13년째 거리 농성을 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이젠 그들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임재춘 조합원이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지도 벌써 17일째입니다. 단식의 고통과 후과가 어떤 건지를 경험하고 있어서인지 더 마음이 아픈 듯합니다."

송경동 시인과 콜텍 노동자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
 

송경동 시인. ⓒ 송경동

 
송경동 시인을 보면 미안하고 안타깝다. 몸은 괜찮을까? 아들이 제법 컸을 텐데 뒷바라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걱정이 한 둘이 아니다. 지난 3일 송 시인의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송경동 시인, 지난번 언제 봤을까? 단식 후유증 때문인지 얼굴이 상했더라. 송 시인을 보면 미안하고 답답할 뿐인데 그래도 씩씩하게 싸워 이기길 비네. 나는 부천역 아이들을 잘 돌 보겠네~!"

동인지 9집에 송경동 시인에게 보내는 시 '피아노'를 실은 건 아픔 때문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픔도 없다. 명문대 출신도 엘리트 운동권도 아닌 노동자 출신 송경동, 문단 비주류인 송 시인의 짠한 삶과 연대하고 싶어 졸시를 바쳤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물었다. 아들 뭐하냐고 어떻게 먹고 사냐고. 벌써 대학생이 돼 피아노를 전공한다는 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용산 참사로 희망버스로 세월호로 블랙리스트로 수배 받고 연행 되고 재판받는 너에게 또 물었다. 하필이면 피아노냐고 집에 피아노는 있냐고 물었더니 낙원상가에서 중고 피아노를 눈물로 샀다고 중고도 좋다고 아들의 꿈이 피아니스트라고 아들 뒷바라지 못해 미안하다고 월세도 내야한다고 너는 말했다. 시를 쓰려면 감미롭게 써서 달콤하게 팔아야 돈도 벌고 팬도 생기는데 비정규직 해고자와 한 패인 너의 시는 담쟁이론 오르지 못할 공장 굴뚝을 점거해 고공농성 중이다. 명문대 출신도 엘리트 운동권도 아닌 노동자 출신인 너는 운동권과 문단의 비주류인 너는 술 한 잔할 새도 없이 '블랙리스트 책임자처벌 2018 문화예술인 선언 및 대행진'을 조직하기 위해 새벽길을 떠났다. 정권이 바뀌면서 장관이 된 담쟁이 시인은 담장을 넘지 못한 채 그 담장 아래서 희희낙락인데 생계의 벼랑에 매달린 네가 떠난 새벽에 가을비가 내리는데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중고 피아노도 괜찮다고, 아들의 꿈이 피아니스트라고 누가 우는 건지 피아노를 치는 건지….
(졸시 '피아노 - 송경동 시인에게' 전문)
덧붙이는 글 문예지 <푸른사상> 2019년 봄호에 게재한 원고를 수정하고 추가로 덧붙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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