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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다 말하는 사람까지도..." 영화 '생일'의 진짜 미덕들

[리뷰] 영화가 전하려 한 참 위로들... 슬픔 강요하지 않아

19.04.10 16:41최종업데이트19.04.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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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포스터 ⓒ (주)NEW

* 이 글엔 영화 내용 일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업무 차 베트남에 나가있던 정일(설경구)이 귀국한 건 수 년만의 일이다. 그 사이 집은 이사를 갔고 수소문 끝에 주소를 알아낸 뒤 집을 찾았으나 웬일인지 아내 순남(전도연)은 그를 문전박대한다. 딸 예솔(김보민)을 통해 접근을 시도하는 정일. 하지만 어렵사리 얼굴을 맞대게 된 순남으로부터는 여전히 찬바람만 쌩하니 부는 실정이다. 

정일이 해외에 나가있는 동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세월호에 탑승했던 정일의 아들 수호(윤찬영)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순남은 이후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으나 정일은 그 기간 동안 귀국하지 않은 채 해외에 머물러 있었다.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진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영화 <생일>스틸 컷 ⓒ (주)NEW

 
영화 <생일>은 정일이 귀국한 뒤 조금씩 가족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축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여전히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순남의 일상을 조심스럽게 조명한다.  

잔잔하게 시작한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니까 순남의 내재돼있던 슬픔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점차 감정이 고조돼간다. 참사를 겪은 다른 유가족들은 연대를 통해 고통을 이겨내고 위로하고 있는 반면, 순남은 마음의 문을 좀처럼 열지 못한다. 

순남의 치유되지 못한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기는커녕 되레 날카로워지며 스스로에게 깊은 내상을 입히고 있었다. 이를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지켜보는 정일에게까지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될 정도로 말이다. 순남은 유가족 앞에서 보상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타인의 비정함과 몰상식함에 질식, 차마 세상 밖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다.

서로를 위로하다
 

영화 <생일> 스틸 컷 ⓒ (주)NEW

 
영화에서는 유가족들이 숨진 자녀의 생일을 기억하며 함께 먹거리를 준비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유가족들은 농담을 던지거나 웃으면서 죽은 자녀를 언급하는 등 한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함께 있었던 순남은 "죽은 자녀 앞에서 지금 웃음이 나오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물론 유가족들이 겉으로는 농담을 던지며 웃고 있지만, 그건 사실 웃는 게 아니다. 웃음의 이면에는 울음보다 더욱 큰 아픔과 슬픔이 배어 있다.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슬프다고 하여 계속해서 울 수만은 없는 현실이기에 일상의 모든 희노애락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담담히 표출하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를 가둬둔 순남에게 이러한 현실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억지 웃음을 웃던 유가족 연대나 그 웃음을 나무라던 순남까지, 모두가 가슴 아픈 현실일 뿐이다.

죽은 수호의 방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던 그날 이후 그대로 멈춘 상태이며, 철이 바뀔 때마다 아들의 옷을 구입하여 걸어놓은 채 이를 꼭 껴안고 목 놓아 울어야 했던 순남은 아직 누군가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놓을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마음 따뜻한 이웃이 다가와 그저 그녀를 안고 함께 울어 주어야만 조금 위안이 될 뿐이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듯이 슬픔 또한 특정 단계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순남처럼 여전히 눈물로 슬픔을 인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단계를 뛰어넘어 함께 고통을 겪는 이들과 연대하며 어느덧 사건을 직시하며 슬픔을 승화시키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슬픔의 깊이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세월호를 둘러싼 이해관계도 사람들마다 달리 다가온다.

특별했던 연대
 

영화 <생일> 스틸컷 ⓒ (주)NEW

 
'세월호'라는 세 글자만 꺼내들어도 어떤 이들은 여전히 눈물을 글썽이지만, 또 다른 이들은 지겹다며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고 하니 말이다.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슬픔과 공감을 표시하고 유가족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왠지 나서기를 꺼려하면서 괜스레 주변만 맴돌며 쭈뼛거린다.

숨진 수호와 단짝 친구였으나 순남과 맞닥뜨릴 경우 괜히 곤란할 것 같아 일부러 자리를 피하곤 했던 절친, 수호의 살신성인 덕분에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죄책감 때문에 선뜻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었던 또 다른 친구 등 영화는 세월호를 둘러싸고 얽힌 다양한 이해관계와 그에 따르는 상반된 반응을 대비시킴으로써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슬픔 안에 갇혀 세상 밖으로 선뜻 나오지 못하는 순남에게 유가족 연대는 계속해서 따스한 손길을 내민다. 이들의 손길을 거부하는 거친 몸짓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끝까지 보듬으며 슬픔을 나누려는 유가족 연대의 노력은 눈물겹다. 마침내 수호의 생일날, 유가족 연대가 정성껏 준비한 이벤트에 순남은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영화 <생일> 스틸 컷 ⓒ (주)NEW

 
꼭꼭 닫혀 있던 빗장이 활짝 열리자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뿐만 아니다.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노력 덕분에 그동안 혼자서 꾹꾹 눌러 담아왔던 아픔과 고통마저도 한꺼번에 씻겨 내려간다. 

이러한 과정은 아픔과 슬픔을 함께 짊어졌던 세월호 유가족 모두를 치유하는 놀라운 결과물이자 세월호 참사를 간접적으로 겪으며 함께 슬퍼하고 아파했던 이들, 아울러 세월호가 지겹다거나 세월호를 그만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등 세월호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들까지 아우르는, 영화 <생일>은 세상의 모든 이들을 보듬으며 위무해온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생일 전도연 설경구 이종언 세월호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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