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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으로 연고 이전한 이천율면FC... 새로운 시작

[현장] 일산고양FC에서 이천율면FC로... 출정식 및 연고 이전 기념식

19.04.08 17:33최종업데이트19.04.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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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정식을 갖는 이천 율면FC U18 출정식을 갖는 이천 율면FC U18 ⓒ 이천율면FC


'공부하는 학생선수'로 유명한 고양일산FC U18이 이천으로 연고 이전해 새 출발한다.

지난 3월 31일 오전 11시 경기도 이천 율면 실내체육관에서 이천율면FC의 출정식 및 연고 이전 기념식이 진행됐다. 율면FC는 전신인 고양일산FC 시절부터 '공부하는 학생선수'로 기틀을 다진 팀이다. 2015년부터 팀을 이끄는 이돈길 감독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지도법으로 선수들의 대입 진학률을 높여 화제를 일으켰다.

출정식에 오른 이돈길 감독은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의미의 有志竟成 (유지경성)을 팀 정신으로 삼는다. 우리 팀은 운동과 공부 모두 성실히 임하고 있다. 선수이기 전에 학생인 만큼 기본 소양을 잘 갖춘 아이들로 클 수 있게 지도하겠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율면FC가 일산에서 이천으로 연고지를 옮긴 가장 큰 이유는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율면FC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율면고등학교는 과거 여자 축구부가 있었던 곳이다. 여자 축구부가 해체됐지만 잔디 구장과 기숙사, 체육 시설은 남아 있어 선수들이 운동에 집중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을 갖췄다. 
 

▲ 이천율면FC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율면고의 쾌적한 체육시설 이천율면FC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율면고의 쾌적한 체육시설 ⓒ 서창환

 
선수들의 학업 정진을 위한 율면고 신정숙 교장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도 이돈길 감독이 이천으로 연고 이전을 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 신정숙 교장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팀의 정신을 높게 평가, 선수들이 시험 기간에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휴게실과 자습실을 마련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천율면FC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율면고 숙소 내부 ⓒ 서창환

 
학교의 지원뿐만 아니라 기존 후원사인 생활가구 업체 MarketB 남지희 대표, 유아 체육 전문 업체 치키토 최진락 대표 역시 율면FC의 공부하는 학생선수 모토에 감명 받아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힘쓰고 있다.

또한, 이천은 이돈길 감독이 나고 자란 곳이다. 이천제일고에서 엘리트 선수로 활동 후 지도자로 전향한 그는 약 1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팀을 성장시키고픈 의지도 컸다. 

이돈길 감독은 "연고지 이전 조건으로 운동과 공부 모두 순조롭게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봤다. 율면고가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다고 해서 이천으로 옮기게 된 것"이라며 연고 이전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이돈길 감독은 "일산 시절엔 선수들이 아파트에서 지내며 공부와 운동을 하느라 불편했다. 율면고는 기숙사와 공부하는 공간이 분리된 만큼 선수들이 더 집중해서 학업에 정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돈길 감독은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하는 시대는 지났다. 전국대회 성적은 물론 학생부 비중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며 운동선수에게도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힘주어 말했다.

공부는 제2의 삶을 설계하는 안전장치

그렇다면 율면FC에 있어서 공부 병행은 단순히 대입 준비를 위한 수단일까. 이와 같은 물음에 이돈길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일각에선 우리 팀이 대입 전형을 챙기는 데 급급해 공부를 시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수들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인지시킨다. 냉정히 말해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에 가는 것은 확률적으로 지극히 희박하다. 냉혹한 현실을 되짚어 볼 때 공부는 운동선수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선수로서 꿈을 이루지 못하면 다른 것을 통해서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

또한, 이돈길 감독은 "대입도 중요하지만 공부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모습을 목격하니 공부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더욱 갖게 됐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율면FC에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른 학생들은 대학 진학 후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돈길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 이날 졸업생 신분으로 출정식에 참석한 엄태일(한양대), 나태민(홍익대), 김형민(서울과기대), 전병규(한국외대)가 주인공이다. 
 

졸업생 신분으로 참석한 김형민(서울과기대), 나태민(홍익대), 엄태일(한양대), 전병규(한국외대) 군-왼쪽부터 ⓒ 서창환

 
이들은 고등학생 때까지 엘리트 선수로 활동하다 대입 합격 후 운동선수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꿈을 찾아 노력하고 있었다. 전주대에서 반수를 준비해 한국외대, 경희대, 고려대 등에 합격한 전병규 군의 꿈은 스포츠 행정가다. 그는 "율면FC는 시험 기간 3주 전부터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래서 공부하는 습관이 잡혀서 반수하는데도 수월했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전병규 군은 "유소년 선수로 활동하면서 느낀 것들이 많아 스포츠 행정가가 되고 싶다"고 진로 계획을 밝혔다. 김형민, 엄태일 군 역시 스포츠 분야에서 꿈을 좇는 중이다.

나태민 군은 대학 진학 이후 뒤늦게 공부에 눈을 떴다. 그는 엘리트 선수로 동아대에 입학했지만 한계를 깨닫고 축구화를 벗고 편입 시험을 준비해 홍익대, 연세대 등 서울 명문대를 다수 합격했다.

"팀에선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저는 세 친구와 다르게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다(웃음). '축구 선수는 축구만 잘하면 된다'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 와서 운동을 하다보니까 제가 프로 선수로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점점 줄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만 했던 태민 군으로선 공부한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학생인 여자친구가 많은 도움을 줬다"며 쑥스럽게 웃음을 지은 그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당당히 편입 시험에 합격, 지금은 스포츠 관련 전공이 아닌 회계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하니까 기량 떨어져? 천만에
 

▲ 율면FC는 지난해 리그 우승을 거두며 공부와 운동 병행에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율면FC는 지난해 리그 우승을 거두며 공부와 운동 병행에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 이천율면FC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공부도 신경 써야 하는 시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찮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공부를 하면 운동하는 시간이 부족해 기량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면FC 선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현재 팀에 몸담고 있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공부 때문에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현재 고2인 정상원은 일산 시절부터 높은 내신 성적을 유지했다. 

그는 "시험 기간에는 새벽까지 공부를 해서 몸이 피곤하긴 하다. 그렇다고 운동량을 줄이진 않는다. 시험 기간을 제외하면 평소에는 다른 팀들과 똑같이 운동하고 경기를 준비한다. 강한 팀을 만나도 우리만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며 공부가 운동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이천율면은 지난해 전반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프로 유스팀을 제외한 22개 권역으로 나눠진 전반기 리그에서 학원팀을 제외한 3개 클럽팀(일산, 현풍FC, 영광FC)이 일군 성과라 더욱 뜻깊었다. 일반 학생을 제치고 수석 입학한 최용혁도 "중학교 시절부터 공부했는데, 율면FC가 운동과 공부 모두 성과를 내고 있어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흔히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말한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교육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외치고 있으면서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도로 지지부진하고 있는 국내 축구계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느리지만 꾸준히 정진하고 있는 율면FC의 '백년대계 공부법'이 해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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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율면FC 이돈길 고양일산 공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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