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 한우 등심 5000원? 우리 다 죽으란 소리"

[현장] 롯데마트의 한우 가격파괴에 한숨 쉬는 동네 정육점들 "탈출구 없는 싸움"

등록 2019.04.09 21:44수정 2019.04.0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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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 위치한 롯데마트 내부 전경 ⓒ 류승연

 
# 지난 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역 롯데마트가 막 개점한 시각.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1층 축산물 코너 앞에 서서 한우의 앞다리와 뒷다리 중 어떤 부위가 더 맛있는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가 끝나자 그들 중 일부는 한우 뒷다리로 보이는 우족을 두 세 개씩 집어 들고 자리를 떠났다.

# 비슷한 시각 서울역 주변 후암 시장. 자동차들은 부지런히 도로를 오가고, 보행자길 역시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붐볐으나 정육점 앞은 유달리 한산했다. 기자가 시장에 위치한 두 곳의 정육점을 찾았을 때, 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TV를 보고 있었고 또 다른 남성은 도로 앞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두 곳 모두에서 고기를 찾는 소비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롯데마트가 지난 4일부터 1등급 한우 가격을 크게 낮춰 팔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간 반값 치킨으로 떠들썩했던 '통큰 치킨'에 이은 두 번째 가격 파괴다. 그래서 행사명도 '극한 한우'다. 지난 3일 롯데쪽은 '롯데마트 창립 21주년 행사'로 이달 4일부터 10일까지 1등급 한우 등심과 정육, 통우족을 정상가 대비 최대 45%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롯데 멤버십에 카드사 할인까지 더하면 1등급 한우 등심을 100g 기준 4968원에 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
  
이날 기자가 만난 서울역 주변 정육점 상인들은 대체로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일부 정육점 관계자는 "그 가격 맞냐?"며 몇 번이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후암동에서 18년 간 정육점을 운영해온 ㄴ축산물 도소매 센터의 안병삼(60)씨는 "수입산 소고기 가격을 잘못 안 것 아니냐"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파동에 위치한 ㅈ정육점에서 일하는 채남수(33, 가명)씨 역시 "등심 가격이 4000원대라면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꼴"이라고 말했다. 채씨는 "지금도 한우 등심을 만 원(100g당)에 팔고 있다"며 "이것도 소매점으로서는 이윤을 많이 남기지 않고 판매하는 꼴"이라고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어 채씨는 "1등급 등심을 5000원에 판매한다는 건 사실상 주변 상인들 다 죽으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정육점은 4년 전 후암동에서 청파동으로 위치를 옮겼다.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정육점과의 경쟁을 줄여보기 위해서다. 이처럼 지역 업체와의 경쟁이 '해결할 수 있는 싸움'이라면, 대형 마트와의 경쟁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채씨는 말했다. 그는 "요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마트로 가고 있다"며 "대형 마트가 가끔씩 행사라도 열면 매출이 크게 준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울 후암동에 위치한 정육점 전경 ⓒ 류승연

   
서울 후암동에서 ㅅ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환영(32, 가명)씨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지역 시장은 주차 공간이 적고 살 수 있는 물건의 종류도 한정돼 있다"며 "유일한 승부수는 '저렴한 가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대형마트가 한우 가격마저 크게 낮추면 이제부터는 탈출구 없는 싸움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트 할인의 영향으로 이씨는 직원 수까지 줄였다고 했다. 10년 넘게 정육점 운영을 해왔지만 지난해부터 매출이 유난히 크게 줄었다는 것. '최저임금의 영향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그보단 마트 행사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육점 단골손님이 '(직원들) 얼굴 보고 이 가게에서 고기를 사지만, 마트와 비교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이야기 한 적도 있다"며 "정육점뿐 아니라 후암동 상권이 전반적으로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 이씨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차라리 취직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며 "빚이 많아지기 전에 하루 빨리 정육점을 접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60대 정육점 주인인 안씨는 '상황이 나빠져도 정육점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축산업계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어, 이제와 직업을 바꿀 수도 없다는 것. 대신 안씨는 후암동 재개발에 희망을 걸어보겠다고 했다. 그는 "(재개발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재개발이 이뤄지면 사람이 많아져 고기가 다시 잘 팔리지 않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롯데는 어떻게?...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그렇다면 롯데는 어떻게 한우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을까. 첫째는 극한 한우가 '노 마진(No Margin, 이익을 거의 남기지 않고 판매하는 방식)' 행사이기 때문이다. 롯데쪽은 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에는 이익보다는 마케팅에 초점을 맞춰 판매하려 한다"며 "행사인 만큼 가격은 저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롯데마트가 지난해 말 지역 한우 경매장에서 '매매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고기는 6단계를 거쳐 유통된다. 농가에서 우시장으로, 공판장(도축장)에서 가공업자에게로, 이후 유통업체를 거쳐 소비자에게 들어간다. 한우 가격도 각 단계를 거치며 점점 올라간다.

이중 세 번째 단계인 공판장에 들어가 한우를 매매하려면, 중도매인 혹은 매매참가인의 자격을 얻어야 한다. 롯데마트가 바로 이 자격을 얻은 것. 롯데쪽은 "올해 초부터 산지에서 한우를 직접 사오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들어오는 한우가 이미 우리가 취급하는 전체 한우 물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매매 참여 자격을 얻게 된 만큼, 앞으로도 한우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대폭 낮아진 한우 가격이 '일회성 이벤트'로만 끝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롯데 쪽은 "산지에서 가져온 한우를 전체 물량의 몇 %까지 늘려갈지 정해진 바 없다"면서도 "행사 이후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얼마나 저렴해질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일반적인 한우 가격의 70~80%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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